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ing Generosity
By. 시작팀 박선우
"왜 무료인가요?"
시작 커뮤니티를 운영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자신이 도움을 받았는데, 어떻게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지 신기해들 하신다.
질문주신 내용에 대해 친절히 대답해드리고 싶지만 짧게 답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떠올라 매번 허허 웃고만 말았다.
최근에는 커뮤니티에서 진행하는 디자이너 포트폴리오 피드백 모임 리뷰에 질문이 들어왔길래,
생각 정리도 할겸 시작 커뮤니티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비전을 공유해보려고 한다.
선의(Generosity)
나는 아주 어렷을 적부터 내 삶이 무가치하다고 생각했다.
조금 더 정확히는, 나의 개인적 삶(Individual Life)의 내재적 가치(Intrinsic Value)가 0이라고 생각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나를 세상에 존재하는 독립적 물질로 바라보았을 때, 그 물질 자체로서의 의미가 전무하다는 뜻이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다. 무엇을 잘 한다.. 등등 각종 능력과 경험으로 스스로를 채우고 가치를 산정해보려고 했지만, 매번 실패했고 끊임없이 공허함을 느꼈다.
그런데 24살 때 우연히 인생을 바꾸는 경험을 했다. 2020년 코로나19가 터졌을 때였다. 대학교 막학기를 다니던 나는 자주 가던 식당에서 사장님과 함께 TV를 보고 있었는데, 정부에서 소상공인들에게 200만원의 재난지원금을 나눠준다는 뉴스가 나왔다.
"사장님, 200만원을 받으면 식당 운영에 도움이 되나요?" 묻자, 사장님께서는 "장기적으로는 모르겠지만 한두 달 버티는 데에 도움은 된다." 라고 하셨다.
나는 사장님께 200만원을 지금 당장 드릴테니, 대신 할인된 가격에 메뉴를 주문할 수 있는 쿠폰을 200만원어치 발행해달라고 했다. 그러면 식당 쿠폰을 대학교 구성원들에게 팔아보겠다고. (그 당시 내가 왜 그런 무모한 말을 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의 첫 사업 '안암상권 선결제 쿠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나는 한 달만에 200만원치 할인 쿠폰을 모두 팔았고, 이후 총 7곳의 매장과 선결제 쿠폰을 발행해서 사장님들께 도움을 드릴 수 있었다.
"도와줘서 고맙다"라는 사장님의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비로소 내 삶이 꽤나 가치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선의를 베풀면 호구가 된다.
너무나 안타까운 말이지만 한국 사회에선 선의를 베풀면 호구가 된다는 말이 있다. 내 경험이 짧아서 잘 모르는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대충 맞는 말 같다.
그리고 사회 전반에 걸쳐서 손해를 보면 마치 목숨을 잃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도 그들도 과거에 남에게 선뜻 베풀었다가 실망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경험에 지레 겁을 먹은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나도 베풀었다가 배신 당한 기분을 느낀 적이 많다. 요즘도 그런 일들이 빈번히 일어난다. 나 스스로 호구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다행히도 나는 그게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왜 나는 호구가 되어도 괜찮은걸까?
주는 사람(Giver)과 받는 사람(Taker)
세상에는 누군가에게 가치 있는 것을 주면서 행복한 사람(Giver)과 가치를 받으면서 행복한 사람(Taker)의 부류가 있다.
나는 일찍이 내가 전형적인 Giver 라는 것을 깨달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Taker 성향이 있지만, 의외로 마음 속 깊은 곳에는 Giver 성향도 갖고 있다는 희망찬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건 아마도, 자신이 누군가에게 베풀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행복 때문이 아닐까.
나에게는 그 행복이 내가 삶을 살아가는 이유이고, 내 존재의 이유다.
선의를 디자인하다(Designing Generosity)
나는 2년 전부터 주식회사 시작을 통해 '선의의 행복' 이라는 것을 나누고자 노력하고 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매우 어려운 일이고, 한국 사회에서는 더더욱 어렵다.
그러나 디자인에서는 가능하다고 믿는다. 디자인이라는 행위는 알면 알수록, 원천적으로 타인을 위한 선의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2026년에는 "선의를 디자인하다(Designing Generosity)"라는 슬로건을 걸어놓고 커뮤니티를 운영해보려고 한다.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서 가치를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정말 감사한 것은 2년간 시작 커뮤니티에 모인 사람들이 Taker 보다는 Giver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시작 오픈카톡방 대화에서 누군가 한 말처럼, 부족한 때에는 Taker 로서 도움을 받지만 언젠가 성장하여 Giver가 되는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왜 무료인가요?"
그래서 왜 시작 커뮤니티의 활동들이 무료인지에 대해 정리된 답을 드리자면,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시작을 운영하는 내가 누군가에게 가치를 주면서 행복감을 느끼고, 그 행복감 때문에 사업을 하고, 스스로 세상에 존재하는 의미를 부여하며 인생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내가 느끼는 행복을 다른 사람들도 느끼기를 바라기에, 사람들이 받는 것에 대해 돈을 내기 보다는, 주는 것의 행복감을 돈으로 사는 비즈니스를 지향하고 있어서이다.
다소 역설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시작이 당신에게 주는 가치는 무료, 당신이 시작에 주는 가치는 유료다. 당신이 시작에 주는 가치를 통해 행복감을 피부로 느낄 때 즈음, 돈을 지불할 수 있는 순간이 올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