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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탐구22-권여선 작가의 '안반'을 읽고...

모녀지간의 갈등, 병간호의 어려움, 우리의 모습

by 작가 지상




연휴의 시작이지만, 나에게는 일상이 비슷하다. 단, 아내가 긴 연휴에 들어갔기에 그것만 조금 달라졌을 뿐. 헬스장 가서 운동하고 (사실은 재활치료 개념), 책 보고, 작품 구상하고...늘 똑같다.


2013년부터 읽었던 '올해의 문제소설'인데 드디어 2024년도 까지 왔다. 중간에 빼먹은 연도도 있지만... 1년에 12편이니, 약 120편의 단편 소설들을 읽었다. 단편소설은 장편과 달라 문학적인 분위기가 짙고, 평론가들,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들이 대상이다. 그래서 일반 독자들이 볼 때는 이해하기가 힘들 때도 있다. 또 단편을 실은 이 책들은 '문제적인 작품'들을 위주로 싣다보니 더욱 그렇다.


나는 장편 소설 '무인카페'(문학수첩, 2024)와 '가족인 줄 알았는데 사람이었어'(문학수첩, 2025)를 출간했지만 아직 소설가로서 많은 것이 부족하다. 기교도 그렇고, 소설에 대한 이해, 관점...이런 것들을 배워야 하는 입장이다. 그래서 이런 단편 소설 읽기는 현대 한국 소설의 흐름 같은 것을 알 수 있게 하여 많은 도움이 된다. 이해가 잘 안되는 것, 재미없는 것들도 있었지만, 감탄하는 작품들도 있었다. 그런 것을 일일히, 이곳에 쓰지 않았지만.......


그런데 2024년도 작품을 읽으면서 제일 처음 실린 '안반' (권여선)에 감탄했다. 물론, 그녀는 이미 많은 상도 수상한 작가이기에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동안 소설 문외한이었던 나는 이름만 알지, 작품은 보지 못했었다. 그러다 그녀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그 세계를 알게 되었는데...이번에 '안반'을 보면서, 와... 소설 잘 쓰네... 감탄했다.


물론 그전의 작품들도 다 좋아보였지만 왜 이번 작품에서 특히 내가 더 감탄했을까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우선 주제가 나에게 다가왔다. 딸 둘과 노모와의 관계인데 노모가 아프자 거기서 생기는 모녀지간의 갈등, 엄마와 딸들의 내면 묘사, 심리를 정말 실감나게 표현했다. 그것은 한 개인의 문제이기 이전에 이 시대의 보편적인 갈등, 문제 아닐까? 나는 문학평론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다만 독자로서 접근하는데, 나도 부모 병간호를 해보아서 그 심리, 갈등을 잘 안다. 그래서 특히 더 다가왔던 것 같다.


이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상황이 작가가 직접 겪은 것인지, 타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형상화 시킨 것인지, 두가지가 혼합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작가 권여선이 너무도 그 심리를 잘 표현했으며, 깔끔하게 소설로 잘 표현해서 감탄한 것이다. 사실, 나는 아버지가 의식을 잃고 2년반 무의식 상태에 있는 동안의 경험, 길고긴 어머니의 우울증 내지는 정말 이해하기 힘든 모습...그런 것을 겪어서 더 공감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그런 체험을 소설화시킬 엄두를 못낸다. 너무 상처가 깊고, 또 그럴 역량이 되지 않는다. 그 부분은 너무 아프고, 생각하기 조차 싫어서...글로 쓰고 싶지도 않고 그냥 나의 내밀한 부분으로서 '기도의 영역'에 머물 뿐이다.


이런 부분들은 너무 진지하게 들어가면 읽는 사람들을 불편하고 우울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런 소재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로 만드는 것은 소설에 대한 내공이 깊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 같다. 아무리 글솜씨가 좋아서 자기 이야기를 구구절절 할 수 있다 해도, 소설로 표현하는 것은 다른 영역인데, 권여선 작가는 그것을 멋지게 해낸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감탄한 것이다.


이 소설집에서 작품해설을 한 노태훈 문학평론가의 이야기를 압축하면 이렇다..


