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함을 예상했지만 평범했고, 당연한 것 같지만 당연하지 않았던 이야기
*다음은 인터뷰어와의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편집자의 편의에 맞춰 일부 편집한 내용임을 알려드립니다.
시각장애인이라고 하면 흔히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전맹을 떠올린다. 하지만 실제로 전맹은 드물고, 대부분은 잔존 시력이 있다. 내가 만난 01년생 대학생 이재석 청년도 그랬다. 자리를 옮기자고 했을 때 망설임 없이 스스로 테이블을 옮겼고, 관심사 역시 평범한 20대 청년답게 틱톡과 인스타그램이었다. 그런데 곧 낯선 장면이 펼쳐졌다. 휴대폰을 얼굴에 매우 가까이 대고,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로 타이핑하는 모습이었다. 익숙한 일상과 낯선 풍경이 겹쳐지는 순간, 나는 이 청년이 더 궁금해졌다.
틱톡에 빠진 평범한 시각장애 대학생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01년생, 대학교 4학년 이재석입니다. 전공은 유튜버학과예요. 원래는 사회복지학과를 3년 다니다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 위해 다시 대학교에 진학하게 됐습니다. 소셜미디어 매체에 관심이 많았는데, 일반적인 미디어콘텐츠학과는 소셜 플랫폼을 피상적으로 접한다고 생각해서 유튜버학과를 선택했어요. 아무래도 스마트폰을 통해 카톡부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지금은 X까지 꾸준히 해오면서 자연스럽게 진로도 이쪽으로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Q. 유튜버학과에서 배우는 것 중 흥미로운 게 있다면요?
크게 두 가지가 있어요. 첫째는 각 분야에서 크리에이터 지망하는 분들이 많다 보니까 다양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자신의 관심 분야를 다른 분의 관심분야랑 합쳐서 새로운 채널이나 사업을 만든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둘째는 요즘 AI 툴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실전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저는 챗GPT를 가장 많이 쓰지만, 영상 제작에는 소라(Sora)도 있고요. 요즘은 구글 노트북 LM에 관심이 많아요. PDF, 웹사이트, 유튜브 같은 소스를 업로드하면 AI가 자동으로 팟캐스트를 생성하거든요. 최근에 저는 제 자신을 문서화해서 AI가 그 내용을 기반으로 콘텐츠를 만들도록 시도하고 있습니다.
Q. 요즘 가장 큰 고민이 궁금해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어떻게 수익화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에요. 아까도 말했듯이 AI를 통해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에 흥미가 크고 그래서 이걸 업으로 삼고 싶어요. 직업활동이라는 게 자아실현이기도 하고 생존도구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디지털 노마드를 꿈꾸지만, 동시에 꿈을 현실화하기 위한 대안을 찾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는 건 제 시력이 좋지 않다 보니, ‘시각장애인이 만드는 콘텐츠’라는 블루오션을 활용해 차별적인 콘텐츠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아까 말한 구글 노트북 LM으로 제 콘텐츠를 제작 중에 있습니다.
평범한데? 열정 있지만 경험이 부족하고, 완성되지 않았지만, 자신만의 꿈을 꾸는... 내가 아는 여느 평범한 대학교 4학년이 할 법한 생각과 말들이었다.
그러나 매주 마주하는 그의 일상은 당연한 작고 큰 불편함이 서려 있었다.
구분할 수 없는 남녀화장실 앞에서
Q. 본인의 시력 상태와 시각장애의 종류를 설명해 주신다면요?
단순히 시각장애인이라고 하면 ‘앞이 차단됐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다양해요. 시각장애는 크게 전맹과 저시력으로 나뉘고, 시력·시야·색각 등 기능 제한 정도에 따라 세부적으로 분류돼요. 전맹은 빛을 거의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 저시력은 일정 수준 이상의 시력과 시야를 보유하고 있지만 일상생활에 제약을 받는 상태예요. 결국 모든 시각장애인들은 각자 다른 시력 상태를 가지고 있다고 보시면 돼요. 저는 작은 글씨 보는 게 힘들고, 초행길에서 버스 번호나 길 표지판을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Q. 일상에서 도움을 받는 인프라가 있나요?
서울시에서 위탁하는 시각장애인용 택시가 있는데, 전용 앱이 있어서 그 부분은 일상적으로 가장 큰 도움이 돼요. 하지만 여전히 어려운 게 많아요. 저는 초행길에서 화장실 가는 게 제일 어렵습니다. 남자·여자 화장실 아이콘이 크거나 색깔이 분명하면 괜찮은데, 작을 경우엔 구분이 힘들어 조심스럽습니다.
Q. 결국 인프라의 부족이 가장 큰 문제일까요?
인프라도 중요하지만, 사실 인식이 더 부족한 것 같아요. 시각장애인이라고 하면 ‘아예 안 보인다’라고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깊게 알려고 하지 않으니 전반적으로 변하지 않는 거죠. 그래서 이런 점들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움을 묻는 게 진짜 배려다
Q. 어떤 부분을 가장 알리고 싶으세요?
시각장애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도움이 필요한 존재는 아니에요. 저는 아니지만, 아예 안 보이시는 분들 중에서도 흰 지팡이를 사용하며 스스로 길을 찾으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분들은 지팡이로 충분히 구분해 다니는데,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지팡이만 보고 다른 방향으로 안내하려는 경우가 있어요. 물론 의도는 좋지만,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 도움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실제로 많은 시각장애인 분들이 바라는 건 ‘도움이 필요하세요?’, ‘도와드릴까요?’라고 먼저 묻는 거예요. 그게 친절한 배려라고 느끼시더라고요.
내가 앉아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곳은 10대의 장기멘토링활동을 지원하는 NGO의 도서관이었다. 그가 어떤 경로로 이곳에서 나와 만나게 되었는지, 실은 들어보지도 못했을 법한 이 프로그램의 멘티였으며 이제는 왜 멘토인지 궁금했다.
멘티에서 멘토로
Q. 러빙핸즈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러빙핸즈 멘티였어요. 어머니가 인터넷을 보시다가 러빙핸즈라는 장기 멘토–멘티 프로그램을 알게 돼 신청했죠. 멘토 수요와 공급 차이 때문에 1년 정도 기다린 후 멘토를 만났는데, 그분과의 시간이 제 인생에 큰 변환점이었던 것 같아요. 특별한 걸 주신 건 아니었지만,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또 멘토의 이야기를 들으며 제 생각과 선택이 바뀌었어요. 지금의 저를 만든 중요한 경험이었습니다.
Q. 지금은 멘토로 활동 중이시죠?
네. 제가 일부러 찾은 건 아니지만, 우연히 시각장애인 학생과 멘토–멘티로 이어지게 됐고, 지금은 고3 멘티와 관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낯가려서 밥만 먹고 헤어지곤 했어요. 한 열 번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익숙함이 편안함이 되고, 어느 순간 멘토–멘티가 아니라 친구가 되더라고요.
처음 멘토가 됐을 때는 막중한 책임감, 부담감을 느꼈는데 막상 만나보니 그런 게 필요 없더라고요. 그냥 친구처럼 만나는 거예요. 친구에게 뭘 해줘야 한다거나 바라지 않잖아요. 좋은 걸 주려 애쓰지 않아도, 함께 하는 시간만으로 서로에게 충분한 것 같아요.
*러빙핸즈의 장기 멘토·멘티 프로그램은 최소 4년 이상 이어지는 관계를 통해 청소년에게 안정적인 성장을 지원합니다. 누군가의 멘토가 되어, 평범한 시간을 나누는 경험을 함께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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