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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 미, 칠월의 솔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_김연수

by 정유스티나
김연수.jpg





작가 '김연수'는 나와 동향이다.

그래서 이 작가를 더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같은 고향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기쁨이 두 배였음은 어쩔 수 없었다.

'김연수' 작가를 처음 안 것은 '소설가의 일'이라는 산문집을 읽으면서 시작되었다.

다니는 사이버대학의 소설창작론 수업의 중간고사 대체 과제였기에 열심히 읽었고 리뷰도 제출했다.

소설가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랄까? 자질이랄까? 의 길라잡이였다.

책을 출간하는 사람은 마음먹고 팬티를 내린 채 대중 앞에 나서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작가의 말에 깊이 공감하면서 그때 나는 이미 이 작가와 사랑에 빠졌다.

생각하지 말자. 생각을 생각할 생각도 하지 말자면서 일단 한 문장이도 쓰라고 하는 작가의 냉정한 질타에 뜨끔했었다. 써라, 토가 나와도 계속 써라고 일갈한다. 그래서 내가 제출한 리뷰의 제목도 '닥치고 쓰라'였고 A+의 좋은 성적으로 나에게 보상했다. 그렇게 '김연수' 작가는 나와 좋은 관계를 이어왔다.

운명처럼 또 다른 과목에서 작가의 단편소설집인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을 수업 교재로 삼았기에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에 완독 했다.





김연수1.jpg 소설집의 목차





이 소설집에는 11개의 단편 소설이 수록되었다. 그중 마지막 작품인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의 세계로 깊이 들어가 보려고 한다.

김연수 작가는 타인의 삶과 이 세계를 제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이해하려 애쓰고, 결국은 이해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 김연수 소설이 가지는 힘이 여기서 온다.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도 결국, 다시 한번, 우리는 서로를, 타인을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를 인정하고 함께 걸을 수는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주인공 ‘그’의 어둠은 코끼리이다. ‘그’는 산책을 하면서 내면에 존재하는 어둠과 소통하며 삶의 진리를 찾아간다. “짧은 시간에 척척”, “코끼리도 재울 수 있으며”, “침대에서는 잠만 자고 섹스만 하고”, “결국 혼자서 길을 걸어가게 될 것이며”, “거리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될 것이다” 는 다섯 가지의 소제목으로 이야기는 풀어진다. 이것은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이 된다.


석 달 조금 못 되게, 불면의 밤을 보내면서 그는 곤충들이 부럽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소설의 첫 문장에 인물의 고통을 불면증으로 설정한다. 추상적인 고통을 '코끼리'라는 구체적인 생명체로 형상화한다. 불면증을 코끼리에 비유하고 나니 고통의 단계를 쉽게 이해된다.

코끼리가 나타나고-발을 들고-지그시 누르고-마구 밟아대고.


고통 속에서도 인연을 발견하는 것이 인생이다.

불면으로 고통의 밤을 지새우면서 제정신으로는 절대로 읽을 수 없는 책, 지루해서 펼치는 순간 바로 잠들만한 책, 단 한 문장도 읽고 싶지 않은 책을 찾아서 서가를 뒤적이다가 '암 환자를 위한 생존 전략'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그는 책을 뒤적이다가 Y 씨를 발견했다.

'밤이면 아무래도 병에 대한 생각에 빠져서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많아요. 하지만 산책을 한 날은 몸이 피곤한 탓인지 금방 잠들 뿐만 아니라 숙면을 취할 수 있더군요.'

짧은 시간에 척척. 그가 산책을 시작한 이유는 바로 그 문장 때문이었다.

책을 보다가 Y 씨를 알게 되고, Y 씨의 글을 읽다 산책을 하게 되고,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저자의 연락처를 문의했다. 저자를 통해 그는 쉰한 살의 나이에 폐암 선고를 받았던 Y 씨와 연결될 수 있었다.

일련의 사건이 도미노처럼 연쇄반응으로 다가온다는 것이 흥미롭다.


작가는 고통은 각자의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혼자서 길을 걸어가게 될 것이고 그들은 저마다 혼자서 잠들 것이다. 그리고 세상 모든 악의 근원이자, 암흑의 핵심이 자기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외부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고통이 자기 내부에서 생겨난다.

주인공의 말마따나 누구에게나 고통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것이지만 그 개별적인 고통들의 배후에는 사회적 맥락과 의미망 역시 존재하며, 따라서 우리는 “함께 걷는 법”을 익혀야 한다고 작가는 말하려는 것이다.


결국 그는 그녀처럼 죽게 될 것이었다. 자기 안에서. 혼자서.


그래서 더욱 함께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소설 속 소제목처럼 거리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될 것이다.

나는 나름 친하다고 생각하는 아홉 명의 친구와 산책을 한 뒤, 그의 목록은 끝에 도달한다.

이제는 핸드폰에 저장된 번호 중 무작정 전화를 걸어 만나면 바로 산책을 했다. 의외로 사람들이 산책에, 그냥 걷는 일에 굶주려 있음을 확인한다.

어쩌면 모든 사람들의 내부에는 그의 코끼리와 같은 것들이 하나씩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혼자 산책하는 일을 두려워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가 코끼리와 산책했다면, 그녀는 노아처럼 이 세상의 모든 동물들을 이끌고 걸었던 셈이다. 암환자인 그녀는 더 큰 고통과의 산책이었다고 말한다.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고통의 산책이었겠지.


그건 일단 네 몸이 나은 뒤에 그때 얘기하자. 그럼 저는 그렇게 말했어요.

내 몸은 이제 영영 낫지 않아. 지금 얘기해.

가슴이 저린다. 그 말을 할 때의 그녀의 심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렇게 저마다 다른 곳에서 혼자서 걷기 시작해 사람들은 결국 함께 걷는 법을 익혀나간다. 그들의 산책은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들과 함께하는 산책과 같았다.

나와 함께 산책한 동물은 아직은 초식동물이다. 토끼, 노루, 잘 길들인 강아지 정도.

하지만 삶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표류할 때는 거대한 상어나 매머드급 코끼리와 함께 걸은 적도 분명 있었다.

앞으로 나와 함께 걸을 동물들이 계속 지금과 같이 소소하길.

그대들이 함께 걷고 있는 동물들은 무엇일까 한 번쯤 생각해 보시길.


이 소설은 고통의 원인을 밝히는데 집중하지 않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지나가는데 집중한다.

고통 자체에도 집중하지 않고 고통이 바로 치유가 되는 역전의 상황이 계속 등장한다.

불면증 환자와 암 환자가 같이 걷는다.


"어때요? 괜찮아요? 조금 더 걸어볼까요?"

Y 씨가 그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더 걸어보자는 말이지요? 그래요, 이 거리. 제가 좋아하는 거리니까."

더 걸을 수 있는 이유가 '좋아하는 거리', 다른 이유가 필요 없는 좋아하는 거리라는 것이 가슴이 애리다.

그 이상 이유가 더 필요하지 않고 오직 '좋아하는 거리'라는 이유이고 우리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우리 집 근처에도 내가 좋아하는 거리가 있다.

아침저녁으로 무수히 지나다니기에 익숙해진 거리이기도 하다.

오늘 저녁, 다시 이 거리를 지날 때는 어느새 내 손을 잡고 있는 하얀 토끼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될 것 같다.

그것이 코끼리나 악어나 곰이 아니길 간절히 빌어 본다.


우리 함께 산책할래요?



김연수4.jpg 우리 함께 산책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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