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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탐구23-고요한 추석,변곡점이 필요하다

추석 명절 차례를 없앴는데...

by 작가 지상




며칠 전 날 밝을 때 찍은 사진.

하늘만큼이나 나에게 추석은 고요하다.


한동안 팔 나은 것 같아서 블로그 글도 좀 쓰고, 이런저런 일을 했더니 팔, 어깨가 또 아프다. 아...글 길게 쓰면 안되는데...좀 쉬어야 하고.


그래도 시장에 가면 북적거린다.

우리 집에서 설날, 추석 차례를 없앤지 몇년 되었더라? 생각도 잘 안난다. 약 10년 정도 되었나?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친구는 차례를 지낸단다. 어머니가 계셔서. 하긴 우리도 어머니 살아 계실 적엔 지냈었다. 돌아가시고 나서도 몇년은 지냈던 것 같다. 그리고 집안의 짱인 내가 앞장 서서 없앴다. 하지만 나는 설날, 추석에 차례 지내고 전통을 지키는 것을 좋게 본다. 단,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너무 힘들지 않은 상태라면...그런데 여자들이 너무 힘들다면, 또 가족 불화의 요인이 된다면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본다.


우리는 아내가 나이 들어가고...너무 힘들어 보여서 내가 앞장 섰었다. 그동안 쌍코피 터지는 거 두번 보았었다. 직장 다니며 그런 거 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체력도 안 좋은데...그리고 우리는 사정이 있어서 제수씨와 아내가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아내가 함께 준비 했었다. 그런데 옆에서 도와주는 나도 힘들었다. 우선 집 청소하고, 온갖 재료 사오는 것 도와주는 것만 해도 힘들었다.


남자들...자기들은 하나도 안 하면서, 그까짓 것, 1년에 두번 하는 것 같고, 여자들이 너무 힘들다고 말한다면...직접 해보시라. 하긴 요즘 여자들은 우리 어머니 때에 비하면 편하지. 하지만 내 나이 들고 보니, 우리 어머니 일상 사느라, 차례 지내느라, 제사 지내느라...얼마나 고생했나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그걸 기준으로 하면 안된다. 그리고 요즘 여자들 직장 생활 많이 하고, 육아에 힘들다.


이 모든 것이 남성 중심의 사회, 농경 사회, 전 근대 사회의 유산이고......모든 것이 여성들의 수고와 노고에 의해서 유지된 유산이다. 여자들이 수고하고, 남자들이 앞에서 폼 잡는 문화....뭐, 그런 사회에서는 그렇게 살았지만 세상이 변하면, 거기에 맞춰 변하는 것이 상식이다.


처음에 차례 그만 둘 때, 오히려 아내가 찜찜해 했다. 늘 하던 거, 안 하니까 편하기는 한데 뭔가 자기 할 일을 안하는 것 같은 느낌. 나도 내가 콩가루 집안 만든다는 기분...그런 것이 있었다. 그러나 이모저모로 생각하니,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밀어붙였다.


그렇다고 명절 차례 없애고 나서, 띵가띵가 놀자, 여행이나 가자...그런 분위기는 아니다. 이런 거 안 지내고, 내 멋대로 살자는 주의는 아니다. 오히려 명절 차례 없애면서 더 부모님의 노고를 생각하고 늘 기도하고, 감사하고 있다. 명절 차례 없앴다고 콩가루 집안 만들었다는 기분은 이제 전혀 없다. 오히려 집안의 질서와 분위기가 더 충실해졌다는 기분이 든다. 동생도 나도...종교의 덕인지도 모른다.


나는 젊을 때는 전통, 권위, 관습...이런 거 정말 싫어했고,중년, 노년이 되면서 아내 생각해서 이런 것 없앴지만...그래도 이런 전통의 장점은 많다고 생각한다. 가족이 오래간만에 모여서 함께 조상 앞에서 절하고, 세배하고, 덕담 나누고, 먹고, 즐기는 문화...좋은 거라 생각한다. 화목하다면 정말 훈훈한 거다.


다만, 그것이 너무 가족 구성원을 힘들게 하고, 갈등 요소가 되고, 여성들이 너무 힘들어 하면...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다만, 조상이나 가족을 배려하고 서로 챙기는 그 마음은 다른 방식으로라도 표현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그게 없으면 너무 삭막해진다. 엄숙한 의식보다는 허심탄회하고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더 중요해진다. 그런데 이런 의식을 너무 강조하면, 오히려 대화할 시간은 사라지고...거기에 충실한가, 아닌가...이런 것 갖고 따지고, 갈등 생기고...그런 거다. 힘들게 의식 치르고 나서 휭 떠나가면 그만인...뭔가 의무를 다했다는 마음만 있으면...그거 지나가고 나면 허탈한 거다. 그래서 이런 거 안하면 다른 방식으로라도 경건한 마음...감사하는 마음...가족을 배려하는 마음...이런 것이 생기는 방식을 만들면 아주 좋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각자가 만들어내는 수밖에...


뭐, 집집마다 상황은 다를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없고, 조카들도 다 크고...외국에 있고...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아내는 점점 나이들고, 나도 몸이 아프고... 그리고 지난 20년간 열심히 해왔기에...이제 아내를 그런 것으로부터 졸업시키고 싶었다. 제사도 간소하게 추모 기도로 대체했다.


나는 내 일, 일상, 사회관계, 혹은 이런 집안의 일에 대해서 늘 변곡점을 생각한다.