"지난 몇 년간 장단편 가리지 않고 많은 여성작가들의 소설이 독자들의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시대의 흐름, 독자의 요구와 결합해 폭발력을 보여주었지만, 동시에 반복되는 구도와 관계, 대동소이한 전개와 갈등은 여성 서사가 어느새 한계에 다다른 것처럼 보이게도 했다. 엄마나 할머니의 서사, 딸들의 이야기, 출산과 육아, 질병과 돌봄, 여성의 사회적 현실 등 여성의 이야기는 때로는 익숙하게 때로는 조금 특별한 방식으로 서사화되어 왔다. 만약 누군가가 이제 한국문학이 그려내는 여성 서사는 다소 뻔하지 않느냐고 물을 때 옹색한 답변밖에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냥 권여선의 ‘안반’을 내밀어도 좋겠다. 익숙한 여성소가 잔뜩 들어 있으면서도 특별한 이야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 같다. 여성들의 이야기이면서도 남성들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그리고 적어도 중년과 노년이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소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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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이렇다. 여든이 넘은 엄마(신숙)와 환갑을 앞둔 큰 딸 혜영과 아마도 50대 중후반인 둘째 딸 혜진의 이야기다.


신숙은 자신의 엄마(유재)가 아흔 하나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함께 부대끼며 살았는데 이제 자신이 여든살을 넘기면서 입원과 치료가 필요해진다.


처음에는 엄마 신숙이 위암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위암까지는 아니라 위안의 혹을 내시경으로 떼어내는 가벼운 수술을 받기로 한다. 첫째 딸 헤영은 이틀 정도 수술할 때까지만 병동에 있기로 한다. 엄마가 치매기가 있기에 자신이 옆에 있어야 한다고 병원에 거짓말까지 하면서.....그런 언니의 모습을 둘째 혜진은 말은 안하지만 '효도 충동'이라 생각하며 거리를 둔다. 그런데 그 수술을 하기 전에 열이 오르면서 새로 발견된 것은 '만성 신우염' 그래서, 그거 잡기 위해서 항생제 투여를 해야 한다는 것. 결국 첫째 딸 혜영은 엄마 곁에 더 머물게 되는데...결국 6일 동안...


혜영과 엄마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엄마는 완전히 애기짓을 한다. 의사나 간호사에게 말을 할 때도 큰 딸에게만 말하고 그것을 큰 딸이 다시 의사에게 말하는 식으로...모든 것을 큰 딸에게 의존. 그래서 큰 딸은 엄마가 스스로 좀 하라고, 예를 들면, 수액을 거의 다 맞으면 빨간 버튼을 누르고 간호사를 부르면 된다고 수없이 말한다. 하지만 엄마는 큰 딸에게 '수액 다 맞아간다'고 말을 할 뿐, 꼼짝 않는다. 그러자 큰 딸은 아까 말한 대로 엄마 스스로 해보라고 하지만, 엄마는 꿈쩍 않는다. 그러면서 들으라는 듯이 '다 맞고 그냥 있어도 괜찮겠지...' 하면서 끝까지 가만히 있는다.혈관에 공기 들어가면 큰일 난다고 생각한 큰 딸은 읽던 책을 탁 덮고, 일어나서 엄마 대신 빨간 버튼을 누르며 화를 참는다. 그런데 그걸 엄마가 보면서 슬그머니 웃는다. 니가 나를 무슨 수로 이겨....하는 것 같아서, 큰 딸은 꼭지가 돌고...ㅎㅎㅎ...그렇게 큰 딸에게 의지하면서도 막상 딸의 이야기는 잘 듣지도, 믿지도 않는다. 그러니 병간호 하는 딸 입장에서는 화가 치민다.


그런 속상한 이야기를 혜영이 전화로 동생에게 이야기 하니 혜진은 '아, 진짜 사람 울화통 터지게 하네" 말한다. 그리고 바로 그말은 외할머니가 늘 하던 이야기였음을 기억하면서 혜진은 외할머니, 어머니, 언니, 자기 안에...같은 요소들이 있음을 본다.


독자들은 이 부분에서 아, 80대 아픈 할머니 대신해서 큰 딸이 버튼 누르고, 앞장 서서 하면 안되나...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반대로 할머니가 참 너무 애기짓 하네...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주목하는 것은 작가가 이 세모녀의 언행을 보여주면서, 셋 안에 같은 요소가 있다는...그 징글맞은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누가, 누구 탓을 하기 전에, 각자는 다 어느 정도 이기적이다. 사실, 할머니가 딸 폐끼치는 것이 싫어서 스스로 해도 된다. 반대로 딸이 반대로, 우리 엄마 불쌍해서 앞장 서서 다 해줄 수도 있다. 그리고 작은 딸도 언니 고생하는 거 보면서 자기가 교대해줄 수도 있다. 세 여인이 서로 배려하는 성격이면....그런데, 세 여인이 다 자기 중심적이다. 엄마도, 큰 딸도, 작은 딸도...그리고 외할머니도.....다만 큰 딸은 의무감으로 총대를 메고 한다. 그러면서도 속에서는 열불이 터진다....그 상황을 묘사와 언행을 통해서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외할머니 유재는 옛날 여자들이 그렇듯이 여자를 우습게 알았다.


