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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없는 술자리를 피해야 했다

2부 - 일상에서의 실패

by 박기주

이십 대 때 스물 하루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연이어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스물두 번째 날, 아침에 일어나니 배가 찢어질 듯 아팠고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내 숨에 밴 술 냄새가 참기 힘들 정도로 역겨웠다. 더 이상은 안 될 것 같아 그날 저녁에 만나기로 한 친구들에게 “몸이 아파서 못 가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어차피 다음 주에도 또 마실 친구들이라 하루쯤 빠져도 아무 문제없었다.

당시 나의 인간관계는 다 이런 식이었다.


한때 나는 제법 큰 마당발이었다.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모임에 몸담았고, 여러 모임을 직접 기획하고 주도하기도 했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쏟아부은 시간도 어마어마했는데, 이런저런 술자리만 해도 수천 시간은 훌쩍 넘을 것이고, 같이 당구장, 노래방, PC방에서 쓴 시간을 합치면 스무 살 이후로만 계산해도 1만 시간은 가볍게 넘길 정도로 정말 많은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당연히 돈도 어마어마하게 썼다.


그런 노력들이 지금 내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이번 글에서는 몇 가지 사례와 함께 인간관계의 허망함을 돌아보고자 한다.


케이스 ① - 첫 회사의 사수 A 대리


그는 엄청난 술고래였다.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마셨는데, 저녁 약속이 없어도 집에서 반주로 소주 두 병은 마셔야 잠을 잘 수 있다고 했다. 신입사원인 나는 하필 그 사람과 함께 일하게 된 탓에 매일같이 술자리에 나가야 했다.

그와의 술자리는 안주보다도 영양가가 없었다. 회사 욕과 회사 동료 험담, 이성 이야기와 어렸을 때 무용담이 주된 화제였는데, 술자리가 거듭되니 들었던 얘기를 또 들어야 했고, 했던 농담에 다시 웃어야 했다. 지겨웠지만 그 흐름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질 못했다.

그러다 그와 부서가 갈라지게 되었는데, 이해관계가 없어지니 그 많던 술자리도 단박에 끊어져버렸다. 이후 회사가 달라진 뒤부터는 간단한 안부 인사조차 주고받지 않았다.

돌아보면 그에게 꼭 잘 보일 필요도 없었다. 인사권자도 아니었고, 내 경력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그 또한 초짜 대리에 불과했다. 그와 친해지면 회사 생활이 좀 더 편해지겠지, 자꾸 거절을 하면 찍혀버리겠지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는 그 정도로 영향력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난 그저 시간낭비를 한 것에 불과했다.


회사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는 ‘인맥’, ‘네트워킹’이라는 멋진 이름으로 포장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중요하진 않다. 철저히 이해관계에 기반하는데, 그 이해관계란 것이 길게 지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 존경할 만하고 배울 게 많은 선후배 동료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경험상 그런 사람들은 회사에 많지 않다.



케이스 ② - 내 오랜 친구, 초등학교 동창 B


B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내 두 칸 뒷자리에 앉았던 친구다.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고, 중학교 때도 자주 만나 놀았다. 내 어머니도 아직 그 친구 이름을 기억할 만큼 정말 오래된 친구다.


그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3년 전이다. 가끔 통화할 때마다 ‘얼굴 한 번 보자’, ‘술 한 잔 하자’로 이야기를 마치지만, 우리의 약속은 좀처럼 지켜지지 않는다. 지방에 살고 있는 그를 만나려면 휴일 하루를 온전히 써야 할 만큼 멀리 있고, 각자 자기 삶이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이런 친구들이 여럿 있다. ‘동창’, ‘동기’, ‘동갑’이라는 수식어로 연결되어 있고, 어렸을 때, 젊었을 때 수없이 많은 시간을 함께 한 친구들 말이다. 이들 대부분은 이제 경조사에서나 한 번씩 만나는 게 고작이다.


추운 겨울 한강에서 어깨동무하며 우리 우정 평생 가자 외치던 친구들, 고3 수험생 때 밤늦게 하굣길을 같이 걸으며 꿈을 이야기하던 친구들, 훈련소까지 바래다주고 100일 휴가 때 보자 어깨를 두드려주던 친구들의 대부분은 내 인생에서 사라졌다. 대입과 군대, 결혼과 출산, 취직과 이직 등 삶에 각 단계를 하나씩 지날 때마다 ‘인생의 체’에 걸러지듯 친구들은 사라져만 갔다.

나이가 들면 서로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더 만나기 힘든 것도 있다. 대학 친구들 중에 굉장히 잘 나가는 녀석들이 있는데, 소문을 듣자 하니 그들끼리만 자주 모인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대학 다닐 때는 그냥 같이 조별 과제 하던 사이였는데, 나이 들어 사회적 간극이 벌어지니 관계의 간극도 함께 벌어지는 것이다.


