두 살 아기와 도전한 영국유학
이번에는 영국 유학을 함께 온 아내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남들이 보면 필자가 직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영어점수를 취득하여, 즉 다시 말해서 소위 내가 잘나서 회사에서 보내주는 유학을 온 것처럼 보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난 영어도 잘 못해서 겨우 꾸역꾸역 점수를 만들었고, 코로나로 인하여 해외유학을 기피하는 직장 분위기라 대상자 선발이 되는데 한결 수월했던 것은 사실이다. 늘 아내에게 유학을 데려가주겠다고 말만 하고 정작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던 내게 확실한 동기를 부여해준 것은 아내였다. 그리고 코로나라 당연히 해외는 나가지도 못할 거라 생각한 내게, 오히려 지금이 기회라고 도전할 용기를 준 것 또한 아내였다. 아내가 없었다면, 난 유학을 올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유학 관련된 시험을 준비하면서 일하고 공부할 때, 육아, 요리 등 집안일 대부분은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몸을 가누는 것도 아직 힘들었을 아내가 온전히 도맡아 했다.(그렇다고 내가 나쁜 놈처럼 아무것도 안 한 정도는 아니다.) 유학 가는 것이 결정된 이후에도 우리가 살 지역의 마트 종류와 위치, 주변 편의시설 위치 등 지역정보를 미리 체크한 것도 아내였고, 당시 코로나로 인하여 영국의 출입국 규제가 강화되자, 우리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입국, 코로나 검사 및 자가격리 절차 등을 몇 번이고 체크한 것 또한 아내였다. 우리 가족들이 영국에서 사용할 짐들을 추리고 추려서 캐리어 8개를 야물 딱 찌게 준비한 것도 아내였고, 아이의 영국생활 적응을 위한 영어습득에 대한 고민, 딸이 다니게 될 널서리를 찾는 것, 집에 필요한 가구에 대해 미리 알아보는 것 또한 아내가 주도적으로 알아보고 준비를 많이 했다. 이처럼 아내의 노력과 적극성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우리 가족이 영국에서 행복하게 안정적으로 거주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우리 가족이 영국이라는 새로운 땅에서 펼쳐질 수많은 도전과 모험에 대비하는데, 아내는 이미 한 아이의 엄마, 남자의 아내로서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었다. 이처럼 영국생활을 준비하는 순간순간들마다 아내에게 감사한 마음이 넘쳐날 수밖에 없다. 품위와 끈기, 벼리심 그리고 그 아름다운 마음으로 우리 가족을 감싸 안아주는 아내의 모습에 나는 자연스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아내의 애정, 헌신
사실 난 한국에서 신혼 생활을 할 때부터 요리를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밥상은 아내가 차리기 시작했고, 나는 이러한 아내에게 상당히 의지를 해왔다. 영국에서 우리가 맞이한 첫 아침식사 시간조차, 아내는 카레, 국, 찌개를 차리며 우리 가족들이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게, 불안하지 않도록,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영국생활 초창기에 아내는 야채, 고기(부위별) 등 식자재 영어이름을 들고 다니며 외우고 다녔고, 우리 가족들은 언제나 식탁 위에 가득 차려진, 따뜻한 사랑과 고민이 담긴 훌륭한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그 달콤하고 풍부한 향기는 우리 집 안을 가득 채웠고, 나와 딸의 배도 행복함으로 든든하게 채울 수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감동적인 것은 바로 아내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끝없는 애정과 헌신이었다.
영국생활을 하는 동안 아내는 단순히 가족을 위해 요리, 집안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영국에서의 생활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발전시키려는 노력도 함께하고 있었다. 아내는 틈틈이 창밖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했고, 어두운 새벽 공기 속 잔잔한 조명아래에서 늦게까지 책들을 읽어 내려가며 지식을 습득해 갔다. 오히려 아내는 유학 중인 나보다도 원서 읽기, 듣기, 쓰기, 회화 등 다양한 방법을 접목시켜 영어공부도 더 열심히, 꾸준히 했다. 실제로 아내는 나보다 영어를 잘하지만, 더 많이 늘은 것 같다. 아내는 영어뿐만 아니라 그동안 본인이 관심을 갖고 있던 UX디자인, 자격증 등을 틈틈이 공부하며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생활했다. 이렇게 열심히 생활하는 아내를 보며 나도 부끄러운 남편이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학업을 게을리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학업을 넘어 나의 40대를 어떻게 보내 더 나은 미래의 내 모습, 가장으로서 자랑스러운 모습이 될지 고민하고 준비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딸조차 열심히 지내는 엄마를 보면서 "나도 공부할래. 공부하고 싶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뭐 당연히 그렇다고 3살 딸이 진짜 공부를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이처럼 아내가 가지고 있는 강인한 정신력, 그리고 우리 가족에 대한 무한한 사랑은 영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우리 가족에게 빛과 희망을 주는 것만 같았다. 나와 딸은, 아내와 함께라면, 이 세계 어떤 곳에서든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의 나와 아내는 더 나은 미래, 안주하지 않는 삶을 위해 새로운 목표를 찾고, 나중에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자랑스러운 부모가 되자고 다짐하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 있다. 유학생활이 3개월 남은 지금, 주변 유럽여행을 죽자 살자 다니고 싶은 마음도 한가득 있지만, 우리는 차분히 동네에 머물기로 했다. 그리고 미래를 위해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노력들을 해보기로 했다. 아이가 잠든 고요한 밤 시간, 우리의 미래를 밝게 비쳐주고 있는 듯한 조명아래에서 우리는 각자 해야 할 공부를 하며 유학생활을 마무리하고 있다.
"사랑하는 아내, 나의 인생 친구, 당신이 나와 딸에게 선사한 이 무한한 사랑과 노력에, 나는 단순히 '고맙다'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어. 당신의 노력과 헌신이 만들어내는 우리 가족의 행복한 모습에 대한 나의 감사함은, 이 글에 내가 담긴 모든 말들보다 더 크고, 더 진심이야. 우리 가족과 함께 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