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에서 가기 어렵지 않은 위치에 대형 쇼핑몰 두 개가 있다. 그리고 그런 쇼핑몰을 이루는 상점들은 대개 식음료 혹은 의류 판매점이다. 사실 옷만큼 돈 쓰기 쉬운 카테고리가 없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이해가 가는 구성이다.
하지만 근래에는 그 의류 판매점의 구성이 너무 젊은이들 위주라는 생각이 든다. 명절이라고 회사에서 준 백화점 상품권을 엄마 옷을 사드리는 데 조금 쓰고 싶었는데, 그 크고 유명한 쇼핑몰에 60대 여성이 사 입을 만한 종류가 없었다. 게다가 언제부턴가 짧은 상의에 통이 넓은 하이웨이스트 바지가 패션 공식으로 자리잡지 않았는가. 이런 조합은 더더욱 노년층이 소화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쇼핑몰에서 중년 여성, 혹은 그보다 나이가 들었을 법한 분들의 모습이 안 보이는 것도 아니다. 엄마가 건질 만한 게 없나 쇼핑몰을 층마다 돌아다니면서 나는 손주들과, 자녀들과, 친구들과 어울려 걷고 있는 장년층 및 노년층 분들을 곧잘 볼 수 있었다. 아니, 저분들은 여기서 어떻게 쇼핑을 해야 하지? 몇 안 되는 골프 의류 매장을 힐끗거려 보았지만 마음에 차는 게 없었다. 이래서 노인들이 맨날 등산복을 입는 거라고 엄마가 농담 섞어 말했다.
그렇게 그날 엄마에게는 5만 원짜리 상의 한 벌만 겨우 사드렸다. 가진 상품권 액수가 20만 원이었는데, 이 공돈(!)을 왜 쓰질 못하니! 엄마는 시장 주변에 건질 게 많다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조차 의문이었다. 이 땅에는 재래시장이 가까운 동네보다는 대형마트나 백화점, 쇼핑몰에 가기 쉬운 곳이 훨씬 많고 그런 곳에 주거지가 많이 지어진다. 노년층 인구는 갈수록 늘어날 거고 그들의 숫자와 경제력을 지금도 무시할 수 없는데, 조금 답답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조금 시간이 흘러, 다음 주부터 갑자기 초겨울이라는 소식에 옷장을 뒤적거렸다. 그럴 때마다 작년의 나는 무엇을 입고 살았나 싶다. 너무 오래되어서 가랑이가 미어지고 있는(…) 바지를 더 이상 외면하기도 어려울 듯했다. 그래서 남은 상품권을 들고 다시 쇼핑몰에 갔다. 혼자 가면 심심하니까 당연히 엄마를 데리고서.
슥슥 둘러보다가 매대에서 1+1 행사를 하고 있는 곳을 발견했다. 당장 살펴보니 맨투맨과 니트에 강아지가 그려진 귀여운 디자인이었고 원단도 좋아 보였다. 언니가 미니 비숑을 키우고 있어서 그런지 비숑이 그려진 상의에 정이 갔다. 엄마도 꽤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다. 마침 11월에 부산 여행을 가기로 했으므로 같이 맞춰 입으면 어떨까 싶었다. 그 브랜드는 사실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하는 남녀공용 브랜드였다. 왜 전에는 안 보였지?
어쩌면 여행 갈 때 겸사겸사 같이 입자는 제안에 엄마의 심적 장벽이 살짝 내려갔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엄마에게 지금까지 엄마가 입어본 적 없는, 강아지가 프린팅된 기모 맨투맨을 사드렸다. 사이즈도 잘 맞고 귀여웠다. 아직 엄마와 함께 대형 쇼핑몰에서 옷을 함께 사 입을 수 있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