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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지 Oct 01. 2023

[검은창너머의세계]내 마음을 울릴 사이렌

넷플릭스 사이렌: 불의 섬



지난 5월 말 공개된 <사이렌: 불의 섬>은 공개와 동시에 세상을 반쯤 뒤집었다. 그리고 7월에 있었던 2회 청룡시리즈어워즈에서 최우수 예능 작품상을 수상하며 프로그램의 흥행을 결과로 입증했다. 사이렌은 생존 전투 서바이벌 예능으로 군인, 경호, 스턴트, 경찰, 소방, 운동선수 6개 직업군에 종사하는 24명의 여성이 출연했다. ‘우정, 노력, 승리’가 담긴 진한 여성 서사물을 만들고자 시작된 이 기획은 <사이렌: 불의 섬>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공개되어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예능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남초 직군의 대표격으로 금녀의 구역으로 여겨졌던 6개의 직업군에 종사하는 출연자들은 사실은 일상에서도 매일 도전과 한계 뛰어넘기를 이어오던 사람들이다. 남초 직군에 종사하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매일 능력에 대한 증명을 요구 받았기 때문이다. “아가씨가 아니고 형사입니다.” 1화에서 경찰팀의 이슬 경사가 카메라를 직시하며 남긴 이 발언은 출연자들의 일상과 그들을 보는 세상의 편견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이렌: 불의 섬>은 직업으로 팀을 나눈 만큼 각 직업군이 갖는 특징을 보는 것도 재미 중 하나였다. 다나까로 소통하고 견디는 것에 통달한 듯한 모습을 보여준 군인팀, 상황이 닥치면 망설임 없이 뛰어드는 소방팀, 무엇보다도 페어플레이를 중요시한 운동팀, 작은 단서도 놓치지 않고 추리하는 경찰팀, 지켜줄 팀이 생겼을 때 활력을 찾았던 경호팀, 부상을 두려워 않고 공격적으로 나섰던 스턴트팀. 모두 다른 개인이지만 하나의 팀으로 묶여있을 때 드러나는 직업적 특성이 보는 재미를 더했다. 의리를 제일 중요시하는 팀, 연합보다는 팀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보는 팀, 연합했으면서도 언젠가 연합팀을 칠 생각을 하는 팀, 자기 팀의 안위보다 연합팀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팀이 공존했다는 게 이 프로그램의 진정한 아름다움이다. 더욱이 여성에게 연대와 배려를 중요한 가치로 들이미는 사회에 살고 있기에 프로그램 속 여자들이 서로를 배려하고 의리를 지키는 모습만 보여주기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연기를 하기도 하고, 웃으며 정정당당한 승부를 시작하기도 하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 점도 중요한 재미 요소였다. 


팀별 특징에서 더 들어가면 독특한 캐릭터들의 향연이었다. 승부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남을 협박하고, 도발하고, 땀 나면 훌러덩 벗고, 허세 부리고, 생존품을 고를 때 소주를 고르고, 도발에 기분 나빠하고, 그럼에도 서로 화이팅을 외치며 땅을 파고 돌을 굴리는 여자들이 있었다. 서로를 얄미워하고 견제하면서도 상대를 얕보지 않는 상태이기에 형성되는 긴장감이었다. 사실 앞서 서술한 특징들이 희귀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미 우리 주변에는 이상하고, 웃기고, 독특한 여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디어 속에서는 다르다. 여성 출연자들은 작은 행동으로도 인성 논란이 일기 일쑤고, 서로 째려보고 웃으며 시비조로 말을 주고받는 여성들보다는 친절한 미소로 예쁜 말을 주고받는 여성들이 더 익숙하다. 그렇기에 사이렌 속 여성들이 더욱 처음 보는 캐릭터로 다가온다.