열심히 할 때가 있고, 물러설 때가 있으며...인연을 넓힐 때가 있고 축소할 때가 있으며 끊을 때가 있다. 돈이나 경험을 늘릴 때가 있으며, 또 나눌 때가 있다... 좌로 기울어질 때가 있으면, 우로 기울어질 때도 필요하고...앞으로 나갈 때가 있지만 뒤를 돌아보는 것도 필요하다. 고칠 때, 개혁할 때가 있지만 지키고 방어해야 할 때도 있다. 열심히 운동하다가도 쉬어주어야 하고, 쉬다가도 또 조이면서 땀흘리는 것이 필요하다. 잘 먹다가도 가끔 속을 비우고 굶는 것도 좋다. 바쁘게 살다가도, 좀 느릿하게 속도를 줄여야 하고...또 느릿하고 여유있게 살다가도, 뭔가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기쁨도 필요하다. 마음을 비우고 체념하고 버릴 때도 필요하지만, 젊을 때는 채우고, 욕심부리고, 획득하는 노력도 중요하다. 뭘 채우고, 많아야...비우고, 버리는 맛이 있지...늘 버리고, 비워서 재물도 없고, 욕심도 없으면.....나중엔 버릴 것도 없고, 오히려 무기력해진다. 또 남에게는 버려라, 비워라...말하면서, 사실 자신의 삶은 생존을 위해서 부지런히 채워야 하는 상황이라면...그 허세와 괴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같은 속인들은 채움과 비움, 욕망과 체념...육체와 정신, 조이기와 풀기, 잇기와 끊기를 계속 해가면서 사는 수밖에 없다.


어떤 하나를 꼭 붙잡고, 그것이 사람이든, 관습이든, 정신이든, 삶의 스타일이든...어떤 하나에 의지하면서...자기가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뭔가 좀...잘못되고 있는 거다. '자기'라는 에고, 존재를 중심에 놓고 딱 지키는 삶이 과연 잘 사는 것일까?...나도 그런 생각을 가진 적이 있지만...그 에고, 존재란 허상같은 것이고 기운의 집합이다. 결국, 거기에만 집중하면...허망함, 외로움만 남는다. 그건 나이 들고, 병들어 봐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내가 인간, 에고에 집중하는 휴머니즘에 대해서 회의하는 이유다. 그것이 보수든 진보든...그럴듯 해보이고 달콤하지만...결국 우리 인간 세계 위의 존재, 차원, 기운...이런 것을 생각해야만 하는 이유다.


인간은 그런 고차원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고...아는 체 해서도 안된다. 그럼 함정에 빠진다.

인간은 그저 이 상황 속에서 적절하게 왔다갔다...하며 중심을 잡는,움직임, 운동...그런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 앞에 펼쳐지는 시간 속에서 '변곡점'을 찾는 것이 중요해진다. 언제가 변곡점인가?...변곡점?....


그것은 시대의 흐름과 함께, 자신의 상태...타인의 상태...전체적인 구조, 상황을 두루두루 보는 가운데 보이는 것이라 나는 느끼고 있다. 이론도 필요하지만...감이 필요하다. 젊은이들이 오락가락, 실수하는 이유는 그 '감'이 부족해서다. 이론 아무리 많이 알아보았자(종교건, 정치건, 사회건)...감이 부족하면 헛다리를 많이 짚게 된다. 물론 나이 들어도 개차반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저런, 온갖 경험을 하고, 실수도 하고, 모욕도 당하는 가운데 '감'이 자라난다. 나갈 때와 물러설 때...이을 때와 끊을 때를 알게 된다.


그럴려면 결국 자기 성찰, 반성부터 먼저하고...공부해 가면서, 수양하면서...주변을 또 살펴보는 노력이 필요해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에 대한 솔직함이다. 이거 적당히 속이고, 얼버무리면...그저 뱅뱅 다람쥐 쳇바퀴 속을 돌게 되고 남의 말에 휘둘리게 된다.


그런데 이런 말 하는 내가 그럼 잘 하냐? 그건 아니지....이런 글과 말과....실전은 좀 다르다. 나는 원래 늦깎이라서, 수많은 실수를 하며 살아왔고, 지금도 ... 살아갈수록...사는 게 더 조심스러워질 뿐이다. 전체적으로 나는 이제 조금씩 물러서야 하는 변곡점에 다다른 것을 느낀다.


우리 집은 설날이나 추석 무렵, 적당한 때에 시간 내서 동생 식구들과 모여서 식사한다. 즐거운 마음으로... 아주 좋은 곳에 안가도 동네의 편안한 곳에서 모여 ... 그렇게라도 안 하면 가족 간의 만남도 뜸해지니까. 그리고 명절 때는 어디 안 간다. 사람들이 워낙 많이 이동하니. 그리고 자식이 없으니 연락을 기다릴 일도 없고...조카들은 뭐, 자기 삶만 잘 살아줘도 흐뭇한 것이고...그러니 집에서 고요한 명절을 보낸다. 평일처럼 보낸다. 뒹굴거리고...동네 골목길 걷고, 혹은 시내의 한적한 곳에 나가거나...


아, 오늘 추석 맞이 청소를 간단하게 했다. 아내는 목욕탕 청소, 냉장고 청소...나는 내 책상, 기타 등등 청소. 그것만 해도 족하다. 송편을 2만 원어치 사왔다. 한동안 밥, 샌드위치 대신 송편이다.


지나가다 본 개. 스탠다드 푸들이라고 한다. 보기만 해도 푸근해진다. 이제 개나 고양이가 식구가 된 사람들 많을 것 같다. 우리의 명절 풍속, 가족 구성원도 많이 변해가고 있다. 이제 곧 AI 로봇도 나올 것 같다. 사람은 상황에 따라서 이럭저럭 살게 마련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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