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쓰는 C경영학 시리즈 6
'책임'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는 실로 상당하다. 개인에게는 나이와 직급이 올라가면 갈 수록 느끼는 무게감이 다를 수 있고, 회사는 규모가 확장되며 사회적 영향력이 커질 때 비로소 이 단어가 주는 무게감을 느끼게 된다. '책임'이라는 단어는 누구나 싫어하는 단어일 것이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직장생활 현장에서는 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각종 권모술수가 있다. 그런데 이렇게 무시무시한 단어 앞에 우리 사회는 '기업'이라는 단어를 놓고, '사회적'이라는 단어도 은근슬쩍 끼워놓으며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져야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기업은 자선단체도 아니고, 정부도 아니다. 그런데 왜 계속 기업에게 사회는 그 '책임'이라는 짐을 지우려고 하는 것일까? 본 글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다시 살펴보고자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사회적 책임이란 1979년에 1)아쳐 캐롤(Archie Carroll)에 의해 개발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이론적 틀을 기반으로 한다. 이 모형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경제적(economic), 법적(legal), 윤리적(ethical), 자선적(philanthropic) 책임과 같이 네 가지를 주요 영역으로 분류한다. 경제적 책임이란 기업이 경제적으로 많은 이익과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며 대부분의 기업이 생존을 위해서는 경제적 책임이 뒤따른다. 법적 책임은 기업 경영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기준에 따라 경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 경영에는 수 많은 유혹이 도사리고 있으며 현재에도 여전히 많은 기업인들이 유혹에 빠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부분의 자세한 내용은 후술할 예정이다. 윤리적 책임은 사회가 옳다고 정의한 기준을 기업이 충족시키며 기업을 경영하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예컨데 아동 노동의 금지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설령 개발도상국의 아동 노동이 가족 생계에 기여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복지에 크게 기여한다고 해도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없듯이 아이들을 노동자로 이용하는 것은 비윤리적인 것이라고 결정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선적 책임이다. 최근 국내에서 가장 핫한 경영자는 부영그룹의 이중근 회장일 것이다. 직원들에게 출산하면 1억원을 지급한다던가 회장의 고향에 거주하는 지역 주민들에게도 최대 1억원 씩 나눠주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따라서 자선적 책임은 지역사회 봉사, 사회적 문제 해소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기업이 이러한 사회적 책임을 잘 감당하지 못할 경우 사회는 가차없이 기업이 가진 것들을 빼앗아 간다. 그래서 혹자는 빼앗아 가기 전에 알아서 적당히(?) 사회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1) Archie B. Carroll is a professor emeritus at the Terry College of Business at the University of Georgia.
그런데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바는 캐롤 교수도 주장했듯이 각각의 영역은 별도의 독립된 내용이 아니며, 오히려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일종의 균형과 원칙에 따른 기업 경영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다음의 기업 경영 사례를 통해 각 영역 간 균형을 잡지 못할 때의 기업 경영의 결과에 대해서 살펴보자.
Case 1) 멜든 방직회사(Malden Mills) - 윤리적 책임과 경제적 책임의 균형
미국의 멜든 방직회사의 사례는 CEO의 윤리적 결정을 통해 사회로 부터 많은 찬사를 받으며 모범 사례로 칭송받았으나 결국 그의 회사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며 파산에 이른 대표적인 사례이다. 멜든 방직회사는 1995년 큰 화재로 제조 시설의 대부분이 파괴 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 이 때문에 생산은 중단외었고 약 3,000여 명의 많은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했는데, 당시 CEO였던 아론 포이어슈타인(Aaron Feuerstein)는 직원을 감축하거나 임금이 저렴한 해외에 공장을 짓는 등 회사를 정상화 시키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직원들의 고용을 보장하고 정상적으로 급여를 지불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는 잿더미로 변한 현장을 뒤로하고 공장을 다시 세우겠다고 발표했고, 1997년 공장은 재건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지역사회에 모범적인 리더십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그의 회사 재정 상황은 좋지 않았다. 화재 보험금 전액을 공장 재건에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재건 비용을 충당하기엔 부족했고 누적된 부채는 여전히 회사의 자금 사정을 짓눌렀다. 기존 고객이 요구한 납기를 맞출 수 없었기 때문에 현금흐름 역시 악화되었다. 창사 100주년을 곧 앞에 둔 멜든 방직회사는 2001년 끝내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채 파산하게 된다. 지금의 시점에서 다시 살펴본 CEO의 선택은 과연 위대한 의사결정이었을까? 윤리적으로는 직원들의 고용을 보장하고 생활을 안정시켰으니 탁월한 의사결정이었을지 모르지만 기업의 경제적 책임 관점에서는 실패한 경영자임에는 틀림없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결코 윤리적 의사결정이 잘못되었다고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다만 경영자에겐 눈물을 머금고 결단을 내려야 할 때도 있다는 것과 기업인으로서 경제적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점을 비판하는 것이다. 현실은 냉험하다. 그가 아무리 과거에 훌륭한 경영자라고 칭송받았다 하더라도 그는 그가 사랑하는 기업을 떠나야만 했다.
