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 않아서 더 오래 남은, 어른친구라는 이름
*다음은 인터뷰어와의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편집자의 편의에 맞춰 일부 편집한 내용임을 알려드립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나이 차이에 눈이 먼저 갔다. 멘티가 아주 어리다고 들었고, 그에 비해 그녀의 나이는 내가 예상한 범위를 훌쩍 넘어서 있었다. 관계를 맺는 데 나이가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차이가 너무 크지는 않은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생각하던 멘토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나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살아온 어른이었지만, 가르치려는 태도보다는 듣는 쪽에 가까웠다.
나는 겁나 좋은 엄마가 될거야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정세인, 한국 나이로 65세입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하고, 25살에 아이 엄마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손녀손자도 있죠. 결혼을 빨리한 편이긴 한데 사실 결혼이 로망이나 낭만에서 비롯된 건 아니었어요. 목표라고 할게 있다면 자식을 정말 잘 키우는 엄마가 되고 싶었어요.
Q. 25살 치고는 흔하지 않은 목표네요?
제가 학교다닐 때는 고등학교를 모두 당연히 가는 시대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만 가도 교회에서 교사를 하라고 했었죠. 고등학교 3학년, 주변의 재촉에 교회 주일학교 교사를 맡으며 정말 다양한 아이들을 보게 되었는데 그때쯔음 부터 “나는 꼭 좋은 엄마가 되어야지”라는 마음이 자리 잡았던 것 같아요. 사실 저는 부모님이 안계셨어요. 부모님에 대한 모델링은 없었지만 다양한 가족과 아이들을 보니 저도 모르게 좋은 엄마가되서 잘 키우고 싶다는 마음은 굴뚝같이 생기더라고요.
근데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니 어느순간 이런생각이 들더라고요. 내 기준에서 ‘잘 키운다’고 생각하며 아이를 내 뜻대로 하는 건 아닐까? 근데 그때는 육아 가이드라인도, ‘산후우울증’ 같은 단어도 없던 시절이었어요. 답답함 속에 답을 찾기 위해 결국 공부를 택했습니다. 세계 아기 선교 신학원에서 배움을 이어가며 유아교육자의 길을 걸었고, 후에는 신학을 하며 영아교육전도사가 되었어요. 엄마가 되고 싶던 친구가 여기까지 오게된게 참 신기하죠.
어른친구가 되는법: 가르치지 않기, 듣기, 같이 있기
Q. 엄마를 꿈꾸다가, 사역자로 그리고 또 지금은 특별한 일을 하고 있다고요?
60세가 넘으면서는 현실적으로 교회 교육전도사 역할을 이어가기 어려워졌습니다. 대신 저는 지금 ‘이야기 할머니’가 되어 도서관과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외어서 말을 해야하니 그런 부분에 부담감은 물론 있지만, 아이들을 보면 그걸 다 잊을만큼 힘이 나요. 5살, 6살, 7살 그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눈빛은 그때가 아니면 못보거든요 (웃음) 어떤 아이는 제게 “할머니 저는 할머니랑 결혼할거에요” 하는게 그게 얼마나 귀엽고 웃겨요?
Q. 지금은 또 50살 차이가 나는 친구가 있으시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지금은 중3인 친구가 있어요. 이름은 지유(가명)고, 나이 차이는 꽤 나는데 오랫동안 이어져 오고 있는 인연이에요. 저희는 어른친구라는 표현을 써요.
Q. 굉장히 낯선단어네요. 어른친구가 뭔가요?
말그대로 어른인 친구지요 (웃음).
청소년과 멘티가 성인이 될 때까지 함께하는 정서지지 멘토링 프로그램이 있는데, 소개받았을 때 “어른친구”라는 키워드에 꽂혔어요 저도. 한 아이의 어른이기도 하면서 친구인거죠. 어떠한 지나친 의무도 정해진 방식도 상관없이, 그저 한 아이의 옆에서 친구로 자리를 지키는 거에요.