그 친구들과 보낸 시간이 아깝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내 어린 시절을 함께해 준 친구들이 고맙고, 그들과의 추억은 여전히 날 미소 짓게 한다. 다만, 나이가 드니 친구가 차지하는 ‘인생의 공간’이 점점 좁아지는 게 너무 안타까울 뿐이다.


우정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점점 더 초라해진다. 그 단어가 주는 힘에 비해 인생의 우선순위에서는 점점 밀려나기만 한다. 10대·20대에 가질 수 있었던 뜨거운 우정은 이제 추억 한편에 남아있을 뿐이다.



케이스 ③ - 잠수 타다 갑자기 연락한 대학 동기 C


C는 대학 동기이긴 하나 그렇게 친한 친구는 아니었다. 졸업 후 몇 번 동기모임에서 만나다가, 그 모임 자체가 희미해진 후부터는 십 년 넘게 얼굴 볼 일이 없던 친구다. 그런 그로부터 갑자기 연락이 왔다. 동기 몇 명과 만나기로 했는데 같이 보자는 거다.


그다음 일은 이미 많이 겪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그 모임에서, 혹은 몇 달 뒤 다시 마련될 자리에서 청첩장을 돌릴 테고 결혼식 이후에는 다시 연락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난 알면서도 기쁘게 청첩장을 받으며 진심으로 축하를 건넸고 기꺼운 마음으로 결혼식에 참석했다. 그 이후의 흐름도 예상대로였다. 그 결혼식 날 보내온 ‘고맙다’는 메시지 이후, 그는 수년간 연락이 없다.

C가 특별히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결혼을 앞둔 그는, 아마도 자신의 인간관계를 돌아보며 이제부터라도 주위 사람들을 잘 챙겨야겠다고 다짐하며 연락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결혼하면 배우자에게, 자식에게, 양가 부모님에게 잘하기도 힘들고, 회사일도 버거운데 친구들 하나하나에 신경 쓸 여유는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 결혼식에 참석해 준 친구들 중에 꾸준히 연락을 하고 있는 친구는 몇 명이나 될는지, 돌아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이런 ‘도구적’인 관계, 즉 필요할 때만 잠시 찾아왔다 사라지는 관계는 매우 흔하다.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을 때 친한 척을 하면서 도움을 구했다가 일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돌아서는 동료, 보험가입, 카드신청 등 실적이 필요할 때만 찾아오는 지인 등 필요에 따라 소환됐다가 금세 잊히는 관계 말이다.


물론 인생에는 이런 관계도 있어야 한다. 필요에 의한 관계가 다 나쁘다고 말할 수도 없고, 모든 관계가 영속적일 필요도 없다. 다만 이런 관계들만 겹겹이 쌓이면 인생은 그저 지치고 피곤해진다.



인간관계를 투자라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자라고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관계없이는 사회생활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의 자원, 특히 시간은 매우 한정적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 나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과 보내기에도 인생은 너무 짧다. 그러니 손익을 따져야 한다. 차갑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인간관계 역시 하나의 ‘투자’로 봐야 한다.

어떤 모임이나 어떤 사람들과의 관계가 내 업무나 학업에 도움이 되고 나를 성장시켜 준다면, 뒷일을 생각할 것 없다. 훌륭한 투자라 생각하고 열심히 참석하자.

어떤 모임이 갈 때마다 즐거움을 주고 많이 웃게 해 준다면, 혹은 갈 때마다 나를 위로하고 격려해 주고 힘을 불어넣어 주거나 좋은 추억들을 되살려준다면, 마찬가지다. 안 갈 이유가 없다.


하지만 내 성장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지금 당장 내게 즐거움이나 힘을 주는 것도 아니라면 손절하는 게 낫다. 당장 왕따가 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회사 회식 자리에 가야 들을 수 있는 이야기도 분명 있지만, 대부분 가십거리에 불과하다.


모든 관계를, 내가 시간과 돈을 쓸 만한 가치가 있는지 냉정히 보자. 도구로 사람을 잠깐 써먹고 버리라는 말이 아니다. 좋은 주식에 장기 투자하듯 좋은 모임과 사람을 만나면 진심을 다해 관계에 임하고 나 역시 그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자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인간관계의 생리를 몰랐고 순진했다. 너무도 많은 시간과 돈을 관계에 썼음에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찾지도, 많이 붙잡지도 못했고, 나 역시 많은 이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지 못했다.


지금 내가 죽어도 진심으로 아쉬워할 친구들과 동료들은 많지 않다.


이것이 내가 실패한 열 번째 이유다.


(모든 이미지는 Vecteezy.com에서 구입했습니다. 모두 no attribution requ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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