Case 2) 관정장학재단과 삼영산업 - 자선적 책임과 경제적 책임의 균형
서울대 관악캠퍼스를 방문하면 정문을 제외하고 상징적인 건물이 눈에 띈다. 기존의 중앙도서관 뒷편에 위치한 관정도서관이 그 주인공이다. 관정도서관 열람실에 올라가면, 관악캠퍼스 전경과 서울 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관정 이종환 선생이 단일 기부로는 사상 최대인 600억 원을 기부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그는 경남에서 꽤 큰 기업인 삼영화학그룹을 일궈내고 경영한 실업인이다. 또한 해외 유학을 고민한 사람이라면 한번은 들어봤을 관정이종환장학재단을 2000년에는 일찍이 설립하였고, 노벨상을 수상받을 수 있는 세계적인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고인의 포부는 존경받을만 하다. '1조 기부'라는 실로 믿기지 않는 기부액은 그가 얼마나 인재 양성에 진심이었는지 증명한다.
그가 이 세상을 떠난지 3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관정의 이름을 거론하는 이유는 그가 경영하던 회사가 부도처리가 된다는 기사를 접한 이후이다. 심지어 부도의 이유가 그가 한 '기부' 행위가 부도의 중요한 원인이라는 주장이었다. 핵심 내용은 기업이 보유하고 있던 토지, 기계장치, 건물 등을 장학재단에 기부하고 매년 이용료를 기업이 재단에 지급했다는 점이다. 2021년 감사보고서에 의하면 약 124억 원의 기계장치를 재단에 출연함에 따라 회사는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고 감사의견에 명시되어 있다. '관정'이라고 불리던 그의 이름은 영원히 남았지만 그가 운영한 회사는 부도로 사라지고 회사를 위해 일했던 직원들은 직장을 잃었다.
그에게 비즈니스는 무엇이었을까?
Case 3) 포드 핀토 - 법적 책임과 경제적 책임의 균형
필자는 현대 경영에서도 법적 책임이라는 것이 중요한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그 이유는 기업 경영의 투명성이 과거와 달리 어느 수준은 담보되고 있으며, 주변의 수 많은 기업들이 어딜가나 정도 경영을 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도요타 자동차의 안전테스트 조작과 관련한 기사를 읽고 나서 필자의 생각은 180도 바뀌었다.
도요타 자동차의 자회사 다이하츠(Daihatsu) 차량 안전 테스트에서 실제 생산차량과 테스트 차량의 부품이 다른 것을 발각되었고, 더 놀라운 점은 약 30년 동안 이러한 부정이 자행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2015년 폭스바겐의 클린 디젤 게이트 사건, 1971년 포드사의 핀토 사건 등을 통해 자동차 산업에서 법적 책임 이슈는 매우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다. 먼저, 폭스바겐의 클린 디젤 사건은 여전히 경영진에 대한 법적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디젤 차량이 법적 기준치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산화탄소 배출을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하여 '클린 디젤'이라는 이름으로 약 10년 간 전 세계 소비자와 정부를 속인 사건이다. 그리고 포드사의 핀토(Pinto) 차량은 차량 출시 전 연료 탱크 설계에 심각한 결함이 있었다. 후방 충돌 시 연료 탱크가 쉽게 파손되어 큰 화재가 발생할 위험이 있었고 운전자가 치명적인 부상을 입을 확률이 높았다. 경영진은 이러한 위험성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화재에 따른 고객 보상 비용 대비 설계 수정 비용이 더 크다고 판단, 기존의 일정대로 차량을 출시하게 된다. 그 결과 일부 소비자는 핀토 차량의 화재 사고를 통해 회복할 수 없는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되었고 포드사는 사회적 비판을 직면하게 되며 해당 차량은 단종되었다. 여전히 기업경영에 수 많은 유혹이 다양한 형태로 현존하고 있으며, 많은 CEO들이 법적 책임의 경계를 위험하게 넘나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기업 경영을 위해서는 법적 책임은 반드시 지켜야 할 책임 요소 중 하나이다.