“딸년들 너무 오냐오냐 키워봤자 소용없다. 시집가면 그뿐이다.”


또 외할머니는 손녀들이 엎드린 모습을 보고 ’기집애들이 안반만 한 궁뎅이를 내놓고 뭐하고 있는 짓이야‘ 하고 소리친다. 나중에 혜진이 알아보니 '안반'은 떡을 치는 넓적하고 두꺼운 판이었다. 혜진은 말한다. 중학생, 고등학생 손녀의 엉덩이를 보고 할머니가 그게 할 소리인가, 떡을 치는...ㅎㅎㅎㅎ....


그런 분위기 속에서 외동딸 신숙은 자라났고, 자기 엄마를 모셨다. 그렇게 딸이나 손녀들을 무시하던 할머니 유재는 정작 시집간 딸 신숙 옆에 찰싹 달라붙어 평생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신숙 역시 80대가 되어 첫째딸에게 찰싹 달라붙어, 손하나 깜짝 안하고 애기짓을 한다. 대물림인 것이다. 할머니 유재는 앓다가, 일흔의 딸 곁에서 곡기를 끊고 굶어 죽어갔다... 무엇인지 밝히지는 않았지만 외동딸 신숙은 죽어가던 엄마 유재 앞에서 '엄마 내가 그것만은 못해...'하면서 절규했는데, 그 다음부터 유재는 곡기를 끊었다. 그 이유는 소설에 표현되지 않았다.


그런데 병동 안에서 혜영은 옆의 환자들로부터 이런 것을 목격한다. 어떤 50대 중반의 남자가 자기 엄마에게 "이 노인네야...왜 사람 말을 못 알아먹어"라고 외친다. 그러다 존댓말로 정중하게 사과하는데 그 대상이 엄마가 아니라 간호사였다. 그리고 나중에 이어지는 소리 "이 노인네야...됐다고요..." 늙은 부모는 야단맞는 애들처럼 앉아 있고...이런 세태를 보여준다.


둘째 딸 혜진은 쿨하다. 언니에게 전화로 "언니도 그렇게 화를 내!"라고 말하지만 혜영은 엄마를 가엾게 여기자고 골백번이나 다짐하면서도 그게 잘 안된다고 말한다. ....감정이 폭발하고, 엄마를 미워하게 되고, 피하고 싶고...그렇게 된다면서 한숨을 내쉰다.


신숙이 퇴원하는 날 둘째 혜진이 병원에 가보니 평소에 다정한 척하던 엄마와 첫째딸 혜영은 거의 원수지간이되어서 쳐다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엄마는 준비 된 말을 한다.


"우리 맏딸 혜영이, 우리 효녀 딸, 엄마 때문에 그동안 고생 많았다."


그러나 혜영은 고개를 돌린다. 하지만 아직 위수술을 받아야 하는 것이 남아 있다. 혜영은 죽어도 병간호 못하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둘째 딸 혜진은 말한다.


“당연하지. 언니 하지 마. ”

“그럼 헤진이 네가 할래?”

"내가 왜? ...난 안해, 병원에서 통합으로 간호 간병 해주는데 왜?"

“아, 그래 그렇지. 병원에서 다 해주는데 내가 미쳤지.”


(그러나 혜영은 나중에 다시 자신이 들어가서 병간호를 한다고 결심한다. 책임감 높은 장녀의 모습이다.)



혜진은 언니의 소리가 듣기 싫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관계들을 끊고, 혼잣말의 세계로 침잠하고, 그날 먹을 저녁 음식 생각이나 한다. 그렇게 뒤로 물러나고 막을 친다. 그러면서 엄마와 언니, 그리고 자신을 본다. 상대방의 입장 따윈 고려하지 않고, 자기 사정만 쏟아놓으면서 점점 무서워지는 존재에 혜진도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엄마 신숙과 언니 혜영도 모두 스스로를 소모하고 닮은 상대를 갉아먹으며 마치 그것이 삶의 동력이 되는 양 살아가고 있다. 엄마를 보면 미칠 것 같으면서도 끝내 엄마를 모시고 다니는 혜영...그런 언니의 온갖 스트레스와 우울을 지켜보면서도 결코 자신이 나서지는 않고 야박한 혼잣말 만 하는 혜진. 혜진은 언니의 푸념을 들으면서도 ’어제 사 놓은 시금치로 무얼 만들어 먹을까‘ 하는 생각에 골몰한다. 거리를 두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돌아가는 언니를 보며 울음을 터트린다. 언니도 환갑이 다 되어가는데......


