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 일상에서의 실패
유튜브뿐 아니라 넷플릭스, 쿠팡플레이, 티빙 같은 OTT 앱도 없고, 네이버나 사파리, 크롬 같은 인터넷 브라우저도 없다. 카카오톡을 비롯한 몇몇 커뮤니케이션용 앱과 회사 업무를 위한 아웃룩, 독서용 ebook 앱과 일부 쇼핑 및 교통, 기록용 앱만 남아있다.
게임기도 정리했다. 플레이스테이션은 아예 케이블을 다 뽑아 장롱 깊숙이 넣어두었고, 닌텐도 스위치는 아들 전용 기계가 되었다. 스마트폰에도 당연히 모바일 게임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
이렇게 산 지 이제 석 달째다. 그리고 느낀 건, 오직 후회뿐이다.
늘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다.
회사일에 치여 운동은 엄두도 못 냈고, 일기는 일주일씩 밀려 몰아 쓰기 십상이었으며, 책은 펼치지 못한 지 오래였다.
하루에 잠도 다섯 시간 남짓 자고, 골프는 물론 변변찮은 취미생활도 없었으며, 일주일에 며칠은 꼭 야근을 하며 허겁지겁 살고 있었으니 시간이 없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살다 보니,
살은 계속 쪄서 결혼할 때보다 30kg이나 더 나갔고, 체력은 엉망이 되어 조금만 걸어도 지칠 정도였다. 피로에 절어 좀비처럼 사무실을 돌아다녔고, 당연히 가족도 잘 챙기지 못했다. 거기에 회사 성과마저 따라주지 않으니 스트레스가 겹겹이 쌓여 몸과 마음을 짓눌렀다.
이대로 살면 몇 년 안에 몸이 먼저 망가지든, 정신이 먼저 무너지든, 하나는 반드시 크게 고장 날 것 같았다.
더는 삶을 방치할 수 없어 나름의 몸부림을 시작했다. 자기 계발서를 여러 권 숙독했고, 유튜브 강의도 많이 참고했는데 효과가 없었다. 매일 해야 할 일을 적은 체크리스트를 여러 방식으로 만들어보기도 했는데, ‘독서하기’, ‘운동하기’ 같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날이 더 많았고, X 표시만 가득한 리스트는 2-3주를 못 버티고 버려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회의실에서 직원들을 앉혀놓고 제품 포트폴리오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었다. 생산성 낮고 수익 없는 제품은 줄이고, 그 시간과 자원을 중요 제품에 집중하라는 대단히 원칙적인 내용을 강변하며, 관성적으로 반복하던 비효율적인 이벤트는 없애고, 올해 성과를 좌우할 하반기 메인 캠페인에 힘쓰라고 주문했다.
맨날 일 많다 돈 없다 사람 없다 죽을 지경이다 그러지 말고 우리 고객에게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기준으로 업무를 살펴보고 줄일 것이 있으면 들고 오라고 촉구했다.
그렇게 말하던 중, 회의실 유리창에 내 모습이 언뜻 비쳤다. 뒤룩뒤룩 살이 찌고 피로에 찌든 중년의 아저씨가 서 있었다. 그 모습에 직원들에게 하던 질타가 그대로 내게 돌아왔다.
입버릇처럼 바쁘다면서 나는 정말 중요한 일에 시간을 쓰고 있었나? 쓸데없는 일을 관성적으로 반복하고 있진 않았나? 가장 중요한 고객인 ‘나’에게 가치 있는 선택을 하고 있었나?
그날 밤, A4 용지를 꺼내 들었다. ‘새롭게 해야 할 일’을 적던 예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덜어낼 것들’을 썼다. 몇 번이고 적고 지우고 다시 정리하니, 세 가지로 모아졌다.
이걸 없앨 수 있을까? 아니, 반드시 없애야 하나? 내 안에서 반발이 치솟았다.
유튜브? 영어 공부와 주식 공부에 꼭 필요한데?
넷플릭스? 쿠팡플레이? 많이 보는 것도 아니고 화제작 드라마만 몇 편 보는 건데?
게임? 하루 스트레스 푸는 정도인데 문제가 될까?
하지만 알고 있었다. 여기서 물러서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나는 고개를 흔들어 내 안의 반발을 떨쳐냈고, 생각했던 것을 빠르게 실행에 옮겼다.
앉은자리에서 바로 유튜브 프리미엄과 넷플릭스 요금제를 해지하고,
관련 앱도 모두 지웠다. 게임기도 모두 정리했다.
그랬더니 얼마가지 않아 금세 효과가 느껴졌다. 자기 전 침대에서, 출퇴근 길 지하철에서, 야근 후 집에 돌아와 켰던 그 크고 작은 스크린들이 내 시간을 얼마나 갉아먹고 있었는지 깨닫는 데에는 오랜 기간이 걸리지 않았다.
운동을 시작했고 벌써 15kg 가까이 감량했다.
책도 예전보다 훨씬 많이 읽게 되었고, 글을 쓸 시간도 자연스레 생겨 이렇게 장문의 글을 연재할 수도 있게 되었다. 집안일도 더 많이 하게 되었고, 회사 일도 좀 더 차분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젊었을 땐 이런 통제를 잘 해냈었다.
싸이월드도 거의 안 했고, 페이스북도, 인스타그램도 하는 흉내만 냈다.
애니팡, 디아블로, 리니지 같은 국민 게임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8년 전쯤부터 조금씩 가드를 내리고,
육아, 회사일 등 여러 변명을 덧붙이더니 어마어마한 시간을 허비해 온 것이다.
8년 전부터 이렇게 살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아마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지금처럼 ‘나는 왜 실패했는가’ 같은 글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40대를, 가치도 없는 것들에 시간을 쏟으며
성장의 기회를 스스로 던져버린 것이 너무 후회된다.
이것이 내가 실패한 여덟 번째 이유다.
혹시 삶의 전환을 바란다면, 복잡하게 고민하지 말고 우선 유튜브 앱부터 지워보시라. 많은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