위대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무엇이 다른가?
필자는 "위대한 기업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꽤나 오랜 시간 고민했다. 경영학 구루(guru)인 짐 콜린스(Jim Collins)는 그의 책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에서 위대한 기업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렸다.
"위대한 회사란 규율 있고 겸손한 리더십, 올바른 사람과 목표에 대한 끊임없는 집중, 그리고 핵심 원칙에 대한 굳건한 충실함을 통해 지속적이고 뛰어난 성과를 달성하는 회사이다."
한 마디로 위대한 회사란 오랜 기간 동안 지속적인 성과를 내는 회사를 의미하며 반대로 그렇게 회사를 경영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말해준다. 필자는 기업 경영의 제 1의 책임은 이처럼 지속적인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회사 중 하나인 Johnson & Johnson(J&J)의 Credo(회사의 기본적인 가치와 원칙을 담고 있는 선언문)는 위대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잘 설명해준다고 생각한다. Credo에 따르면, 그들은 높은 품질을 제공하겠다는 고객과 소비자에 대한 책임,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고 성과와 능력을 인정하겠다는 직원에 대한 책임, 공공 복지와 지속가능한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 합리적인 이익을 통해 장기적인 회사의 번영을 추구하겠다는 주주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약속한다. J&J는 먼저 기업의 직접적인 이해관계자인 고객, 직원, 주주에 대한 책임을 언급하고, 그리고 간적접인 이해관계자인 지역사회와 공동체로 그 대상을 확장시키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즉 제약, 바이오, 생활필수재 등 비즈니스 본연의 영역에서 많은 사회.경제적 가치(Socio-economic Value)를 창출하고 있다.
필자는 기업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 책임이 아니라 다름아닌 사회적 가치(Social Value) 창출이라고 이야기 했던 하버즈 비즈니스 스쿨의 마이클 포터 교수의 주장에 깊이 공감한다.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박철순 교수는 그의 저서 '전략과 경영자'의 첫 페이지에서 "가슴 설레는 구성원을 가진 기업을 꿈꾸며"라는 글을 실었다. 기업 경영자는 구성원에게 '일'을 통해 '꿈'을 주어야 하며 이 때문에 구성원이 일 때문에 가슴이 떨리고 설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연 비즈니스맨에게 사회적 책임이란 무엇인가? 필자는 비즈니스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일 때 고객, 직원, 주주, 지역사회가 그 꿈을 함께 공유하며 비로소 선한 사회적 영향력과 높은 수준의 부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제 우리는 '책임'을 뛰어넘어 '꿈'을 위한 경쟁을 시작해야 할 때다.
[참고자료]
1. 기업윤리, 강보현(경북대 경영학과 교수), 도서출판 라온
2. 윤리경영, 박현숙 교수,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3. Good to Great, Jim Collins, HarperBusiness
4. Beyond Integrity: A Judeo-Christian Approach to Business Ethics, Scott Rae, Kenman L. Wong, Zondervan Academic
5. 기업윤리 가이드 :미국 MBA 비즈니스 윤리 교과서: 조직 구성원들이 윤리적으로 행동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린다 트레비노, 연암사
6. 회사 건물도 땅도 기부…'1조 기부왕' 실업자 130명 만들었다 | 중앙일보 (joongang.co.kr)
7. CMBA 원론, 김종빈 교수,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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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경영학이란?
C경영학은 기존 경영학의 목표인 사업가치 극대화, 주주가치 제고, 수익성 확보 등의 개념을 뛰어넘어 사람 중심 경영으로 경영 성과보다 성장에 초점을 맞춰 직원과 공동체를 살리는 경영을 지향합니다. 사회적 영향력과 가치, 다양한 사업적 이해관계자를 고려한 포용적 비즈니스 모델을 "바른 경영"이라고 정의하고, 이런 철학을 가지고 시대와 사회를 섬기는 비즈니스 리더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여기서의 C는 읽는 독자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만, Challenge, Creative, Collaborative, Christian 각자 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저자소개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하고 (주)티머니, LG CNS Entrue 컨설팅, GS 리테일 등에서 근무하였습니다. 경영 컨설턴트로서 다양한 비즈니스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비즈니스의 사회적 영향력(social impact)을 고려하는 "바른 경영"에 관심이 많으며, 베스트셀러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전심전력(2021, 북팟), 일하는 이유(2022, 북랩), 크리스천은 돈 걱정하면 안되나요(2023, 두란노)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