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가 중요하지만...그속에서 헤테로토피아 찾기
요즘엔 글을 별로 쓰지 못한다. 소설 구상은 다 되어 있어서 달리고 싶은데 아직도 팔이 아파서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남의 책 읽고, 운동하고, 돌아다니며 관계를 생각한다. 꼭 사람을 만나고, 비즈니스를 하고, 집단 속으로 들어가는 것만 관계는 아니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사물들도 다 관계고, 책을 읽으며 접속하는 정신과의 관계도 관계다. 더 나아가 기도와 명상을 하며 체험 속에서 높은 차원의 존재와 접속하는 것도 관계다.
나는 집단, 조직, 비즈니스 혹은 오프라인에서의 관계는 별로 없지만, 스쳐 지나가는 정도의 관계는 무수히 많다. 약속을 정하고 만나는 관계도 가끔 있지만, 카페나 식당에서 상대하는 주인, 점원과의 관계도 관계고, 꽃, 나무, 하늘, 바람과의 관계도 관계다. 어찌 보면 확장된 관계다. 거기다 책을 통해 만나는 저자와의 관계는 무수히 많다. 혼자서 밥을 먹을 때 옆에 앉은 사람과의 관계, 헬스장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관계, 카페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다 지나가는 사람과의 관계...무수히 관계가 많다. 차분한 마음으로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해도 내 가슴에 깊이 들어오는 존재들이다. 여럿이 만나서 겉도는 이야기 하고, 주로 자기 자랑, 자기 이야기, 자기 인정욕구 확인하는 떠들썩한 만남보다도 훨씬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관계다.
그런데 이런 관계를 잘 맺어야 한다. 내가 파고다 공원에 잘 가지 않는 이유는 분위기가 우울해서다. 무료 급식속에서 줄 선 사람들, 지린내, 할 일 없이 무료하게 앉아 있거나 누워 있는 노인들...그런 곳에 가면 나도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우울해진다. 몇년 전만 해도 오히려 그런 곳을 다니는 것이 재미 있었다. 값싼 식당, 술집...노인들의 삶이 옛스럽고 푸근해서 종종 갔었다. 그런데 이제 내 몸이 아프고, 70이 다 되어 가니, 그만 가기가 싫어진다. 거기 모이는 노인들이 관찰 대상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그렇게 된 것 같아서다. 그냥 아프고, 빈곤하고...그런 사람들의 하나가 되어가는 기분 때문이다. 빈면에 종로 3가, 북촌, 서촌의 예스런 식당들은 마음을 푸근하게 해준다. 또 성수동의 화려하지는 않지만 젊은이들의 기운이 모이는 곳에 가면 활기가 솟는다. 홍대는 너무 정신 없고...해방촌의 신흥시장이나 근처 길거리, 용리단길, 송리단길을 걸어도 차분하고 여유 있는 기분을 느낀다. 그러니까, 거리 분위기도 중요하지만, 모이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기운이 중요하다.
오늘은 동네에서 밥을 먹고, 동네를 거닐었다. 기분이 착잡하고 우울했다. 지저분한 곳도 아니고, 모이는 사람들이 너무 빈곤한 곳도 아니다. 다만, 노인들이 너무 많이 보여서였다. 어딜 가나 노인, 노인, 노인, 노인, 노인...많은 이들이 다리를 절고...내눈에는 그런 것만 보인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대가 그런 시간이다. 출퇴근하는 젊은이들은 잘 모를 것이다. 지금은 차차 좋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무릎 관절염이 있어서 오래 걸으면 좀 아프다. 어깨, 팔도 약간 아프고...다행히 허리는 아프지 않다. 허리는 2, 3주일 아프다 낫었다. 어쨌든 환자 모드이다 보니, 온 천지에 노인, 환자...그러니, 갈 날을 종종 생각하게 된다.
잘때도, 아침에 눈 떠서도...부모님 돌아가실 때의 상황, 그 상태가 종종 생각난다. 나도 그날이 다가올 텐데...관념적인 죽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자기 발로 걷지 못하고, 자기 입으로 먹지 못하고, 휭휭 돌고...비틀거리고, 쓰러지고...결국에는 다 그런 거다. 요즘에 '단식 존엄사'에 대해서 슬슬 말이 나오는 것 같다. 책도 나온 것 같고...난, 원래 생각하고 있던 건데...그런데 한국에서는 의료법이니, 어쩌니 해서 가능하지 않다는데....그러니까, 가족이 옆에서 그렇게 도와주지 못한다는 것...(대만에서는 가능한가? 대만 사람이 쓴 책에는 그렇게 했단다. 21일만에 아주 편안하게 어머니가 돌아가셨단다. 책을 사봐야겠다. 책 제목이 '단식 존엄사')
국회의원들이, 엄한 짓 하지 말고...이런 것 가능하게 하는 법을 만들어야지..지금 우리가 닥치고 있는 심각한 문제가 이런 건데...
우울하지만 다시 심기일전한다. 좋은 관계를 맺자. 나에게는 이 사람, 저 사람, 이 조직, 저 조직과 관계 맺는 것이 관계가 아니다. 예전에 사회활동할 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좋은 기운, 좋은 정신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밥을 먹어도 친절한 식당, 커피를 마셔도 친절하고 편안한 곳, 책이나 영화를 보아도 정신 사납게 만드는 것들은 피하고, 아름답고, 편안한 영화, 기분 좋은 영화...여행을 가도 남들 다 가는 번화한 곳보다 넉넉하고 편안한 곳, 남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을 좋아한다. 예전의 내 경험에 의하면 아무리 경치가 좋고, 아무리 어디가 좋다고 이름나도...그런 곳은 대개 번잡스럽고, 인심사납고...그런 곳이 많았다. 멋진 사진이나, 자기 자랑하는 이야기 속에서 좋은 이미지가 퍼져나가도 막상 가면 안 그런 곳이 많았다.
