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게임을 좋아하는 여자다. 이제 엄마니까 게임을 좋아하는 엄마라고 하겠다.
나는 아들이 크면 여유시간에 같이 게임을 할 예정이다. 보통의 엄마랑은 조금 다른 것 같지만 무조건 하지 말라는 엄마보다는 좋은 엄마가 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 같이 플레이스테이션도 하고 보드게임도 즐기고 싶다. 물론 아들도 좋아해야 가능한 거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아들이 즐기는 게임이 있다면 나도 꼭 플레이해볼 생각이다.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소통하려면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직접 해보는 게 최고라고 생각한다.
이번엔 내가 응원하는 e-sports팀의 우승기념으로 글을 적어본다. 내가 응원하는 리그오브레전드(이하 LOL) e-sports 팀인 T1과 프로게이머 faker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앞으로는 엄마의 입장에서 보는 게임 등에 대해서도 종종 글을 적어보고자 한다.
LOL은 지난 아시안 게임에서 시범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올해 아시안 게임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e-sports다. e-spots가 정식 아시안게임 종목이 되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는 일인 것 같다. 단순 오락 또는 게임중독을 예로 들어 사회적으로 지탄받아왔던 게임이 '정식 스포츠'로 인정을 받았으니 말이다.
더 의미가 큰 것이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한국팀이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LOL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아시안게임 결승전 진출로 인해 국가대표라는 이유만으로 이번에 LOL을 응원했다는 게 10년 전만 생각해도 놀라운 일 아닐까.
이미 젊은 세대에게는 야구보다 인기 많은 스포츠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돌만큼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번에 한국에서 열린 2023 LOL 국제대회(롤+월드컵으로 '롤드컵'으로 불린다) 결승전은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렸는데 1만 8000여 명의 관중들이 직관을 했으며, 암표가 성행할 만큼 일찌감치 매진되었다.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마치 월드컵을 관람하던 사람들처럼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1만여 명이나 되는 관중들이 광화문 광장에 모여 응원전을 펼치기도 했다. 전 세계 누적 시청자수가 4억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결승전 동시접속자는 1억 명을 넘겼다고 한다. 가히 엄청난 인기다.
인터넷, TV예능 등에 등장하는 '밈'(대개 모방 형태로 사람에서 사람 사이 전파되는 어떤 생각, 스타일, 행동 따위를 말한다.) 중에 LOL에서 파생된 '밈'이 매우 많다. 그만큼 젊은 세대에게 인기가 엄청나다는 것. 작년에 크게 유행했던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역시 롤드컵을 우승한 한 선수의 인터뷰로부터 파생된 말이었다.
나는 게임은 좋아했지만 e-spots는 딱히 보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남편에 의해 e-sports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남편은 스타크래프트 임요환 시절부터 SKT T1을 응원해서 지금도 리그오브레전드(이하 LOL) T1을 응원하고 있다.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임요환선수. 현재의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만든 시초의 인물이다. 남편과 연애시절 남편은 SKT T1 LOL 경기를 보고는 했는데, 나도 남편을 따라서 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LOL에 대해 자세히 몰랐지만 게임도 즐기게 되면서 롤 경기 시청도 재밌게 하게 됐다.
남편이 전파한 건데 현재는 남편보다 내가 더 열심히 보고 더 열심히 응원하게 되었다.
게임도 첨엔 같이 했는데 나만 열심히 했다. 못하니까 스트레스받아하는 남편과 못해도 재밌는 나. 이렇게나 성향이 다르다.
나는 "한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 어떤 분야에서 정말 성실하고 꾸준한 사람, 한 분야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을 보면 너무나 존경스럽다. 그래서 나는 그런 사람들을 좋아하고 응원한다. 물론 누구나 그 분야에 전문가로서 뛰어든 사람들은 다 열심히 하겠지만 그중에서도 더 특출 난 사람은 있는 법이다. 나는 유난히 더 그런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아마 내가 전혀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나는 Faker의 팬이 되었다.
당연히 Faker의 팀인 SKT T1 현재는 T1을 열심히 응원하게 되었다.
LOL 프로게이머인 faker 선수. 신기록을 매번 경신하고 있다. 수명이 짧다는 프로게이머세계에서 벌써 프로게이머 11년 차 임요환 선수가 유명했던 것처럼, 프로게임 경기를 시청하지 않아도 '페이커'라는 이름은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했다. 나는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LOL을 하진 않아도 들어봤을 법은 했다.
남편과 함께 LOL 경기를 시청하기 시작하면서' faker 이상혁' 선수에 대해 알면 알게 될수록 팬이 될 수밖에 없었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으면서도 겸손한 사람. 인성적으로 논란거리나 트러블을 만든 적이 없었던 사람. 꾸준하고 성실하게 아무도 걷지 못했던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사람. 나는 이 사람을 좋아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되었던 것이다.
페이커선수의 스토리 영상.
학력은 나중에 해결할 수 있다면서 응원해 준 담임선생님이 레전드인 것 같다.
