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시작하기 전 본사에서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되었다. 그곳에는 한국인 점장님이 계셔서 큰 어려움 없이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간단하게 이런저런 설명을 들은 후 실습실로 들어갔다. 실전에서 일할 수 있도록 포스기도 준비 되어있었고 카페 매장처럼 꾸며진 곳이었다. 몇 가지 간단한 언어들을 배우고 실전에서 하듯 연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인사하는 법, 주문받는 법에 대해서도 친절히 가르쳐주었다. 처음으로 입을 떼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열심히 연습했다. 나만 처음이 아니라서 그런지 안심이 되었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일하게 될 매장으로 찾아가 점장님을 만났다. 점장님은 일본인이셨다. 일본인 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너무 당연한 일인데 내가 너무 방심했던 것 같다. 간단하게 나의 자기소개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데 진짜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괜히 알아듣는 척 “하이하이” 했지만 하이로만 대답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열심히 연습해 간 “와카리마센(잘 모르겠습니다.)“을 시전했다. 그래도 점장님은 괜찮다고 말하며 나를 어린 딸을 바라보는 듯한 따뜻한 웃음을 보였다. 그 표정에서 나는 말로써의 소통이 아닌 그 이상의 무언가를 느꼈다. 말이 통하지 않기에 그 사람의 감정을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모르는 단어는 바디랭귀지로 열심히 설명하시는 모습을 보며 내가 하는 말을 유추하셨다. 괜히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그래도 그분과 함께라면 앞으로 더 잘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면담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서 일본어 공부를 했다. 그 말하고 싶은데 말하지 못하는 답답한 마음이 책을 펼치게 만들었다.
다행인 것은 한국인 부점장님이 계시는 다른 매장에서 3일간 교육을 받게 되었다. 3일 동안 두 매장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일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었지만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한국인 부점장님도 어찌나 친절하신지 자주 쓰이는 문장들을 전부 알려주셨다. 오리엔테이션과 실전은 정말 달랐다. 그렇게 실전 언어를 배운 뒤 나는 카운터에서 계산을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가타카나를 외우는 거나 숫자 말하는 게 정말 힘들었는데 막상 바로 부딪히니 저절로 외워졌다. 3일이 지나면 진짜 일본어만 사용하는 곳에 던져진다고 생각하니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
원래 일하게 되는 매장으로 돌아오면 그 매장의 아침 루틴을 배우게 되었다. 점장님께서는 감사하게도 일본어를 못하는 나를 배려해 주는 점을 고려해 바디랭귀지도 해주시고 말도 천천히 해주셨다. 반면에 다른 직원이 한 명 더 있었는데 정말 말이 빨랐다. 천천히 말해도 알아듣질 못하는데 빠르게 말하니 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눈치껏 상황을 보며 이해하여야만 했다. 그래도 신기한 것은 일본어 못하는 나에게 열심히 가르쳐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직원과 친해질 겸 나이를 먼저 물어봤다. “하타치데스“라고 말하는데 하타치가 뭔지 몰라 뭐냐고 물으니 손가락으로 2와 0을 만들어 20살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러곤 나에게 나이를 물어보더니 내 나이를 듣고 어려 보인다고 해서 왠지 기분이 좋았다. 좋은 의미에서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좋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뒤로 말을 이어나갔지만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그래도 싱글벙글 웃으며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니 즐거운 이야기를 하는 거 같아 나도 기분이 좋았다. 호응을 해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상대가 즐거워하니 그걸로 만족했다.
이렇게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에서 계속해서 대화를 하다 보니 소통이라는 게 신기했다. 말이 전혀 통하지도 않는데 대화가 이어졌다. 대화의 내용보다는 상대의 감정에 집중하면서 호응을 해주니 돌아오는 반응도 좋았다. 어쩌면 한국어로 대화할 때도 마찬가지로 상대가 원하는 대답을 찾으려고 하는 것보다 감정에 공감해 주고 호응해 주는 것이 더 중요한 게 아닐까. 그리고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집중하기보다 내가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그들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받아들이면 나는 그들과 소통할 수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