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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턴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3부 - 삶을 바라보는 태도의 실패

by 박기주

몇 학년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국민학생 때의 어느 여름날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스마트폰은커녕 삐삐조차 없던 시절,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심각한 방향치였던 나는 집에서 30분 정도 떨어져 있던 상점에 심부름을 갔다가 건물을 나오면서 무심코 엉뚱한 방향으로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모르는 길, 익숙하지 않은 길이었다. 걸을수록 낯선 풍경만 이어졌다.

그런데도 주위에 묻기가 창피해서인지, 지금 길이 분명 맞을 거라는 막연한 확신 때문인지, 아니면 돌아가봤자 길을 찾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인지, 난 방향을 고치지 않은 채 앞으로 계속 걸었다. 언젠가 익숙한 풍경이 나타날 거라는 바람으로.


그렇게 내리 걸은 게 무려 세 시간이었다.

이런 표정으로 세 시간을 내리 걸었더랬다. 이보다는 훨씬 못생긴 얼굴로.


아무리 가도 집은 나오지 않았다. 방향이 틀렸으니 당연한 일이다.


다리도 점점 아파오고 부모님께 혼날까 걱정도 들기 시작하여, 겨우 용기를 내 길을 걷던 인상 좋은 아주머니에게 부탁을 해서 20원을 빌려 공중전화로 집에 전화를 했고, 안 그래도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으로 유괴와 인신매매에 대한 공포가 만연하던 시절, 전화기 앞에서 노심초사 기다리셨던 어머니는 택시를 타고 내가 애써 묘사한 장소로 달려오셨다.

그제야 나는 비로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돌아가면서 확인해 보니 역시 내가 갔던 길은, 목적지와는 완전히 정반대 방향이었다.




잘못된 길은 아무리 열심히 가도, 옳은 길로 바뀌지 않는다.

예외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 삶에서 잘못된 길이 옳은 길로 갑자기 바뀌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책에 쓴 수많은 실패이야기들의 뿌리에는 우선 ‘잘못된 선택’이 깔려 있다. 떠나지 말았어야 할 서울에서 도망쳤고, 회사 이름만 보고 첫 회사를 잘못 선택했으며, 아예 전공부터 잘못 고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잘못을 깨달은 게 최근의 일은 아니다. 선택의 순간에서 별로 멀지 않은 시점에, 길어야 몇 년 뒤 '이건 잘못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길을 잃어버린 국민학생 때처럼 나는 그저, 묵묵히 앞으로만 걸었다. 그렇게 걷기만 한 결과가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실패담이 되었다.


유턴을 못했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수십 년 전, 잘못된 길임을 알고도 돌아서지 못했던 내 모습에 그 해답이 있었다.



첫째, 내가 맞을지도 모른다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 남자들이 운전할 땐 여자들보다 더 길을 잘 헤맨다는 얘기가 많았다. 여자들은 길이 좀 애매하면 곧잘 운전석 창문을 내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지만, 남자들은 길을 물어보면 왠지 본인의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하고, 또 반드시 찾을 수 있다고 믿고 자기의 감이나 기억을 의존하다가 더욱더 깊은 미로로 파고드는 경우가 많았다.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운전하던 나도 마찬가지였다. 눈앞에 전혀 모르는 풍경, 의도하지 않은 장면이 펼쳐지는데도 이 길이 틀렸다는 생각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인생의 모든 경로를 샅샅이 살펴보고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아니니까 낯설다고 느낄 뿐이지 결국은 내가 맞을 거라 고집했다.


내가 탄 배는 분명 가라앉고 있었지만 (가라앉는 배에서 뛰어내려야 했다) 가라앉는 게 아닐 수도 있다고 믿었다. 재무성과나 회사를 연이어 떠나는 사람들 등 증거는 차고 넘쳤음에도, 갑판에 넘쳐흐르는 물을 배가 가라앉기 때문이 아니라 잠시 파도가 튄 것이라 우기며 현실을 부정했다. 그 결과는 배와 함께 가라앉는 나 자신을 목도하는 일이었다.

배가 가라앉기 시작하면 빨리 탈출해야 한다


둘째, 불편한 상황을 맞닥뜨리는 것을 겁냈다.


길을 잃어버린 날, 한 10분 정도만 걷다가 이건 아니다 생각하고 공중전화비를 빌렸다면 그날의 일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사소한 해프닝으로 지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그 20원을 빌리는 게 그렇게나 어려웠다. 나는 너무 어렸고 어른들은 무서웠다. 돈 빌려달라고 했다가 혼나거나 면박당할까 봐 걱정을 하기도 했다. 결국은 마주쳐야 할 불편한 순간을 계속 뒤로 미루느라 시간과 노력만 더 허비한 것이다.


나이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서는 필명을 빌어 용기 있게 말하고 있지만 그간 살아오면서 부모님에게든 주위 사람들에게는 “나 실패했으니까 이제 고칠래”라고 말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지금도 어렵긴 하다.