혜진은 엄마가 부산의 고모와 사이좋게 살았던 시절을 떠올린다. 그때가 행복했었다. 그런데 고모 집 딸들은 귀하게 자라났지만 그 공주같은 딸들을 외국으로 조기 유학 보낸 후, 고모는 외로움에 시달리다 자살했다. 그러니 고모처럼 우아하고 고상한 여성의 삶도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집에 돌아온 신숙은 둘째딸 혜진에게 전화 걸어서 하소연한다. 병원에 가서 주사 맞고 돌아오면, 언니가 밥을 한번도 안 먹고 간다고...자기가 준비 다 해놓았는데도...집에 들어오지도 않는다고...그래서 혜진이 언니에게 엄마가 언니 밥 안 먹고 간다고 서운해한다고 말하자 혜영은 외친다.


"내가 그것까지는 못 하지. 할 필요도 없고. 엄마는 바랄 걸 바라야지.” (왜 그런 걸까? 소설에 설명은 없는데...아마도 밥먹고 나면 설겆이 하는 그런 것이 싫어서?...혹은 엄마가 징해서...좀 거리두고 싶은데, 자꾸 당기니까?....혜영은 엄마로부터 거리를 두는 시간이 필요한데..?)


오, 그렇지 하는 말이 튀어 나오는 걸 삼키며 혜진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도 제법인데.



혜진은 그런 것을 보면서 세 모녀가 서로 갈등을 겪으면서도 어떻게 그리 닮았을까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술날, 언니는 들어가서 3일 동안 병간호하겠다고 말한다. 첫째 딸의 의무감이다. 혜진은 그 말을 듣고서도, 돌아오는 길에 오늘 뭘해서 혼자 먹을까, 아무도 주지 않고 나 혼자 맛있는거 뭐 해먹을가만 생각한다.


그리고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엄마 신숙은 가책은 찾아볼 수 없는 평온한 얼굴이었다고 기억한다. 소설은 이렇게 끝난다.


이제 혜진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어떤 딸에게는 평생 처음 맞이하는 엄마 없는 날들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을. 때로는 평온하고 행복할 수도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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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다 읽고나서 한동안 여운이 남았다.


엄마없는 날들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우리 통념에 엄마는 그리운 존재고, 뭐든 베푸는 존재지만...어떤 이에게는 엄마 없는 날들이 그리 나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의무로부터 해방이니까... 이런 심리가 다분히 있지 않을까? (나의 경우는 좀 다르지만...)


내 과거의 기억들이 떠올랐다..이 작품을 보고 윤리성 따지고, 혹은 부모자식간의 도리 따지고, 혹은 이 과정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이냐를 따지고...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소설을 그런 식으로 보지 않고...참 기가막힌 상황을 잘 보여주었다는 데 대해서 감탄했다.


사실...이것이 우리의 모습 아닌가? 과도하게 비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칭찬할 수도 없는...