지금이야 faker선수와 LOL의 인기로 LOL e-sports가 발전하면서 복지도 좋고 연봉도 엄청나지만 그 시절에 누가 공부가 아닌 게임을 하라면서 응원해 줄 수 있었을까. (그전에 스타크래프트로 유명한 임요환과 같은 선수들이 있긴 했지만 지금만큼의 환경은 아니었다.)
누구도 못하는 10회가 넘는 수많은 우승과 롤드컵으로 불리는 국제대회 3회의 우승.
그리고 드디어 이번 2023 LOL 국제대회(롤드컵)에서 롤드컵 4회 우승을 달성했다.
이번 2023년 여름 프로게이머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는 '팔 부상이슈'까지 겪어 휴식기까지 가져야 했다. 그럼에도 오히려 그가 돌아오자마자 별다른 저항 없이 연단 승리를 거머쥐면서 '초전도혁'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2023 LOL 국제대회 우승 드디어! 드디어 우승했다. 내가 응원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우승을 목도했다. faker선수 그리고 T1이 마지막 롤드컵 우승 이후 7년 만에 얻어낸 성과였다.
사실 남편과 같이 보기 시작한 게 2018년이었다. 정말 안타깝게도 2018년이 내가 응원을 시작한 첫해였다.
2018년은 faker 선수가 2017년 좋은 기량에도 안타깝게 롤드컵 결승에서 패배한 이후 부진이 시작된 해였다. 2013년도에 데뷔해서 수많은 국내리그 우승과 롤드컵 우승 3회라는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2017년 결승의 패배 이후 강한 슬럼프가 찾아왔다.
18년 롤드컵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한물갔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19년 실력 있는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슈퍼팀이 결성된 듯했으나 롤드컵 4강에서 패배.
20년도에는 신인 선수(clozer)를 콜업 후 계속 faker 선수와 교대로 교체 기용하면서 faker선수의 은퇴를 준비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세간에는 스포츠선수들의 고질적 문제인 '에이징커브'가 왔다는 말이 많았다. 결국 T1은 스프링 시즌 우승에도 불구하고 롤드컵 진출에 실패했다.
21년 롤드컵에 진출했지만 4강에서 꺾이고 말았다.
22년. 정말 기대됐던 해였다. keria라는 어리지만 마치 페이커의 어린 시절을 보는 듯 천재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선수와 나머지 T1 아카데미 출신의 어리지만 실력 있는 선수들이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faker 선수 역시 '에이징커브'라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로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 마치 그동안 자신을 무시하고 평가절하하던 사람들에게 아직 아니라고 나를 의심하지 말라고 말하는 듯 보였다. 오랜 경험을 토대로 한 노련한 모습과 감탄을 자아내는 메이킹능력을 보여주었다.
스프링 시즌 전승우승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며 국제대회 우승도 그저 눈앞에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자만했다. 아니 아주 조금 방심했다. 그리고 마치 전 세계와 온 우주가 결승 상대팀이었던 DRX팀의 스토리를 완성시켜 주려는 것 같았다. 마치 DRX라는 바닥부터 올라온 언더독 팀이 승리하기 위한 스토리의 최종보스가 T1인 것처럼 보였다.
결국 T1은 5전3선승제의 경기에서 5경기를 꽉 채우고 눈앞에서 우승을 놓쳤다. keria선수가 손을 바들바들 떨며 오열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2017년에 우승을 눈앞에서 놓쳐 오열하는 faker선수를 연상케 했고, 이제 맏형 주장이 되어버린 faker 선수는 주변 팀원들을 살피며 눈물을 삼켜야 했다.
내가 진짜 눈물 잘 안 흘리는 사람인데 나까지 울컥했다. 이제 아들이 있어서 그런가 어린선수가 우는 모습에 더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웠다.
전 팀에서 함께 동고동락하며 어려운 시기를 보냈던 pyosik 선수도 포옹하며 눈물을 보였다.
그리고 스토브리그 없이 그들은 같은 멤버로 23년을 맞았다. LOL은 팀 게임인 데다가 계약직인 e-sports 프로선수의 특성상 매년 팀원이 바뀌기 마련인데 전 팀원이 유지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승에서 패배했던 경험으로 인해 그들은 갈 길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작년의 자국리그 전승우승과 국제대회에서도 막을 자가 없을 것처럼 보였던 강한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작년부터 함께했던 감독이 시즌도중 갑작스레 사퇴의사를 밝혔다. 설상가상으로 팀의 주축이자 주장인 faker선수는 팔부상으로 여름시즌에 휴식기를 맞았다. 나머지 팀원들은 더더욱 갈 곳을 잃은 것처럼 8전 1승 7패를 기록했으며 좋은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faker 선수가 없어도 T1은 잘할 것이다. 오히려 더 잘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faker 선수의 휴식기가 끝나기를 모두 고대했다. faker선수의 복귀 이후 T1은 거짓말처럼 압도적 실력차로 시즌 나머지 경기를 전승 우승하며 롤드컵 선발전출전권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Gen.G(구 삼성)라는 국내 강팀에게 꺾이며 서머시즌을 준우승으로 마무리한다. 같은 멤버로 무려 5번째의 준우승이었다. 세간에는 동메달을 딴 선수보다 은메달을 딴 선수가 불행하다는 말이 있다. 심리적으로 눈앞에서 금메달을 놓친 사람이 가장 불행하다는 것이다. 지금 T1의 선수들은 그 불행을 무려 5번이나 겪어야 했다. 물론 롤드컵의 문턱에도 가지 못한 팀들도 존재하지만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그들은 매우 불안정해 보였다. 친했던 팀원들끼리도 내부갈등이 있는 듯 보이기도 했다.