저는 멘토링을 하면서 지유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적이 있어요. '러빙핸즈에서 멘토링을 하면서 멘토는 이렇게 해야하고, 이런걸 알려주고 이런거였다면 나는 안했을거야. 나는 그냥 너랑 친구가 되고 싶었어. 그래서 한거야' 라고요
어른 친구라는 표현이 참 좋지 않나요?
Q. 그 친구도 할머니를 어른친구라고 생각하는것 같으세요?
그런거 같아요. 처음에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이제 중3이 됬거든요? 처음에는 자기 스스로 단점이라고 생각한 약점 이런것들을 거짓말로 하던게 있었는데 나중되니까 거짓말인걸 알고도 듣는구나 싶은 순간들이 있었어요. (거짓말이 들켰던 수많은 순간들..ㅎㅎ) 근데 전 늘 똑같았어요. 듣고 호응하고 대답하고…
중3이 되고서부터는 어느순간 이야기하다가 딱 멈춰요. 자기 스스로 말하는 것도 거르기도 하고.. 다 컸다 싶은거죠.
제가 언제는 또 그랬어요. “야~ 중2이 그렇게 무섭대. 북한의 김일성도 중2 무서워서 못 쳐들어온다는데, 중2 되서 잠수타고 나 안보면 나는 너 보고싶어서 어쩌지..” 했는데 지유가 그러더라고요 “제가 다른사람한테는 다 그래도 쌤한테는 안그럴게요”
멘토가 있는 지유가 부러운적 있으세요? 라는 질문을 뒤이어 던졌다. 그녀는 그렇다고 말하다가 다시금 말을 삼키며 그녀의 삶에 멘토는 없었어도 늘 필요한 사람들이 삶에 존재해주는 고마운 인생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큰 결정을 해야할때, 생각이 많을 때 그럴때 옆에 있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건 정말 감사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누가 멘토일까
Q. 지유와 선생님 두 사람 모두 서로에게 배울 점이 있겠어요 (웃음)
지유는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많아요. 그쪽으로 가고싶어하는데 제가 미대를 나왔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실력이 영아니에요..ㅎㅎㅋㅋ 그래서 저는 “지유야 애니메이션을 한다고 해서 다 기안84가 되지 않아” 이런 말을 하는데 안듣죠 뭐 (웃음) 근데 반대로 지유가 제게 알려주는 것들도 많아요.
제가 최근에 당근마켓에 푹 빠졌거든요. 근데 얘는 초등학교때부터 이걸했대요. 아주 전문가에요. 요즘은 그림을 사고팔더라고요?? 그리고 난생 안타본 롤러 스케이트장도 가보고, 자전거도 같이 타보고 ㅋㅋ 저는 남편이랑도 안한걸 얘랑 해요. 전 자전거를 아예 못타는데 2인용 자전거 알죠? 그걸 지유가 앞에타서 운전하고 전 소리만 질러요. 재밌더라고요.
누군가를 변화시키겠다는 다짐으로 시작한 관계는 아니었다. 다만 곁에 있었고, 듣고, 함께 시간을 보냈을 뿐이다. 정세인,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멘토와 멘티의 경계는 점점 흐려지고, 대신 ‘어른인 친구’라는 말이 또렷해졌다. 가르치지 않아도 남는 말들이 있고, 조언하지 않아도 스며드는 태도가 있다는 것. 누군가의 삶에 그런 어른이 한 사람 존재한다는 건, 생각보다 큰 일이라는 걸 이 인터뷰는 조용히 보여준다. 어쩌면 멘토링이란 특별한 무언가를 해내는 일이 아니라, 평범한 시간을 꾸준히 함께 견뎌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러빙핸즈의 장기 멘토·멘티 프로그램은 최소 4년 이상 이어지는 관계를 통해 청소년에게 안정적인 성장을 지원합니다. 누군가의 멘토가 되어, 평범한 시간을 나누는 경험을 함께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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