나는 무엇보다도 세 모녀의 비슷한 점, 반복되는 애증관계를 정말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지언정, 모녀 관계든, 부자지간이든, 혹은 모자지간이든, 부녀지간이든...어느 집에서나 보이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병원에 갔다가 40대 중반 정도 되는 자식이 휠체어에 앉은 아버지에게 "아픈 게 유세야? 그거 하나 정도는 스스로 할 수 있잖아. 자 스스로 닦아봐. 아픈게 유세가 아니잖아!" 하는 것을 목격했다. 할아버지는 눈을 꼭 감은 채 입에 묻은 침을 휴지로 간신히 닦고 있었다. 아들은 남들이 듣든 말든, 계속 그렇게 험하게 아버지에게 소리쳤다... 지옥같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말을 하는 아들은 그 아버지의 아들이며, 그 아버지가 아들에게 자라면서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들은 그 가정에서 보고 배운 게 그런 방식이지 않았을까? 그말을 되돌려주고 있는 것 아닐까? 혹은 작은 복수심에...혹은 그 엄마가 아버지에게 하는 말을 흉내내고 있든지...자기 엄마와 통화를 할 때는 아주 부드럽게, 서로 이야기가 잘 통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제3자로서는 우선 아들의 그 험한말이 듣기 싫고, 기가 막히지만, 그 가정 속으로 들어가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또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를 2년 반동안 병간호 하고, 엄마를 근 15년 동안 병원에 모시고 다니면서 수많은 일들을 겪었다. 가기 싫어하는 분을 간신히 모시고 다니고, 병원에 가서도 만사가 귀찮다는 듯이 하시고...잘 안 따라 주었을 때...정말 힘들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병원에 모시고 다닌 것이 잘한 것일까...하는 의심도 든다. 늘그막에 엄마를 더 괴롭힌 것은 아닐까? ...또 워낙 씻기를 싫어하셔서 한번 목욕시키려면 엄마는 에구구구...소리를 질러서, 옆집에서 들으면... 자기 엄마 잡는 줄 알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래도 웃어가면서 해결하고, 달래고 그랬지만... 그 과정에서 기진맥진했었다. 그런 이야기 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그리고 당연히 신경질도 내고, 화도 낸 적도 있었고...그것이 다 죄책감으로 남아 있고...그래서 노인을 모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다 병이 나면... 간성 치매도 겪고, 그외의 이야기들...많이 있다....(가장 힘든 것이 치매 환자라고 한다. 정말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숨이 막힐 정도다)


그런데 내가 그런 것을 소재로 소설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어떻게든 이야기야 만들겠지만...자기 이야기를 넘어서, 타인들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형상화 시킨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쓴다면 어떤 식으로든 해결책을 보여주고 싶은데...그래야 쓸 힘이 생기는데...아직 그런 것이 없다. 그러니 못쓴다. 쓸 힘과 의욕이 없다. 다만 아플 뿐이다. 또 해결책이 있겠나...하는 생각도 들고...그리고 수없는 이런 케이스들을 생각하면...그저 가슴만 답답할 것 같다. 쓰나미처럼 몰려올...이런 시대가.


사실, 요즘 그 처절한 이야기들은 50대, 60대 같으면 많이들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소설의 이야기 자체로만 보면 현실 속의 이야기들보다 그리 강렬한 것은 아니다. 더 힘든 사례들이 얼마나 많겠나? 거기에 따른 울화, 분노...혹은 죄책감...복잡할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런 것들을 너무 깊게 건드리기 보다는, 우리가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선에서 훌륭하게 표현한 것 같다. 그래서 읽고 나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마지막 말이 떠오른다.


이제 혜진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어떤 딸에게는 평생 처음 맞이하는 엄마 없는 날들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을. 때로는 평온하고 행복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 고령화 시대다. 그런데 노인의 입장이 아니라, 노인을 부양하는 특히 50대, 60대 입장에서...바라보는 시각도 필요해진다. 내가 살아온 경험에 의하면, 즉 30대 후반에 아버지를 잃고, 50대 초반에 어머니를 잃은 나의 입장에서는 부모의 죽음은 애통하고, 슬프고, 큰 상실감을 느끼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제 80, 90을 사는 세상이 되었기에 자식들은 50대, 60대...혹은 70대인데...자기도 늙어 가며 힘들 때인 것이다. 50대도 자식들 키우고, 교육시키려면...한참 힘들 때다. 그런데 부모는 아프기 시작한다. 이때 독립적으로 잘 살지 못하고 자식들에게 의존하면, 이제 자식들은 너무 힘들어진다. 꼭 병 수발이 아니더라도...경제적으로도 그렇고...심리적으로도.


요즘 자식세대들은 우리 세대와 다른 것 같다.ㅡ 나는 만 67세의 남자다ㅡ 내가 기억하는 부모님들의 삶은 너무 힘들고, 고생하고, 자식을 위한 희생적인 삶을 살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모두 못사는 가난한 나라, 가난한 시절이었기에... 그러니 이렇게 좋은 세상을 살다보면 부모님의 그 힘든 삶이 생각나고, 불쌍하다. 돌아가시고 나니, 더 잘 해드렸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만 이른 나이에 가시고 보니...슬프고 괴로운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만약 우리 부모님이 아주 늦게까지 앓았으면, 내 마음이 이럴까? 아닐 것 같다. 그렇게까지 상실감이 크지 않을 것 같다. 사람 마음은 다 그런 것이다.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왜 있겠나?)