책장의 책들을 시원스럽게 버리지 못하고 있다. 점점 과감해져야겠다. 이제, 나에게 좋은 기운을 주지 못하는 책들은, 척 보고, 과감하게 버려야겠다. 아무리 유행하는 지식이라도, 아무리 그럴듯해 보이는 내용이라도...좋은 기운, 선한 기운, 맑은 기운을 주는 책들만 남기고...샥 버려야겠다. 세상과의 관계도 그렇다. 나는 이제 심신이 허약해서, 그 모든 관계를 포용하지 못한다. 그릇이 아주 작아졌다. 내가 깨질 지경이다....거기다 외향형, 감성형이 아니라 내성적, 분석적인 intj다. 나같은 사람은 조신하게, 한적하게 살아야 생기가 간신히 생긴다.
그러므로, 이제 편안하고, 좋은 관계만 찾아야 한다. 이런 나를 보고 이기적이라고 비판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과거에 내 힘이 남아돌 때는 안 그랬었다. 내가 사람을 찾아다니고, 조직도 만들고...삽살개처럼 많이도 돌아다니며 관계를 맺었다. 그런데 이제는 늙고 병든 개처럼 되었다. 그럼 거기에 맞게 살아야지...솔직해져야지...그 상황에 맞춰 살아가는 방법을 계속 탐구 중이다. 좋은 관계란 과연 무엇인가? 이것도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경험에 의하면 기도, 명상 속에서 맺는 저 다른 세계, 다른 차원의 존재와의 관계가 최고로 기쁘고 펀안한 관계다. 종교적인 이야기는 길게 이야기 하지 않는데...그 어떤 종교든...하나님(하느님)의 은총이 폭포처럼 내려올 때, 부처님의 지혜가 천둥처럼 울릴 때...가슴 속에 희열이 차오르고, 방금 전까지 허망하고 고통스러웠던 세상이 기쁨에 차오른다. 그건 체험해본 사람만이 안다. 그 이유를 과학자들은 뇌속에서 도파민이 분비되어서 그렇다는데 ㅎㅎ....과학자들은 늘 이렇다. 어쨌든 뇌에서 도파민이 나와서 행복해진다는 것. ... 그런데 나는 다른 세계를 믿는다. 다른 차원의 세계가 있단 말이다..도파민이 왜 나올까?....다른 세계와 접속하니까 나오지. 무당이 접신 들려서 나오는 소리 모르나? 도파민이 스스로 나와서 무당이 쇼하는 것으로 보이나?...나는 우리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서 '환청'을 들었는데...실제...소리였다. 나는 어머니의 영혼이 나에게 외친 소리라 믿고 있다. 아내와 함께 누워 있었는데 나만 들었다. 내 귓가에 천둥처럼 울렸었다. 나는 모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거나, 체험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람들이 지어낸 것인 줄 알았는데...정말 내가 겪었다니까. 하나님이 아니라, 어머니지만. (그런 예는 종종 우리 주변에서 발견된다....몇가지 더 할 수 있지만, 그만 둔다. 어쨌든, 의심많은 사람들아, 과학만 추종하는 사람들아...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 이성과 오감으로 잡히지 않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어라...그리고 악한 짓 하는 악인들은 필멸한다는 것도 믿어야 한다. 사필귀정. )
그런데 문제는.... 어쩌다 그것을 느껴도 늘 그렇지 않다는 것...그러니, 헬스장에서 운동하며 근력 키우듯이, 늘 노력하며 심력을 키운다. 그런 차원에 눈이 뜨일 때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가 말한 다른 세계 '헤테로토피아'가 보인다. 그는 헤테로토피아를 철학적, 사회학적으로 풀었지만, 나는 그의 개념을 빌려와서 내식대로 풀이하고 있다. 체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야기는 나의 소설 '무인카페'나 '가족인줄 알았는데 사람이었어'에 나와 있다. 내가 지금 늘 찾고 있는 것도 다른 세계, 즉 헤테로토피아다. 그런데 나의 헤테로토피아는 다른 차원에서 내려오는 기운, 영혼이 합치되는 영역이다. 그때, 우리에게 익숙한 장소, 사람이 '새 하늘, 새땅, 새 사람'으로 바뀐다.
계속 그곳으로 가는 길 생각하고, 궁리하고, 느끼고, 체험하면서...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비록, 허망함, 아픔, 짜증이 종종 나를 치고 들어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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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브런치는 소설가 지상, 여행작가 이지상의 블로그입니다.
문학수첩에서 작년에 '무인 카페(2024)' 올해 '가족인 줄 알았는데 사람이었어'(2025)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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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인 줄 알았는데, 사람이었어 - 예스24
“우리를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낯선 체온에 몸을 기대는 시간,가족이 아닌 ‘사람’과 함께하는 순간들첫 소설 《무인카페》를 통해 소외된 개인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내 사라져 가는 유대를 회복하고자 했던 지상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 《가족인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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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인 줄 알았는데, 사람이었어 : 알라딘
첫 소설 《무인카페》를 통해 소외된 개인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내 사라져 가는 유대를 회복하고자 했던 지상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 30여 년간 여행작가로 활동하며 장소를 넘어 그곳에 사는 사람과 그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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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인 줄 알았는데, 사람이었어 | 지상 - 교보문고
가족인 줄 알았는데, 사람이었어 | 우리를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낯선 체온에 몸을 기대는 시간, 가족이 아닌 ‘사람’과 함께하는 순간들첫 소설 《무인카페》를 통해 소외된 개인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내 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