이제와 돌아보면, 부모님은 내가 뭐라고 하든 알아서 잘하라고 응원해 줬을 것이고, 아내는 무엇을 하든 내 등을 밀어줬을 것이다. 직장 동료처럼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들이 날 비웃고 흉보는 것은 전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무것도 아닌 작은 불편함, 작은 부끄러움, 몇 마디 뒷말과 눈총이 두려워서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지 못했다.


돌아서는 발걸음이 용기다


셋째, 이제껏 걸어온 것이 아까웠다.


길을 잃어버린 그날,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지만 집에 도착하고도 남았을 시간만큼 걸었을 땐 길을 잃었음을 확신했다. 하지만 이미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건 너무 멀게 느껴졌다. 심지어 왔던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 생각했다. 왠지 저 편에 있는 골목길로 가면 지름길로 빠져 집을 곧 만날 것 같았다. 혹은 저기 앞 대로에서 왼쪽으로 꺾어서 쭉 가면 결국은 익숙한 집에 가는 길로 이어질 거라 믿었다. 모두 빗나간 생각이었다.


똑똑한 사람은 대학교 입학하고 첫 학기 안에, 나처럼 굼뜬 사람들도 1-2년이면 그 전공이 자기와 잘 맞는지 안 맞는지, 그 전공에 미래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수능도 치르고 대학도 이미 다니고 있는데 수능을 다시 본다는 선택지는 지금까지 온 길을 다시 돌아오는 것과 다름 아니다. 그렇다고 “아냐 지금 돌아가긴 너무 늦었어. 분명 이 안에 답이 있을 거야” 하며 헤매거나 버티면 오히려 돌아가는 것보다 더 긴 시간을 빙빙 돌며 허비하게 된다.


대학교도 그렇고, 전공도 그렇고, 취업이나 연애, 결혼도 마찬가지다. 주식투자에서도 분명한 악재나 구조적인 이슈로 10-20% 이상 하락한 주식을 아깝다고 버리지 못하면 힘들게 모아둔 돈이 다 털리게 된다.


의사결정에서 매몰비용은 무시해야 한다. 머리로는 수차례 배웠지만 정작 내 삶에서는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

이건 아니다고 생각할 때, 핸들을 돌려야 한다


길을 잘못 든 것을 깨달았다면, 그저 핸들을 돌리면 된다. 내 주위에도 늦었다 싶은 시기에 유턴을 함으로써 빠르게 삶을 바로잡은 사람이 많다.


대학교 같은 과 친구 중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갑자기 다시 한의대를 가서 지금은 잘 나가는 한의원을 경영하며 여유롭게 사는 친구도 있고, 1학년을 마친 뒤 수능을 다시 쳐 법대로 진학한 후 지금은 중후한 판사로 자리 잡은 친구도 있다. 회사 입사 동기들 중에도 이건 아니다 싶어 과감히 방향을 틀고 이직하여 잘된 경우도 많고, 손해를 감수하고 집을 판 뒤, 다시 산 집에서 큰 수익을 거둔 동료도 여럿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일 수도 있겠지만 내 주위에 성공했다는 평을 받거나, 본인 스스로 행복하다 자부하는 이들은,


처음부터 정답을 고른 사람이라기보다는, 잘못된 선택을 했지만 돌이킬 수 있었던 사람들이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것을 그토록 무서워하던 나와는 다르게 말이다.




물론 인생은 특정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것이 전부인 운동 경기는 아니다.

잘못된 길이라도 그 길에서만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 있고 좋은 사람들이 있다.

나는 잘못된 선택을 참 많이도 했지만 그 선택이 있었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었고 성장할 수 있었다.

서울을 떠나서는 안 되었지만 그 덕에 아름다운 노을 밑에서 하모니카를 부는 멋진 추억도 얻을 수 있었고, (서울을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

사라질 것들에 너무 많은 것을 걸어서는 안 되었지만, 그랬기에 작은 성공들을 알차게 만들어내며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다. (사라질 것들에 인생을 걸지 말았어야 했다)

서울대가 아니라 의대를 가는 게 여러 모로 맞는 결정이었지만, 일반 직장인의 길을 걸었기에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아이들을 만났다 생각한다. (서울대가 아니라 의대를 가야 했다)

지나고 나니 길을 잘못 든 것마저 인생에서 감사히 여길 일이었다.


잘못된 길에서만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도 있다


다만 내가 조금 더 유연한 사람이었으면, 적절한 시기에 핸들을 꺾을 수 있었더라면 실패를 덜 경험하고 좀 더 나은 삶을 살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간 겪었던 고생을 좀 덜 할 수 있었고, 미래에 대해서도 좀 더 자신감을 갖고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그 길'을 세 시간이나 걸을 필요는 없었다.


인생이라는 운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유턴이다.


유턴은, 잘못된 길로 걸어왔음을 인정하는 용기,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갈 수 있는 용기를 뜻한다.


이 용기가 없었던 것이 내가 실패한 열세 번째 이유다.


(모든 이미지는 Vecteezy.com에서 구입하였습니다. No attribution requ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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