사이렌의 또 다른 키워드는 ‘몸’이다. <사이렌: 불의 섬>의 애청자라면 다들 ‘여자들의 육체미 대소동’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사이렌: 불의 섬>은 정말 육체미의 장이었고, ‘대소동’이라고 할 만큼 신선한 각도의 연출이었다. <사이렌: 불의 섬>이 보여준 여성의 몸은 기존의 사회가 여성과 여성의 몸을 다루던 방식과는 달랐다. 사회가 여자 옆에 붙여 놓은 곡선, 볼륨, 각선미 등이 아니라 여자들의 기능하는 몸으로서의 아름다움을 보여줬다. 웰컴 미션, 아레나전, 패자부활전, 그리고 소모한 칼로리의 화폐화 등 곳곳에서 몸을 쓸 수밖에 없는 장치를 마련해 뒀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기존 방송에서는 보지 못했던 다양한 방식으로 몸을 쓰는 여자들을 볼 수 있었다. 장작 패는 여자, 불 끄는 여자, 둘이 멱살 잡고 계단을 구르는 여자, 벽 타는 여자, 못질하는 여자, 갯벌에서 돌 굴리는 여자, 발이 푹푹 빠지는 갯벌을 기어서 지나가는 여자, 불 피우는 여자, 나무 타는 여자, 폭우가 쏟아져도 무작정 뛰는 여자…. 정말 신기했던 건 모든 장면을 보면서 그저 즐거웠다는 점이다. 이전까지 미디어에서 여성의 몸을 비출 땐 ‘섹시한’ 이미지로 연출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나 <사이렌: 불의 섬>에서는 여자가 훌러덩 웃통을 벗으며 소리 지르고, 장작을 패며 땀 흘리고, 불을 끈다는 명목으로 물에 한껏 젖어도 기존에 내게 보여졌던 ‘야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즐거운 자극으로 다가왔다. 자유롭게 움직이며 힘쓰는 몸에서 느껴지는 성적 매력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이렌: 불의 섬>에서 출연자들의 신체를 다루는 방식은 기존의 남성 신체를 다루는 방식과 유사하다. 장작패기, 삽질과 같이 개인의 힘과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는 판을 깔아주고 근육과 땀방울을 선명하게 비췄다. 불쾌한 성적 물화 없이도 개인의 신체적 매력을 보여줄 수 있음을 직접 보여준 것이다. 


이제는 다른 직업을 갖고 살아가는 이들도 있지만 한때 자신의 모든 걸 걸고 한계에 부딪혔던 그 경험은 그들에게 고스란히 남아있는 듯했다. 몸으로 부딪치는 일, 계략과 술수를 써 오직 승리만을 도모하는 일, 부족한 자원으로 생존하는 일은 지금까지의 미디어에서는 여성과는 먼 것으로 그려져 왔다. 하지만 <사이렌: 불의 섬>은 여자들이 몸으로 붙고 몸으로 싸우는 판을 벌여 여성들에게 그런 즐거움을 한껏 안겨주었다. 


사이렌, “아름답고 위험한 여자들”. 사이렌의 어원 세이렌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름답지 만 치명적인 마력을 가진 님프로, 노래로 뱃사람들을 홀려 죽음에 이르게 한다. 신화가 이어져 내려오며 주로 남성을 유혹하는 팜프파탈의 여성을 의미했다. <사이렌: 불의 섬>에서는 그 의미를 전복해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존재하고 자신의 한계와 그의 극복에 집중하는 여성을 그려냈다. <사이렌: 불의 섬>이 보여준 여성들의 모습은 세상의 많은 여자들에게 보여지며 함께 새로운 지평으로 넘어갈 기회 를 열어주었다. 남자가 아닌 여자를 향한 사이렌은 매력적인 모습으로 여자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새로운 욕망을, 새로운 가능성을 쥐여준다. 우리의 사이렌과 함께 앞으로 더 많은 사이렌을 만나볼 수 있길 바란다. 



글 땡


*전문은 녹지 57번째 가을호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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