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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됭됭 Oct 18. 2023

남자친구와 함께 도쿄로 떠나다.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는 안일한 생각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도쿄로 가는 비행시간이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다. 처음 타는 비행기는 아니지만 역시나 너무 떨렸다. 한편으로는 설렘 반 무서움 반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호텔 인턴쉽을 하러 떠나게 된 남자친구는 도쿄에서 나와 일주일을 머문 뒤 도쿄에서 좀 더 위쪽에 위치한 아키타라는 지역으로 떠나게 된다. 2달이 지나면 다시 도쿄로 돌아오기로 약속했다. 그 말은 즉슨 2달 동안은 나 혼자 도쿄에서 지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나리타 공항에 들어선 순간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혼자 낯선 타지에 적응을 한다는 것이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일본어로 대화를 할 줄 아는 남자친구와 있으니 나 또한 잘하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공항에서도 막힘없이 도심으로 떠날 수 있었던 탓이었을까.


전철을 타고 1시간 반 가량을 달려오니 신주쿠 시내로 도착했다.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내가 계약한 부동산을 찾아 나섰다. 20분 정도 걸었을까 커다란 빌딩 속에 위치한 부동산을 찾았다. 친절하게도 부동산은 노란색 간판에 한국어로 부동산이라고 적혀있었다.


부동산에 들어서니 마치 우리나라 부동산의 느낌이 아닌 어느 한 회사의 사무실 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이름을 이야기하였더니 직원분께서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하더니 서류를 챙겨 오셨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이야기를 하신다. 남자친구 또한 부동산에 관련한 이야기를 나눈 경험이 없으니 대화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어 보였다. 그래도 나는 같이 쫄면 사기를 당할 것 같다는 생각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직원이 하는 말을 열심히 알아듣는 척을 했다.


그나마 아는 단어가 하나라도 들리면 지금 내가 부동산 계약을 하고 있으니 이런 흐름으로 가고 있겠지? 상상하며 열심히 아는 척을 했다. 다행히도 직원은 내가 일본어를 못하는 것을 눈치 못 챈 모양이다. 어렵지 않게 집의 열쇠를 받을 수 있었고 무사히 계약을 마칠 수 있었다.


집까지 도보로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여서 걸어가기로 했다. 도로가 꽤 넓어서인지 건물 사이의 간격이 넓어 하늘이 뻥 뚫린 듯이 잘 보였다. 왠지 한국에서보다 하늘이 높은 것처럼 느껴졌다. 과연 여기서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집으로 들어가기 전 편의점에 들르기로 했다.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오기 이전에도 일본 여행을 한 번 온 적이 있지만 편의점에 들어서는데 그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여기에 오는 일이 자주 있겠구나. 생각만 해도 신이 났다. 편의점에서 계산을 하고 나오는데 직원이 하는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들어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따뜻하게 데워드릴까요?"라고 말하는 직원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이제 시작이겠지.


새로운 집에 도착해서 열쇠로 문을 열었다. 전자식 도어록만 사용하다가 아날로그 집열쇠를 사용하니 조금 낯설었다. 집은 오오쿠보역에서 1분 거리에 있었다. 그래서 너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전철이 바로 집옆으로 지나가서 집이 흔들렸다. 내진설계가 잘 되어있는 목조주택이라 더 많이 흔들렸다. 사실은 처음에 지진이 난 줄 알고 너무 놀랬다.


집은 복층 형태였는데 사다리를 통해서 복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복층의 천장은 조금 낮지만 아늑하게 누워서 잘 수 있는 정도의 공간이었다. 두 명이서 생활하기에는 6평 정도 되는 조금 좁은 공간이었지만 월세가 70만 원이니 어쩔 수 없었다.


처음 도착한 일주일 동안은 도쿄 시내 곳곳을 놀러 다녔다. 사실 여행 같은 느낌으로 돌아다니니 행복하기만 했다. 아기자기한 카페도 가보고 초밥집이나 라멘을 먹으러 다녔다. 다이소에 들러 집에 필요한 물건을 사기도 하고 앞으로의 생활을 위해서 준비하는 단계를 가졌다. 일본어를 사용할 일이 거의 없으니 나는 이 생활이 계속 지속될 거란 착각을 했다.


하지만 직원이 하는 말을 전혀 못 알아들을 때면 남자친구에게 곧장 물어보기만 했다. 남자친구는 한 번씩 "나 없이도 잘 있을 수 있겠지?" 하며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지만 나는 당당하게 잘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이미 돌이킬 수도 없는 일이었기도 했다.


어느 덧 달콤했던 일주일의 시간이 지나버렸다. 남자친구는 도쿄의 어느 한 숙소에서 2일간 머물며 교육을 받고 아키타로 떠나게 되었다. 숙소까지 바래다준 뒤 인사를 하는데 이제 진짜라는 생각에 눈물이 찔끔 났다. 그런데 앞으로의 걱정 때문보다는 남자친구랑 떨어질 생각에 눈물이 났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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