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전증
병아리 교사의 새가슴을 유난히 떨리게 했던 아이가 있었다.
간질병이라는 질환을 앓고 있는 '맹맹'이었다.
뇌전증의 전 용어이며 사전적 해석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갑자기 온몸에 경련이나 의식 장애 따위의 발작이 되풀이되는 질병. 유전이나 뇌의 손상 따위에 의해 일어난다. 유전적인 경우도 있으나, 외상, 뇌종양 따위가 원인이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맹맹이는 첫인상부터 눈에 확 띄었다.
곱상하고 선이 뚜렷한 외모였지만 눈빛이 불안하고 초점이 없이 멍하며, 항상 주머니에 손을 넣고 구부정했다. 그랬기에 뒷모습은 초등학생이라고 믿기 힘든 노인의 모습이었다. 게다가 위생 상태가 불량해서 머리는 늘 떡져있고 옷은 빤 지 오래되었기에 악취와 함께 때가 꼬질꼬질하게 묻어 있었다. 맹맹이의 몸은 교실에 앉아 있거나 엎드려 있지만 그의 정신세계는 교실을 탈출하여 창문 너머로 훨훨 날아간 듯했다. 단지 책가방을 들었으니 학생이려니 할 뿐 학력도 지능도 사회성도 모두 부족한 아이였다.
유령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맹맹이의 존재감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3월 신학기가 시작되고 맹맹이는 눈에 띄지 않게 아이들 속에서 부유하며 순조롭게 스며들었다.
그러다 4월 초, 아직은 날씨가 쌀쌀했던 날의 체육시간의 일이었다.
여느 때처럼 반장을 필두로 운동장을 두 바퀴 돈 다음 국민체조를 으싸으싸 한 후라 웅크렸던 몸이 조금 풀렸다. 매트 운동이 수업 주제라 체육 부장과 체육 부원들이 매트를 운동장에 깔아 놓았다.
이론적인 내용을 몇 마디하고 바로 실전에 들어갔다.
번호 순서대로 앞 구르기를 했다. 비교적 수월하게 잘 넘어갔다.
아마 평소에 집에서 이부자리를 깔고 자기 전에 앞 구르기 몇 번은 굴렀을 아이들이기에 이 정도는 껌이었다. 맹맹이도 제일 마지막에 조금 어설프지만 휘리릭 앞 구르기를 했다.
이제 뒷구르기이다. 앞 구르기에 비해서 난이도가 조금 높고 목뼈가 다칠 위험이 있으니 자기 능력껏 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자신 없으면 안 해도 되니 절대 무리하지 말라고 몇 번을 강조했다.
남학생들은 이 정도쯤이야 하면서 잘도 굴렀다. 그 당시 아이들의 체력은 요즘 아이들에 비할 바가 아니게 좋았다. 학교만 파하면 운동장에서 각종 놀이를 하면서 체력을 단련하고, 집에 가서는 상일꾼으로서 몫을 톡톡하게 치르느라 검게 그을린 피부만큼 건강미가 흘러넘쳤다.
여자 아이 몇 명만 두려움에 옆으로 뎅구르르 구르는 것으로 만족했다.
제일 마지막에 맹맹이 차례가 되었다.
맹맹이는 굽을 대로 굽은 등을 매트에 누이고 뒤구르기를 시도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맹맹이가 사지를 뒤틀며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악!"
아이들의 비명소리보다 나의 외침이 더 컸다.
급기야 입에서 거품이 부글부글거리고 이미 검은 눈동자는 사라지고 흰자위만 치켜뜨고 온몸을 격렬하게 부들부들 떨며 발작 증상이 절정에 달했다.
전 담임께 맹맹이의 병력은 들었기에 늘 조마조마했지만 나름 마음의 준비는 했었다.
하지만 난생처음 보는 실제 상황에 직면하니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놀랍고 당황스러웠다. 여자 아이들은 울며 저 멀리 도망갔지만 남자 애들은 한두 번 보는 것이 아니라며 꽤 침착했다.
애들 말대로 잠시 후 발작은 잦아들었고, 한동안 맥을 못 추며 누워 있던 맹맹이가 부스스 일어났다.
자기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사람처럼 옷에 묻은 흙을 툭툭 털었다.
하지만 맹맹이의 눈동자는 심하게 풀어져 있고 걸음걸이는 비틀거렸다.
비척비척 교실로 걸어가는 맹맹이의 뒷모습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서 가슴을 아프게 한다.
어린아이에게 왜 그런 병이 왔는지 신이 원망스러웠다.
그 이후 날씨가 조금씩 무더워지면서 맹맹이의 발작 주기는 점점 더 빨라졌다.
교실에서 수업 중에도 와당탕 의자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조회 시간에 전교생 앞에서 쓰러지기도 했다.
기온이 올라가면 발작의 횟수가 더 늘어나는 건 확실했다.
여름 방학이 되기 직전에는 거의 하루 걸러 하루 병마가 그 애의 머리를 침범하고 그 애의 가슴을 질근질근 밟고 지나갔다. 요즘에는 좋은 약도 많이 나와서 병세를 완화시키고 치유도 잘 된다고 하던데, 그때는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맹맹이의 병은 나날이 깊어졌다.
그렇게 1학기를 마치고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다.
방학이 반쯤 지났을 어느 날, 학교로부터 비보가 날아들었다.
맹맹이가 동네 저수지에 혼자 갔다가 발작이 일어났는지 저수지에 빠져서 익사했다는 것이다.
시골이다 보니 동네마다 저수지가 한 두 개는 있었고 여름이라 비가 많이 와서 수심도 깊어졌을 것이다.
맹맹이 혼자 저수지에는 왜 갔는지?
어떻게 하다 생의 마지막 순간을 이리도 비참하게 맞이했는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주위에 단 한 사람도 없었기에 구조의 손길은 미치지 못했고, 그렇게 짧은 생을 고통 속에 살다가 저 하늘의 별이 된 것이다.
한동안 맹맹이의 흐릿한 눈동자와 비척거리는 걸음걸이와 구부정한 뒷모습이 떠올라서 밤잠을 설쳤다.
공기처럼 물처럼 교실에 있었지만 그 애의 온기는 생각보다 크고 깊었다.
개학 후 아이들 몇 명과 함께 맹맹이의 집을 방문해서 맹맹이가 교실에 남긴 낙서 같은 그림 몇 장과 반 전체 아이들이 함께 작성해 나가던 개인별 일일 생활표를 갖다 드렸다.
가을 낙엽보다 앙상한 모습을 한 맹맹이의 어머니께서 우리를 보고 눈물부터 쏟아 내셨다.
"아이고, 선상님. 감사합니다. 맹맹이 아부지도 그 몹쓸 천병으로 쓰러지셨어예. 맹맹이가 지 아부지 만나서 차라리 잘 됐심더. 살아 봤자 고통밖에 없는 세상 더 살아 봐야 뭐하겠심꺼?"
말씀과 달리 통곡을 하시는 맹맹이 어머니와 함께 우리 모두 엉엉 울음바다를 이루었다.
그때 올려다본 파란 가을 하늘 속에서 맹맹이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진짜 거기에 맹맹이가 있었다.
분명 하늘의 천사가 되어 아버지를 만났을 것이다.
그곳에서 병마를 벗어던지고 아버지의 거대한 손 아래에서 어리광을 부리며 천진한 아이가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