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선생 네 맏아들 요요는 지난 6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들과 함께 동네의 공립 고등학교에 가는 대신, 아빠가 교사로 근무하는 가톨릭 남자 사립학교에 8학년으로 편입을 했습니다. 8년 전, 요요가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아빠 학교로 데려올까 고민하기도 했었지만, 아내와 상의 끝에 일단 초등학교는 동네 학교에 보내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만 5세의 어린 나이인 유치원에서부터 무려 13년이라는 긴 세월을 남자 학교에서 보내는 것이 과연 좋은 선택일까 하는 의구심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광역 밴쿠버 전역에서 학생들이 오는 아빠네 학교보다는 집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위치한 초등학교에서 자연스럽게 동네 친구들도 많이 사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보내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입시준비를 시작했던 작년 이맘때, 아이는 정든 친구들과 헤어지는 게 싫어서, 그리고 "아무개 선생의 아들"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생활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에 아빠 학교는 오고 싶지 않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막상 입시 시즌이 시작되고 보니 친했던 친구들도 다들 저마다 이런저런 특목고에 지원을 하는 것을 보면서, 어차피 서로 뿔뿔이 흩어지게 될 것을 예감한 아이는 비로소 아빠 학교에 합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입시 경쟁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요요는 여섯 개의 에세이 질문이 있는 지원서를 비롯한 서류 전형에 이은 언어와 수리 영역의 지필 고사를 보았고, 선택사항이라지만 누구나 다 하는 비디오 프레젠테이션을 제작했고, 긴장되는 일대일 면접에 이은 그룹 면접까지, 7학년이 감당하기엔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서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요요는 다행히 평균보다는 조금 더 크고, 달리기 및 기초 체력은 좋은 편이지만, 기술을 요하는 팀 스포츠 운동은 어릴 때부터 좋아하지 않아서 제대로 할 줄 아는 운동이 하나도 없습니다. 컴퓨터 게임만 좋아하는 전형적인 아시아계 범생이죠. 그런 아이가 풋볼과 농구, 조정과 레슬링등, 각종 스포츠에 진심인 남자 고등학교에, 아는 친구도 하나 없이 입학하게 되니 엄마는 덜컥 걱정이 되었나 봅니다. 무경험자도 얼마든지 지원할 수 있다는 풋볼팀 코치의 말에 고무되어, 8학년 팀 트라이아웃에 지원해 보라고 아이를 설득하더군요. 태어나서 풋볼공도 한번 만져보지 못한 아이한테요.
엄마가 내세운 이유는 이렇습니다. 일단 팀 로스터가 무려 65명이나 됩니다. 8학년 인원 전체는 170명이 조금 안되니까, 학년의 약 40%에 해당하는 아이들이 풋볼팀에 들어갑니다. 9월 신학기부터 바로 시작되는 풋볼시즌에 대비하기 위해서, 선수들은 8월 중순부터 학교에 나와서 매일 2-3시간씩 훈련을 시작합니다. 팀 스포츠는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아이는 당연히 관심 없다 했지만, "다른 아이들은 8월부터 나와서 매일 몸 부대끼며 운동하면서 엄청 친해질 텐데, 너는 안 그래도 지금 아는 친구 하나도 없이 입학하는데, 학교 시작 하고 이미 다 친해진 아이들 속에서 너 혼자 적응하기 힘들지 않겠니?"라는 논리로 아이를 설득하더군요.
아이는 마지못해 트라이아웃에 참가했지만, 막상 가보니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승부욕도 발동하더랍니다. 기술은 터무니없이 부족하지만 빠른 달리기와 몸빵으로 잘 버티면 어쩌면 팀에 들어갈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 서자, 아주 적극적으로 훈련에 임해서 겨우 합격을 했습니다. 이후 엄마 말대로 매일 두 시간씩 같이 땀 흘리며 운동을 하다 보니 아이들은 금세 친해졌고, 요요의 새 학교 적응도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혈기 왕성한 사춘기의 기운을 과격한 운동으로 좍좍 빼주고 오니, 피곤해서 인지 게임도 안 하고 잠자리에 일찍 들고, 나날이 더 단단하고 건강해지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풋볼은 생각보다 진입 장벽이 낮은 종목입니다. 캐나다 풋볼은 경기에 나서는 인원이 공격팀 12명, 수비팀 12명으로 (미국은 각각 11명) 다른 스포츠에 비해 많습니다. 그리고 공을 잘 못 다루는 축구 선수나 농구 선수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풋볼은 그렇지 않습니다. 쿼터백이 아니라면 공을 멀리 잘 던질 줄 몰라도 괜찮고요, 발이 빠르고 공을 잘 캐치할 줄 알면 와이드 리시버나 러닝백 같은 빛나는 역할을 맡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각자 특성에 맞게 수행할 역할이 많은 운동입니다. 그래서 요요처럼 공을 다루는 기술은 없지만, 빠르고 힘이 좋은 아이들은 수비팀에서 나름 중요한 역할을 맡아서 활약을 할 기회가 있으니 아이가 신이 나서 훈련에 참여하게 됩니다.
아직은 공부와 성적에 대한 부담이 적은 8학년이니, 엄마 아빠로서는 아이가 그저 학교에 잘 적응하고, 오래 남을 좋은 친구도 사귈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엊그제 훈련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엄마가 요요에게 물어봤답니다.
엄마: "요요, 학교는 어때? 남자 학교 분위기는 정말 정글이니? 책에서 나오는 것처럼 막 터프하고 그래?"
요요: "엄~마! 애들은 다 똑같아요."
엄마: "그래도 이젠 하이스쿨인데 다른 점이 하나도 없어?"
요요: "음, 하나 다른 게 있긴 해요. 이 학교는 왠지 서로 더 응원하고 격려해 주는 분위기가 강한 것 같아요."
엄마: "어머, 진짜? 그건 정말 좋구나! 근데 왜 그런 거 같니?"
요요: "음... 몰라요."
아직 학기 초라서 성급한 판단일 수도 있겠지만, 요요가 느낀 학교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는 아직은 공부 부담이 적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운동을 하는 남자 학교의 좋은 특성 중 하나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태클 한 번만 성공해도 다들 달려와서 서로 헬멧 쓴 채로 머리 쾅쾅 부딪히며 축하해 주는 분위기가 교실에서도 이어지는 모양입니다. 친구가 없어서 걱정했던 아이가 학교 다니는 게 신나고 재미있다니 아빠로서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얼마 전, 작년에 남녀공학에서 전학 온 한 학생과의 대화가 생각납니다.
신 선생: "헤이, 토마스, 너는 작년에 ㅇㅇ학교에서 전학 왔지? 거긴 남녀공학이잖아. 예전 학교와 비교해서 분위기가 좀 어떤 것 같아?"
토마스: "미스터 신, 전 이 학교가 더 재밌어요. 여자애들이 없으니 쓸데없는 데 신경도 덜 쓰이고, 가면 쓸 필요 없이 각자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지낼 수 있어요. 그래서인지 예전 학교 남자 애들보다 여기 애들이 자기감정 표현도 훨씬 더 잘해요. 운동할 기회가 많은 것도 너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