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니셰린의 밴시>
1920년대 내전이 한창이던 아일랜드의 한 외딴섬, 지루한 일상을 보내던 콜름과 파우릭의 관계에 변화가 생긴다. ‘착하고 재미없는’ 파우릭에게 갑자기 콜름이 절교를 선언한 것이다. 콜름은 남은 생 동안 멍청한 대화로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음악에 집중하며 모차르트처럼 무언가를 남기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보통 사람의 착함을 넘어선 파우릭은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매일 똑같은 시간, 똑같은 자리에서 함께 맥주를 마시며 멍청한 대화를 나누던 사이지만, 콜름은 더 이상 파우릭의 그 대화를 참을 수 없어 극단적으로 ‘절교’를 선언하는데, 관객 입장에서도 그 선언은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싸움 같은 계기 없이 그저 콜름은 내가 너에게 질렸기 때문이라 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파우릭은 사람을 질리게 할 정도의 ‘착함’으로 콜름 주변을 집요하게 맴돌고, 콜름은 파우릭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손가락을 자르는 극단적인 방법을 쓴다. 파우릭이 남들과 다른 ‘착함’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 기괴한 싸움은 다섯 손가락을 모두 자를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둘 사이의 냉전으로 인해 파우릭이 아끼던 당나귀가 죽고 이를 복수하기 위해 파우릭은 콜름의 집에 불을 지르고, 콜름과 어울리던 음대생에게 거짓 부고를 전하는 등 친절함으로 대표되던 그의 순진함은 어린아이나 할법한 악의적인 장난으로 변한다.
이렇듯 이 이야기는 두 남자의 갈등을 다룬 내용이지만, 여성 관객으로서는 조연인 파우릭의 여동생 시오반을 더 주의 깊게 관찰하게 된다. 파우릭이 착하고 재미없다는 평가를 받게 되는 이유는 단적으로 말해 그가 남들보다 더 낮은 지능을 갖고 있기 때문인데, 동네에서 가장 덜떨어졌다고 여겨지는 경관의 아들 도미닉보다 어휘력이 부족하며, 하루 종일 당나귀 똥 이야기를 하거나, 집안에 가축을 들이는 등 남들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 마을 사람들도 시오반이 섬을 떠나 본토로 가면 파우릭은 어떡하나 걱정하는 말을 하는걸로 보아 파우릭이 평범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시오반은 본토에서 도서관 사서 자리를 제안받을 정도로 능력있는 사람이지만, 직장을 잡고 본토에서 살거나 남성과 결혼하여 독립하는 선택을 할 수 없다. 미성숙한 오빠를 돌보느라 엄마와 같은 역할을 하고있기 때문이다. 다 큰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침실에서 침대를 두 개 놓고 개인적인 공간 없이 살아가고, 콜름과 파우릭이 싸웠을 때 대변해서 대화를 나누고 오는 등 시오반은 파우릭의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다. 시오반은 파우릭이라는 부담을 콜름과 일정부분 분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둘의 절교에 직접적으로 반응했던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자신만의 공간도 없는 상황에서 파우릭이 콜름을 만나기 위해 매일 같은 시간에 펍에 가는 일이 시오반에게는 휴식이 된 것이다. 이 일상이 깨지자, 시오반은 오빠를 위해 집안일을 하고 오빠 때문에 떠나지 못하는 자신의 위치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파우릭과 콜름의 극단적인 갈등을 경험하고, 콜름과 대화를 하며 주어진 자리에서 맡은 바를 다 하며 죽기만을 기다리는 삶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이다. 시오반은 파우릭에게 이런 깊은 얘기를 나누려 하지만, 파우릭은 고민을 나누고 의논할 수 없는 오빠이다. 그는 돌봐야 할 동물 때문에 떠나지 못한다고 하고, 동생이 떠나면 자신의 밥은 어떻게 하냐며 바보같지만 지겨운 대답을 한다. 결국 시오반은 콜름과 파우릭의 말도 안 되는 손가락 싸움에 지치게 되고 본토에서 온 제의를 수락해 곧장 떠나게 된다.
이 영화를 통해 여성에게 주어지는 가족 돌봄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영화<러브 액츄얼리>에서도 지체 장애를 가진 오빠 때문에 개인의 삶, 사랑을 포기하게 되는 장면을 찾을 수 있었다.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장애인을 돌보는 책임이 가정 내 여성에게 주어지는 경우가 많기에 비슷한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가정 내 발달장애인 돌봄에 대한 현황은 어떨까? 서울시 성인 발달장애인 돌봄 실태 조사를 보면, 돌봄 제공자의 90.9%가 여성이며 그중 55.9%는 경제활동 중인 것으로 나타난다. 대부분의 발달 장애를 다루는 창작물에서는 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극복하고 성취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장애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한다는 따뜻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 돌봄의 책임이 누구에게 주어지는지 함께 고민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장애를 편견 없이 바라보는 시선도 중요하지만, 어디선가 시오반처럼 지쳐 나가떨어지는 여성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발달장애인의 ‘순수함’을 조명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 옆에서 돌봄의 책임을 지게 되는 사람을 지우지 않는 이야기가 제도를 개선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이니셰린의 밴시>가 각 인물을 현실적이고 입체적으로 그려냈다고 느껴진다. 순수함을 넘어 천진한 악행을 하는 파우릭과 그를 편견 없이 대하다가도 질려하는 콜름, 책임에 허덕이다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난 시오반까지 모두의 입장을 함께 고민해 보면 좋을 것이다.
<참고문헌>
가족 내 돌봄제공자 지원방안 연구: 성인 발달장애인 돌봄을 중심으로
https://www.seoulwomen.or.kr/sfwf/contents/sfwf-policyResearch.do?schM=view&id=24969
글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