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4. 바다 끝 카페에 무지개가 뜨면

by 제이드

<밀크티와 고양이>를 읽은 이후로 일본 소설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많이 낮아져서, 일본 소설 서가도 어렵지 않게 기웃거리게 되었다. 그러다 아름다운 제목과 일러스트 표지를 가진 책을 발견했다. 어쩐지 읽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질 것 같은 예감에 부합했던, 참 정직한 장품을 소개한다.






cover.png



<바다 끝 카페에 무지개가 뜨면>

2025년 4월 출간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출판사 모모


제목에도, 일러스트 표지에 등장하는 바다 끝 카페가 이 소설의 주요 배경이다. 그곳의 이름은 정확하게는 '곶 카페'. 테이블은 두 개뿐이고, 워낙 지나치기 쉬운 곳에 표지판이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기는 어려울 듯한 장소다. 하지만 다행히 기회를 잡아 카페 근처를 기웃거리고 있다면 다리에 장애가 있는 개 하나가 슬금슬금 다가와 카페로 안내를 해줄 것이다.


카페 주인은 에쓰코라는 이름의 할머니다. 서비스도 곧잘 내주시는 인심 좋은 성격에 커피 내리는 솜씨도 좋은 듯하다. 그 덕에 장사가 될까 싶은 곳에 위치한 카페인데도 단골들도 꽤 있다. 책은 에쓰코가 만나게 되는 손님 몇 명의 에피소드, 에쓰코 본인과 조카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얼핏 보면 서로 관련이 없는 옴니버스 구성인 것 같지만 읽다 보면 시간이 이어진다는 걸 짐작하게 하는 장치가 몇 개 있다. 하지만 한 챕터를 읽고 한동안 독서를 쉬더라도 괜찮게끔 이야기의 연결 고리 자체는 느슨해서 가볍게 띄엄띄엄 읽기도 좋다.


사실 이야기의 무대가 바다를 마주한 끝자락에 위치한, 주인장의 선곡이 특징적인 카페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어느 교외에 있는 적당히 아담한 찻집이어도 되었을 테지만, 그 공간적인 설정에 부여된 평화로운 분위기와 온화한 소재들, 초연한 듯 마음이 깊은 에쓰코의 성미, 커피 향기와 유명한 음악 등등이 어우러져 무척 감성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에쓰코가 손님과 만나는 에피소드는 일상적인 것 같으면서도 소설다운 측면이 있다. 취업난에 지쳐가는 대학생은 매우 현실적이지만, 그 대학생이 우연히 찾아온 카페에서 관심이 가는 화가 지망생 여인을 만난다는 건 그야말로 소설 같은 이야기다. 시대에 뒤떨어진 직업 때문에 형편이 어려워진 나머지 도둑질을 결심하게 된 남자는 세계 곳곳을 찾아보면 몇 건은 발견할 수 있을 듯한 인물이지만, 이 사람이 자신이 도둑질을 하려고 했던 카페의 주인에게 큰 감동을 받는다는 건 픽션 그 자체다. 그러나 소설 같지 않은 소설을 읽으려는 사람은 별로 없을 듯하다. 그럴 거면 차라리 논픽션이나 에세이를 읽지 않겠는가? 우리가 소설에 바라는 것에는 이런 있을 법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편 모든 사람에게 힘이 되는 듯한 에쓰코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잘 찾지도 않은 이런 구석에 그가 카페를 차린 이유와 관련이 깊다. 사실 별로 대단한 비밀은 아니다. 대신 그 안에 감성적인 아름다움은 충분하다.


요약하자면 표지 일러스트처럼 예쁘고 잔잔한 힐링 소설. 일본 작가들은 이런 쪽에 강점이 있는 모양이다. 묘사력이 좋으면서도 쉽게 읽을 수 있는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으니, 예를 들어 교통수단을 오래 타야 할 때 그 지루함을 달래기에 적합한 책이지 않을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3. 사서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