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인 중고 거래와 미니멀리즘
도쿄에서의 첫 번째 아르바이트를 실패하고 나는 일본에서의 생활을 제대로 시작하기 위해 물품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원룸은 한국과 달리 가전제품이 전혀 구비되어있지 않아서 새로 구해야만 했다. 1년 정도 생활하는데 새로운 가전제품을 구매하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는 것 같아 중고 제품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냉장고, 세탁기, 밥솥, 전자레인지를 구해야 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가격대에 맞춰서 찾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러다 동유모 카페에서 3만 원에 냉장고를 올려놓은 글을 발견하였고 바로 판매자에게 연락을 했다. 그런데 말투가 조금 수상했다. 메시지를 주고받는데 한국어가 서투른 것이 꼭 보이스피싱 사기꾼과 말투가 비슷했다. 한국인 카페에서 연락하게 된 사람인데 한국어가 서투르다니 뭔가 미심쩍어서 전화번호를 구글에 검색했다. 설마 뭔가 나올까 했는데 설마 뭔가 나왔다. 같은 동유모 카페의 글이 나왔는데 그 사람의 번호와 실명이 언급되어 있었다. 이 사람을 조심하라면서 성폭행 같은 걸 당한 경험이 쓰여있었다. 그 글의 사실 여부는 확실치 않았지만 피해야 하는 것은 확실했다. 그 즉시 약속을 바로 취소했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주소를 알려주는 바람에 찝찝함을 씻을 수 없었다.
그렇게 첫 번째 중고거래에도 실패를 하자 더 이상 중고 거래를 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리고 내가 일본으로 입국한 지 일주일이 조금 지나던 시점에 한국에서는 일본 불매운동이 시작되었다. 집의 계약금도 200만 원 이상 지불한 상태에다가 이대로 돌아가는 것은 나에게 득 보다 실이 더 컸다. 겸사겸사 이왕 이렇게 된 거 조금이라도 돈을 아끼고 모아서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알아보기 시작하다가 미니멀리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한국 책을 구할 수 없어서 전자책을 구독했는데 거기에서 '궁극의 미니멀리즘'이라는 책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책에는 앞서 말했던 가전제품들 없이 생활하는 사람이 쓴 글이 담겨있었다. 그렇게 가전제품 없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면 미련한 짓이 분명하지만..
미니멀리즘을 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은 냉장고 없이 생활하는 것이었다. 실온에서도 오래가는 반찬을 만들어먹고 장 보는 것도 매일 해야만 했다. 덕분에 마트 가는 일이 자주 있어서 마트에서 사용하는 언어들을 쉽게 터득할 수 있었다. 도쿄에서 방사능을 따지는 것이 조금 웃길 수도 있지만 장 볼 때마다 원산지를 확인한다고 지명까지 외우게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마트를 갈 때면 직원들이 하는 말들이 달라서 마트에서 사용하는 언어도 다양했다. 처음에는 '비닐봉지 필요하세요?'라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여러 번 물어보다 실패하고 집으로 돌아와 남자친구에게 연락하여 물어봤다. 그렇게 하나씩 일본어를 부딪히며 익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