우리 자식 세대들은 자기 부모들, 즉 50대, 60대들은 그래도 풍요롭게 사는 것을 많이 보았다..해외여행, 국내 여행 즐기고...맛집 찾아다니고...배울만큼 배우고...그런 모습을 보았기에, 자식들이 부모를 불쌍하고, 측은하게 여기기는 힘들 것 같다. 특히 재산이 좀 있는 집은...부모가 자기보다 잘 살고, 재산도 있다보니...이 경쟁사회, 취업 전쟁, 돈 벌기 힘든 시대에....자기가 불쌍하지... 부모가 불쌍한 것이 아니다. (비록, 부모가 힘들게 살고, 자식 위해서 희생했어도...아이들이 그거 아나? 겉으로만 보지.)


그러니 이제 불쌍하지 않은 부모, 자기 챙길 것 다 챙기는 부모, 자기보다 더 잘 사는 것처럼 보인 부모를 봉양한다? 병간호 한다?...그건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불쌍하지 않으니까,,,자신이 더 불쌍하고, 자신이 더 힘들다고 생각하니까...오히려 부모에게 뜯을 돈을 생각하고, 자신의 서바이벌을 생각하게 되며, 부모가 병들면...당연히...신속하게 요양병원으로.....그래서 자식에게 의존하려는 부모는 질색을 하고 도망치게 되는 심리가 있다. 자유, 해방을 찾아서...


젊은 나이에는 그런 속성이 있지 않은가? 나 역시 부모님이 건강했을 때는 배낭 메고 토꼈었다. 그러다 아버지가 쓰러졌을 때 돌아와 병간호한 거지...그런데 나처럼 부모 건강할 때 도망가서, 내 멋대로 산 사람이 아니라면......궤도 속에서 힘들게 일하면서 산 젊은이라면....혹은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중년이라면...이제 부모 봉양, 병간호 한다는 것은 자칫 '울화통' 터지는 일이 될 수도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 자기도 곧 병석에 누울 중년, 노년이라면...내 인생은 뭔가...하는 생각도 들 수 있고...그래서 젊은이들은 처음부터 토낄 생각할 수도 있고...(서양, 일본에서는 이런 현상이 이미 있었었다. )


요양병원 하는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인데...이미 20년 전이다. 토요일이면 다들 의자에 앉아서 오지 않는 자식들을 하루 종일 기다린단다...처음에는 자식들이 1주일 마다 온단다. 그러다 2주일 마다 한 번, 1개월 마다...그러다 6개월 지나면 거의 다 안 온단다...아주 뜸해진단다. 예외없이....예외는 있겠지만 그것이 세태라고 했다. 요양병원에 버려지는 셈이다. 돈만 내고...부모가 퇴원해서 찾아갈 수도 없고...



작품에서도 나오지만 첫째 딸은 그래도 책임감, 의무감으로 한다. 속에서 열불이 터져도 할 것은 한다. 그런데 사이는 점점 나빠져 간다. 둘째는 남의 일 바라보듯이 쿨하게 바라보고...내가 이 작품에 감탄한 것은 그런 세태와 심리를 잘 묘사한 것을 넘어서...이 세 모녀가 결국은 비슷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각이다. 부모자식 간에서 서로 배려하고, 위하는 것이 아니라...자신이 먼저라는 것...그것을 서로 잘 알기에...서로 싫어하고, 또 이겨 먹으려고 한다....그런데 그것을 눌러주고, 묶어주는 것이 윤리다. 그래도 부모를 챙겨줘야 한다는...그런데 그것으로 인해 '울화통'이 치민다.


자식 없는 나로서는 당연하지만, 자식이 있어도...결국...의존적이 되면 안된다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해서 본다. 독립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신체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의존적이 되는 순간, 현대의 젊은 자식들은 울화통이 터지면서, 소설에서 보듯이 서로 갉아 먹는 관계가 되거나, 토껴 버리는 현실이 된다.


우리 때는 그래도, 싫으나 좋으나...윤리라는 것이 우리를 묶어주어서, 울화통이 터져도 할 거는 하는데...즉 언니 혜영이처럼. 그런데 동생은 다르다. 자기 먹을 것만 생각하고 거리두는 존재. 결국 이 소설은 현재 인간의 심리를 깊이 있게 참 잘 묘사한 것 같다. 언니와 동생의 차이에서 오는 태도, 또 나이에서 오는 세대 차이의 모습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을 두번, 세번 다시 보았다.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앞으로 권여선 작가의 작품들을 단편이건, 장편이건 죽 쫓아가면서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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