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달리기가 주는 추억선물
월요일입니다만 빅토리아 데이 휴일입니다. 오 예!기분이 말도 못 하게 좋습니다. 오늘 아침은 어제보다 빗발이 좀 강하지만, 뭐 어때요? 땀에 젖나 비에 젖나. 하하. 아내와 아이들이 아직 꿈나라에 있어서, 조심조심 준비하고 나와서 또 뜁니다. 지겹지 않냐고요? 전혀! 늘 새로워, 짜릿해! (정우성처럼 읽어주세요!)
매번은 아니지만 신 선생은 달리기를 할 때 음악을 듣곤 합니다. 주로 듣는 플레이 리스트에는 약 200여 곡이 들어있는데, 보통 랜덤으로 플레이하다 보니, 어떤 노래들은 거의 매번 듣기도 하고 또 어떤 노래들은 한동안 못 듣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 퀸 엘리자베스 파크의 깔딱 고개를 힘겹게 넘어서, 막 내리막길로 접어들 때, 오랜만에 아이린 카라의 “What A Feeling”이 들리기 시작하는데 마치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갑더군요.
이 노래는 신 선생이 초등학교 6학년이던 1983년에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영화 “플래시 댄스”의 하이라이트 장면에 삽입된 노래인데요, 당시 초딩 아이들 사이에서 뮤직 비디와 함께 큰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신 선생도 이 노래를 참 좋아해서 많이도 들었습니다. 가사도 하나도 모르면서 말이죠. 영어라고는 ABC송만 겨우 알던 신 선생은, 영어로 된 가사를 찾아볼 생각은 엄두도 못 내고 그저 귀에 들리는 대로 “와러필~레!”만 앵무새처럼 따라 부르며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가 나온 지 벌써 42년이 되었다니, 세월참…
제니퍼 빌즈가 연기한 주인공 알렉스는 발레리나를 꿈꾸지만 형편이 안되어 낮에는 제철소에서 일하고 밤에는 유흥업소에서 춤을 추며 생활을 합니다. 많은 어려움과 좌절을 극복하고 마침내 발레단 오디션에 참가해서, 긴장하며 음악을 틀고 춤을 추기 시작하는데 그때 나온 노래가 바로 “What A Feeling”입니다. 잔잔하게 시작해서 조금씩 빌드업을 하면서, 영화 속 알렉스도 서서히 자신감을 찾으며 춤에 힘이 붙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마침내 절정에 이르러 절규하듯 부를 때, 알렉스도 비상하여 슬로 모션으로 하늘을 나는 그 장면이 잊히지 않습니다. (나중에 성장한 후에 그 장면을 다시 보니, 어려운 춤 동작에서는 대역 배우 티도 많이 나고, 전체적으로 조금 엉성해 보여서 우습기도 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비주류 갬성 충만한 신 선생은, 브룩 쉴즈, 소피 마르소, 그리고 피비 케이츠로 삼등분된 한국 남자아이들의 연습장과 코팅 책받침 천하에서, 굳이 알렉스 역할을 맡아 열연했던 신예 제니퍼 빌즈를 남몰래 좋아했었습니다. (근데 그게 뭐라고 남몰래 좋아해! 하여간 범생이들은 참 답답합니다. ^^)
생각이 여기에 미치다 보니, 초등 6학년 때 친구들의 얼굴과,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교실이라는 정글에서 벌어진 온갖 드라마가 생각나서 마음이 말랑말랑 해졌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이 노래가 한참 유행할 때, 반에서 어떤 친구의 생일 파티에 초대를 받지 못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당연히 초대 명단에 들어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많이 실망했었죠. ”공부도 못하는 뚱땡이 주제에 감히 반장이고 공부도 잘하는 나를 초대하지 않다니!” 하며 그 친구를 속으로 얼마나 욕하고 미워했는지 모릅니다. 하하. 아이고, 미안하다 친구야.
시간이 좀 지난 후, 까짓 거 생일 파티에 초대를 받지 못할 수도 있는 건데 왜 그렇게까지 속상해했을까 생각해 보니, 당시 친구들과 너무 차이가 나는 가정 형편에 어린 마음에 나름 피해의식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가 같은 압구정 현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만 초대하고, 신사동의 낡고 작은 아파트에 사는 신 선생 같은 친구들은 제외했을 거라고 혼자 상상으로 오해하고 더 미워했었던 것 같습니다.
하필 그날은 방과 후에 라이벌이었던 옆반과의 축구 경기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초대받은 남자아이들 중에서 반 축구대표 11명에 포함되는 아이들이 많아서 생일 파티는 축구 경기 이후로 연기되었습니다. 생일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신 선생은 축구 시합을 가야 하나 고민이 되더군요. 하지만 생일파티에 초대받지 못했다고 해서 축구마저 못하면 너무 속상할 것 같아서 경기에는 참가하기로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생일파티에 초대한 반 여자아이들과 운동장 한쪽 구석에서 웃고 떠들며 응원을 하고 있는 뚱땡이의 모습이 정말 꼴 보기 싫었습니다. 그리고 평소에는 싸움도 불사할 만큼 축구를 열심히 하던 남자아이들이, 그날은 생일 파티에 정신이 팔려서 그런지 도통 경기에 집중하지 않고 설렁설렁하다가 계속 어이없이 골을 내주었습니다. 그런데도 다들 개의치 않는다는 듯 실실거리며 웃는 모습에 신 선생 혼자 얼마나 분통이 터졌는지 모릅니다.
경기에 져서 분한 마음에 책가방을 메고 운동장을 빠져나오는데, 혼자 버스 정류장 쪽으로 향하는 신 선생의 저 멀리 반대쪽으로 생일파티를 향해 가고 있는 뚱땡이와 반 아이들이 보였습니다. 다들 뭐가 그리 좋은지 오늘 음식으로는 뭐가 나오는지, 게임은 무엇을 하며 놀 건지 시끌벅적 떠들며 가고 있는데, 아마 그날 이후 압구정동 현대 아파트 사는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된 것 같습니다. 으하하. 민망해라! (어차피 그로부터 몇 개월 후 초등학교 졸업을 하고 반포지역에 있는 중학교에 배정을 받으면서 압구정동과의 인연은 끝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음악과 달리기가 이렇게 좋습니다. 이번 주말엔 어린 시절 즐겨 듣던 노래를 들으면서 달리기를 한번 해보시길 권합니다. 달리기에 깊이 몰입되어 있다가, 어느 순간 까맣게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선물처럼 떠올라 한동안 머물다 보면, 마음이 몽글몽글 해지는데 그 느낌이 얼마나 좋은지 안 해본 사람들은 절대 모를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