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에서 손을 떼며210
종이에서 손을 떼며
수많은 입맞춤에도 새는 날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어디를 향해 걸었을까.
잃어버렸을까 잊어버렸을까. 비 오는 날 너를 찾아 백번도 더 뒤를 돌아보았다.
날개 접은 새처럼 바닥에 앉아 자판을 두드렸다. 아스팔트에 껌처럼 불안했다. 이제 더는 숨을 곳 없다. 저 너머가 궁금해 안달이 난 것일까.
요즈음 조바심이 자주 일어났다. 시간을 쪼개도 길이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놈이 손발을 옥죄고 있다. 그래, 갇힌 것이다. 틀림없다.
그동안 괭이 들고 밭에 나가 돌을 골라내고 씨를 뿌려도 썩거나 자취도 없었다.
저쪽으로 가 봐, 네가 원하는 것 있을 거야 말 한사람 없다. 그렇다고 이쪽이라고 말 한 사람도 없다. 보이지 않는 끈에 끌려다녔다. 시도 때도 없이 구멍을 파다 메꾸었다. 이길 저길 걷고 달리다가 갇힌 것이다.
애당초 저 너머의 세계가 궁금하지 않았으면 ‘나이팅게일 새’처럼 밤새 나뭇가지에서 울고 있지 않았을 텐데.
내 옆에 궁금한 것 천지인데 하필 글을 쓰려고 했을까. 수학처럼 정답도 없는데. 종잇장에 베이고 수백 번 넘어져 무릎이 까졌다. 시 한 줄, 거리에 내다 팔려고 애쓰면서 말이다.
더는 돌아보지 말자. 폭풍과 눈보라에도 무심히 살아가는 산짐승처럼 나무처럼 새처럼, 이제는 들판과 언덕과 하늘을 거처 삼아 살고 싶다.
미얀마 소설가 티삿니는 ‘사람들은 정신의 집으로 육체를 갖고 태어난다’ 했다.
나는 그 육체 위에 꿈을 지으려고 동분서주하는 허망함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남들보다 더 놀며 시간을 썩혔다. 그 시간이 거름이 될 리 만무했다.
어렸을 적 섬에 떠 있던 별은 여전히 머리 위에서 반짝이는데 나는 하염없이 가라앉고 있다. 차라리 너의 궤적을 그리지 않았으면 나를 가두는 일도 없었을 텐데. 그러나 종잇장만 보면 꿈틀거리는 손, 손끝은 언제나 생취가 문어있다.
고골 종점 주차장에 질경이가 소렌토 바퀴에 깔려있다. 차가 출발하자 서서히 잎사귀가 일어났다. 생명이란 만만한 게 없다. 살아야겠다는 의지다. 기적이고 경이롭다.
다가가 눌러져 일어나지 못한 이파리 한 장을 바로 세웠다.
남한산성 새파란 하늘 아래 구름 한 점 산꼭대기에 걸려있다, 흰 구름 하나 흘러가 구름 한점 끌고 산 너머로 사라진다.
집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켰다. 날개도 없이 쏟아지는 말, 그러고 보면 내 글 속에 나무와 바람이 있었다. 못난 한 사람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