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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생각한 것

하늘 아래 곧장 누울 자유

진정한 자유는 자연에서 온다

by 제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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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을수록 자연이 좋다. 아파트 화단에 아직도 한 송이 남아 있는 진달래인지 철쭉인지 헷갈리는 분홍색 꽃 한 송이가 놀랍고, 인도 옆으로 밀려난 낙엽 더미를 살며시 밟는 일이 즐겁다. 깨끗한 하늘을 보고 있자면 기분이 참 좋아지고 영원히 모래사장에 앉아 파도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운전을 하지 못해 이동 반경이 전보다 좁아졌기 때문인지 자연의 요소 하나하나가 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근무 시간이 길고 자유롭지 않은 현대의 노동자로서 그 귀한 자연을 향유할 수 있는 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올라간 생산량에 관한 보상이 아직도, 여전히, 어쩌면 영원히 노동자에게 돌아오지 않고 있어 나 같은 소시민은 주말에나 겨우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멋지다는 곳에 주말에 찾아가는 일이 얼마나 고생스러운지 알고 있다. 내가 보고 싶은 건 사람이 아니라 자연인데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 많이 발생한다.


한편으로는 문명인이라는 정체성이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는 생각도 든다. 몇 달 전 다리를 접은 애매한 자세로 잔디밭에 깐 돗자리에 누워본 적이 있었다. 구름 없는 하늘이 감동적일 정도로 아름다웠고 내 눈앞을 방해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잔디밭에 누웠기에 가능한 시야였다. 그러나 우리는 교양 있고 발전된 사회에 사는 사람이니까, 하늘이 멋지다고 어딘가에 불쑥 등을 붙이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 순간의 경험이 너무 좋아서 나는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용기를 냈다.


점심시간이 넉넉하게 주어지는 한 달에 단 하루, 나는 부지런히 걸어서 공원에 도착했다. 꽤 큰 공원이라 평상시에는 왕복하는 시간조차 부담스러운 곳이다. 그 공원 한 구석, 겨울철이라 운영하지 않고 있어 아무도 없는 물놀이장 주변은 고요하고 인적이 없었다. 나는 그 옆에 붙은 벤치에 누웠다. 지붕이 있어 하늘이 훤히 보이지는 않았고, 대신 녹이 슨 기둥과 구조물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 거꾸로 선 소나무, 하늘색 풍경 한 조각 정도가 보였다.


그때 나는 참 편안하고 행복했던 것 같다.


맑지만 다소 차가운 공기부터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하다못해 아무 데나 누워버린 나머지 정전기가 일어나서 다소 붕 뜨게 된 머리카락 몇 가닥까지, 그 사소한 것들에 웃음이 났다. 가슴이 꽉 차는 자유를 느꼈다. 옹졸하게나마 내가 자연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가운데 나는 생각했다. 왜 현대인은 하늘 아래에 누울 시공간조차 허락받지 못하는가? 사람은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며 자연으로 돌아가는데. 문학이 이야기하는 진정한 자유가 바로 그런 순간들에 있는데 말이다.


가만히 누워 있다가 그 자세 그대로 핸드폰을 꺼내 거꾸로 뒤집힌 소나무를 찍었다. 앵글이 뒤집힌 걸 카메라가 감지했는지 저장된 사진을 보니 소나무가 똑바로 서 있도록 각도가 조정되어 있었다. 나는 그 사진을 다시 180도 뒤집었다.


공원을 청소하시는 인부가 지나갔고, 개를 산책시키고 있는 누군가도 지나갔다. 그러나 나는 자연스러운 자유가 더 중요해서 허둥지둥 일어나지 않고 계속 누워 있었다. 나는, 사람은, 부정할 수 없이 자연의 일부임을 실감했다.


날이 무척 춥다. 그렇지만 이 나라의 안타까운 특성상 추울수록 하늘이 예뻐서 오늘 내 머리 위는 눈이 부시게 찬란하다. 그것을 곧장 마주하며 다시금 눕고 싶다. 자유도, 위안도, 자비도 다 자연에서 오는 것 같다. 사람마저 사람을 외면하고 제대로 품지 않는 이 시대에, 언제까지나 우리를 외면하지 않을 존재는 자연밖에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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