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후, 가족과 함께 2025년 BC주 하이스쿨 풋볼리그의 8학년 부문 챔피언 결정전이 열리고 있는 버나비 레이크 풋볼 경기장에 나와있습니다. 어느덧 11월 말에 접어들어 안 그래도 어둡고 추운데 안개비마저 축축하게 내리고 있으니 겨울 재킷을 입어도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집니다.
4 쿼터 내내 엎치락뒤치락 피 말리는 접전 끝에 스코어는 22대 22. 경기 종료를 불과 18초 남기고,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공격기회를 가진 우리 팀 코치는 선수교체를 단행합니다. 지난 9월, 첫 경기에서 부상을 당해서 시즌 내내 한경기도 못 뛰고 재활에 집중했던 주전 러닝백 마이크(가명)가 드디어 나옵니다.
"다운, 셋, 헛!"
공을 받은 쿼터백이 한차례 페이크를 한 뒤, 마이크에게 공을 넘겨줍니다. 이를 눈치챈 상대팀 수비수의 태클에 순간 넘어질 뻔했지만 마이크는 이내 몸을 돌려 중심을 잡고 터치라인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합니다.
"됐어, 뚫렸다!"
10 야드, 20 야드, 30 야드… 터치다운!
마치 디즈니가 만든 스포츠 영화의 마지막 장면 같은 이런 말도 안 되는 극장골(?)에 모두 난리가 납니다. 그라운드에서는 오늘의 영웅 마이크를 향해 모든 팀원들이 달려들어 부둥켜안고 축하를 합니다. 리그 3연패를 달성하고 세상을 다 가진 듯 포효하고 기뻐하는 어린 선수들과 코치들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요요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요요는 오늘 경기에 단 1분도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지난여름 풋볼을 처음 시작한 요요는 교체 선수입니다. 리그 우승을 가리는 결승전인데 경기 내용마저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니, 요요 같은 교체 선수들에게는 그라운드를 밟을 기회가 당연히 없었겠지요.
쏟아지는 빗속에서 격렬한 경기를 마치고 난 주전 선수 아이들의 유니폼은 그야말로 엉망이지만, 그들의 얼굴은 환하게 빛납니다. 그리고 그 뒤쪽으로 경기를 못 뛰어 얼룩 하나 없이 깨끗한 후보 선수들의 유니폼이 대비되어 눈에 들어옵니다.
우승 축하 파티를 위해 학교로 돌아오는 길, 모두들 흥분해서 왁자지껄 난리도 아닐 텐데 선수단 버스 안에서 요요의 마음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드디어 학교 카페테리아에 잘 차려진 파티장에 선수들이 들어옵니다. 다행히 요요의 얼굴이 밝습니다. 피자를 몇 겹으로 접어서 입속에 욱여넣으며 옆에 앉은 친구에게 먹방을 하는 모습에 비로소 안심이 됩니다.
코치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흥분해서 먹고 떠들기 바쁜데, 먹고 난 쓰레기를 치우고 주변 테이블을 닦으며 뒤처리를 하는 몇몇 아이들 중 요요의 모습이 보입니다. 아들의 그 기특한 모습에 아빠미소가 나오더군요. 아직 부족한 실력을 스스로 잘 알고 인정하지만 주눅 들지 않고, 비록 조연이지만 함께 이룬 성과를 기쁜 마음으로 축하하고,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먹고 난 뒷자리 청소도 묵묵히 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어느새 이렇게 또 한 뼘 성장했나 싶은 마음에 기쁘고 흐뭇했습니다. 수고 많았어,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