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망각의 계절
벌써 세 번째이다.
여름의 끝자락과 가을의 시작점, 지하철에 우산과 양산의 기능을 겸용하는 전문 용어, 잃어버린 우양산의 숫자이다.
우리나라 기후가 아열대성 기후를 닮아 가다 보니 미어터지는 작은 가방이지만 필수품이 추가되었다.
바로 우양산이다.
내가 그리 크지 않기에 가방도 주인을 닮았고, 소소한 소지품으로 꽉 찬 자리 한 귀퉁이에 앉히려면 우양산의 크기는 초경량 3단 접이여야 했다.
내 평생 분실물은 손꼽을 정도로 나의 물건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꽤 오래 사용했기에 손때가 묻은 반려 물건이었던 그 애를 출근길 승강장 의자에 두고 냉큼 지하철에 올랐다. 목적지 역에 도착하여 근무지로 가기 위해 양산의 용도로 가방을 여는 순간, 없다.
까무룩하게 잊고 1시간을 달려온 것이다.
'쿵' 가슴이 내려앉고 내 손은 하릴없이 가방에서 헛손질 중이었지만 두고 온 그 애가 잡힐 리 없다.
"여보세요? 1시간 전에 **방향 1-1 칸 앞 의자에 양산을 두고 왔는데요. 죄송하지만 지금 있는지 좀 알아봐 주실래요?"
출발한 역 사무실로 전화를 넣었다. 다른 사람의 물건에는 손을 대지 않는 요즘 사람들의 습성을 알기에 거기에 있으리라 믿었다.
잠시 후, 없다는 비보를 전하는 역무원이 되레 미안해하였다.
아, 오랜 연인과 작별이라도 한 것처럼 가슴이 에리다.
이제 나에 대한 믿음에 금이 갔기에 집안에 굴러 다니던 멋대가리 없는 놈이 가방에 앉아 있다.
사랑했던 그 아이를 떠나보낸 후 2주일이나 지났을까?
갑자기 스콜현상으로 소나기가 퍼부었다.
아주 요긴하게 우산 용도로 잘 썼고 비에 젖은 우산은 지하철 내 좌석 옆에서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마치 잠시 후 버려질 자신의 운명을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퇴근길이었기에 쿰쿰한 냄새와 함께 콩나물시루로 변한 지하철에서 책에 코를 박고 독서 삼매경에 빠졌다.
우리 집을 알리는 낭랑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서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내 앞을 막고 있는 사람들 사이를 겨우 빠져 내렸다.
휴~한숨을 내쉬는 순간, 아뿔싸 내 손에 들려 있어야 할 그 아이는 멀어져 가는 지하철 속에서 나를 외쳐 부르고 있었다.
아직 그치지 않은 비는 제법 거셌고 손녀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 우산을 놓고 내렸는데 어떡하지?"
혀를 끌끌 차며 우산을 갖고 온 손녀딸을 와락 안아 주었다.
비록 정을 주지 않은 아이였지만 버릴 마음은 없었기에 가슴이 먹먹하다.
그날 저녁에 분실물 센터에 전화를 해 보았지만 그 아이는 그곳에도 없었다.
아놔~나, 왜 이러지?
이제 슬슬 나의 뇌상태가 걱정스럽기 시작했다.
이게 치매의 시작?
기억과의 이별이 시작되는 건가?
두 번의 작별 스토리를 들은 딸이 앙증맞은 꽃이 만발한 아이를 내 손에 쥐어 준다.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 엄마처럼 글을 쓰고 공부하는 뇌는 절대 치매 걸리지 않아요. 단지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정신이 없어서 그랬을 거야."
나는 딸의 마음이 담긴 예쁜 아이를 신줏단지처럼 모셨다.
길을 걷다가도 그 애의 안위를 손으로 확인했다.
8월의 퇴약볕에서 눈부시게 빛나던 그 아이와 시작하는 연인이 되었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그 아이와의 이별은 예고편 없이 바로 방영되는 무례한 영화처럼 닥쳤다.
가을이라고 하지만 도무지 떠나갈 생각이 없는 여름의 땡볕이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었다.
햇볕을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워하는 나는 그 아이의 그늘 아래에서 태양을 피했다.
하지만 삐질삐질 삐져나와 등을 적시는 땀은 어쩔 수 없었다. 기분 나쁜 땀을 닦으며 두 눈으로는 빈자리를 매의 눈으로 캐치하며 지하철에 몸을 던졌다.
몇 정거장을 지날 때까지 내 손에는 그 아이가 분명히 있었다.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공개 수업을 한 장면을 머릿속으로 복기한 것이 문제였다.
다 끝난 그 일이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혹시 실수한 것이나 안 한 내용은 없는가 하는 자아비판으로 내 머릿속은 계속 공개 수업 시간에 머물렀다.
또, 또, 또.
후다닥 미친 듯이 내리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
내 머리를 수없이 쥐어박으며 좌절, 또 좌절했지만 그 아이는 내 엉덩이 옆 어디 메서 나를 얼마나 쳐다보았을까?
가방에 넣지 않고 옆에 내려놓았나 보다. 바보. 천치. 멍청이. 말미잘. 똥통.
너무나 허무하고 속절없이 내 기억과의 작별로 인해 막 사랑이 시작된 그 아이와도 서러운 이별을 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세 명의 아이와 작별을 고한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것도 온전히 나의 건망증과 호들갑스런 마음의 균열로 인해 생이별을 하다니.
속상해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앉았다.
기억과의 이별이 두렵다.
기억이 열 손가락을 빠져 나가는 모래가 될까 무섭다.
그까짓 물건이라고 하지만 내가 마음을 주고 아끼던 대상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는 것이 당황스러움과 함께 한숨이 난다.
비슷한 것으로 대체할 수는 있지만 내가 물을 주고 키우던 장미는 아닌 것이다.
행복했던 추억과 잊고 싶었던 기억들마저 내 삶의 한 귀퉁이를 받치고 있던 돌이 빠진다면?
평생 생사고락을 함께 해 온 동지를 보고 옆집 아저씨라며 화들짝 놀란다면?
목숨을 내주어도 아깝지 않을 자식의 이름을 잊고, 존재마저 지워 버린다면?
'지나간 미래' 어디메쯤에서 나의 기억이 맨발로 서성이고 있다면?
마지막에는 '나'를 잊고 '타인'과의 낯선 동거를 하게 된다면?
머릿속에서만 일어나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며 지독한 막막함으로 몸을 부르르 떤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아직은 쓸만한 나의 뇌에게 결연한 통첩을 한다.
단디 정신 차리자!
단디
부사 방언 ‘단단히’의 방언(경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