대망의 롤드컵. 서머시즌 결승전에서 Gen.G에게 패했던 이 팀은 또다시 같은 팀에게 예선전에서 패하고 만다. 나는 그들이 여기서 더욱 갈 곳을 잃을 까봐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드디어 다시 길을 찾았다. 작년에 하던 대로. 본인들이 하던 대로. 본인들이 잘하는 것을 하기로 한 것이다. 우승을 눈앞에서 자꾸 놓침으로 인해 본인들의 단점을 커버하려고 더 잘하는 팀을 따라가려고 애를 썼는데 더 이상 그러지 않기로 한 것이다. 팀의 방향을 바꾸자 그들은 승승장구했다.
예선에서 그들을 이겼던 한국리그 1등 팀인 Gen.G는 오히려 중국리그 3등 팀에게 8강에서 무력하게 패배하고 만다. T1도 8강에서 패배하면 4강전의 4팀이 모두 중국팀이 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한국에서 열리는 홈경기에서 말이다. 이제 한국의 모든 LOL팬들은 T1과 faker를 응원하게 된다. 4강 4팀이 모두 중국팀이 되는 것은 싫으니까 말이다. 작년엔 악당이었던 T1이 이번엔 한국 LOL팬들의 희망이 되었다. 팬들은 T1의 우승을 염원하며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해서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 주었다.
결국 T1은 4강에서 중국리그 1등 강팀을 꺾고 결승에서 단 한 치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으며 단 한게임도 내주지 않고 3대 0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린다. 응원 6년 만에 승리라 더 기쁘고 기특하고 즐거웠다. 아이가 없었다면 직관도 시도해 봤을 텐데 아이가 있어 직관은 하지 못해 약간의 아쉬움은 있었지만 응원하는 팀이 어려움을 딛고 얻어낸 값진 승리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
내가 응원한 팀이기에 이 모든 스토리를 함께 지켜봐 왔다.
T1의 스토리를 보면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많았다.
1. 사람은 계속해서 좋은 일만 생기면 본인도 모르게 방심하고 자만하게 된다. 좋은 일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것. 심지어 그것이 시작하자마자 생기면 더더욱 독이 될 수 있다는 것.
(현재 멤버로 출전 한 첫 스프링 시즌에서 시즌전승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우승함)
2. 실패는 때로 좋은 디딤돌과 약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들이 작년에 쉽게 우승했다면, 오늘과 같은 성과를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원 재계약이라는 (팬들이 모두 기뻐하는) 성과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3. 내 약점을 없애려고 하는 것보다 내 강점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낫다. 사람은 누구나 장점과 단점이 있다. 지금의 흐름을 따라가려고 혹은 잘하는 사람을 따라가려고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내가 못하는 것을 잘하려고 애를 쓰는 것보다는 내가 잘하는 것 나의 장점에 집중하는 게 더 나을 수 있다. 물론 약점을 내버려 둬서는 안 되겠지만 말이다.
4. 온전히 끝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된 다는 것. 아무리 쉬워 보이는 상황이 찾아오더라도 끝날 때까지는 절대로 긴장의 끈을 아주 조금이라도 놓아서는 안된다는 것. 실제로 마지막에 그렇게 우승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5. 독보적으로 잘하려면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길이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 그들은 대세라고 평가받는 선택과 전략을 택하지 않고 본인들만의 메타(게임의 주류가 되는 플레이 경향, 대세 전략)를 만들어냈다.
여전히 독보적으로 잘하는 faker 선수와 올해 우승을 이뤄낸 팀원들이 전원 동일한 멤버로 한번 더 도전하는 내년이 큰 기대가 된다. 계약직인 프로 스포츠의 특성상 같은 멤버로 다음 연도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이례적으로 전멤버 재계약이라는 성과를 이뤄냈기에 더더욱 기대가 크다.
T1의 탑 역할을 맡고 있는 Zeus 선수 "오늘까지만 최고의 선수로 하고 내일부터는 다시 도전자의 마음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23년 롤드컵 결승 MVP를 받은 zeus 선수의 인터뷰 내용이다. 아시안 게임 금메달까지 받았고 T1이 힘들 때마다 잘해주어 결승에서도 MVP까지 받은 선수. 2004년생으로 어린 선수지만 본받을 만한 마음가짐이다.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선수다.
내년엔 최초로 그랜드슬램까지 달성하는 것도 기대해 봐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