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지 49번째(2015) 봄호 수록
작년 말, ‘싱글세’ 논란이 불거졌다. 보건복지부의 한 고위 관계자가 저출산에 대한 해법으로 독신자에게 세금을 징수하는 싱글세 도입을 주장했다고 전해져 화제가 된 것이다. 물론, 보건복지부는 이에 대해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표현한 말이 와전된 것이라 공식 해명했고, 싱글세와 같은 페널티 부과는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연말정산에서 독신자 및 무자녀 부부의 세액공제가 줄어들게 되면서, 사실상 싱글세가 도입된 것이 아니냐는 입장 또한 제기됐다. 정부가 싱글세 도입을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지 간에, 그것이 도입된 배경과 그 정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싱글세가 도입된 이유는 국가 성장을 가로막는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함이다. 국가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생산을 담당하는 경제활동 인구가 필요한데, 현재의 저출산은 이러한 인구를 잠정적으로 감소시켜 국가성장에 위협이 된다. 따라서 싱글세를 도입함으로써 이러한 인구 성장 및 국가 발전에 기여를 하지 않은 ‘무책임한’ 사람들에게 페널티를 주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싱글세의 도입 배경은 과연 정당한 것일까? 국가 성장에 대한 책임을 국가 차원에서 지지 않고, 개인에게로만 전가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개인들이 결혼 및 출산을 하지 못하는 데에는 다양한 사회적인 맥락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적 맥락을 도외시한 채 오로지 개인에게만 출산의 책임을 떠안기는 국가의 정책적 방향성은 정당하지도, 효용적이지도 못하다. 그렇다면 이제 저출산을 둘러싸고 있는 맥락들을 하나씩 짚어보자.
출산율이 점차 낮아지고 있는 이유는 초혼 연령이 상승하고, 혼인율은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만혼 및 미혼이 저출산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무엇이 젊은 세대의 결혼 및 출산을 무한정 연기시키며 가로막고 있는 것일까? 길어진 교육년수?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대답이다. 이전 시대에 비해 남녀모두 대학진학률이 높아졌고, 최근에는 소위 스펙을 쌓기 위해 휴학도 잦아진 편이다. 이전 세대보다 확실히 교육년수가 늘어났고, 그에 비례하여 결혼 및 출산도 연기되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졸업시기와 결혼 및 출산시기 사이의 공백기간을 설명하지 못한다. 늦춰진 혹은 기피된 혼인과 출산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은 불안정해진 취업시장에서 찾을 수 있다. 이전 시대와 달리 현재의 노동시장은 그 진입구가 좁아졌을 뿐만 아니라, 진입 후에도 정년을 보장받을 수 없어 매우 불안정하다. 외환위기 이전의 한국 경제는 고용과 투자를 활성화하는 생산중심의 산업구조였지만, 신자유주의 사회로 전환되면서 산업구조가 금융 중심으로 변화하여 고용과 투자도 줄어들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금융중심의 경제는 기업의 경영전략에도 반영되어, 기업은 단기간에 최대의 수익을 낼 수 있도록 노동력의 비정규직화를 일상화하였다. 이러한 현실적인 조건에 내몰리게 된 젊은이들에게 결혼과 출산은 그림의 떡과 같은 것일 뿐이다. 당장 자신의 앞길도 책임지지 못 하는 상황에서, 배우자를 만나 내 집을 마련하고 가정을 꾸리는 일은 꿈과 같은 일이다.
어렵게 취업시장에 진입하고, 불안정하지만 결혼생활을 이어 나간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고 해서 결혼이 출산을 보장할 수 있을까? 불행히도 그렇지 못하다. 많은 사람들이 자녀를 갖는 것을 인식적으로 원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실행하지 못한다.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은 성별 및 연령대와 상관없이 2명을 가장 이상적인 자녀수로 뽑았다.2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합계 출산율이 1.2명을 웃도는 이유는 바로 지나치게 높은 자녀교육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자식에게 최대한으로 지원해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심정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자식을 잘 키우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공교육비와 더불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사교육비, 나중에는 중등교육비에 비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대학등록금까지. 그렇지 않아도 부모는 불안정한 노동시장에서 경제적인 생존게임을 이어나가고 있는데, 하늘을 치솟는 교육비는 그러한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켜 버린다. 대한민국 부모 중 상당한 비율인 87.31%가 교육비 지출이 가계에 부담이 된다고 답한 바 있다. 섣불리 아이를 낳을 수 없는 하나의 이유다.
또 다른 이유에서 출산이 꺼려질 수 있다. 바로 여성이 출산으로 인해 경력 단절을 경험하거나, 일과 가정 모두를 짊어져야 하는 이중 부담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과는 달리 여성들의 교육수준도 높아지고, 노동시장 참여도 활발해졌다. 또한 일하는 여성의 92.5%가 일을 함으로써 삶의 보람과 활력을 느낀다고 답했다. 하지만 오로지 여성에게만 전적으로 출산 및 양육의 책임을 물어 여성들이 삶의 보람이 되는 일을 포기해야만 한다면, 출산은 애초부터 기피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운 좋게 경력단절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여성들은 일과 가정 모두에 충실해야 하는 이중부담을 지게 된다. 여전히 사회에는 ‘가사 및 육아는 여성의 몫, 일은 남성의 몫’이라는 인식이 뿌리깊게 박혀 있어서, 일하는 여성이 가사와 육아에도 헌신하기를 기대하는 한편, 남성은 그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실정이다. 맞벌이가구 중 남성의 가사 및 육아시간은 하루 평균 37분인 반면, 여성은 5배가 넘는 200분으로 조사됐다. 결국, 남성과 여성 모두가 일과 가정에 참여하는 ‘일-가정 양립’의 사회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제도가 마련되지 않는 이상, 여성이 출산을 결심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결혼 및 출산은 모든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개인만의 선택이 아닌, 수많은 조건들 속에 뿌리박고 있는 지극히 사회적인 선택이다. 저출산 문제는 경제적인 상황, 사회적인 인식 및 제도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서 형성된 사회적인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출산에 대한 책임을 오로지 개인에게만 전가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진정으로 국가가 출산을 통해 국가 성장을 꾀하고자 한다면, 국가적 차원에서 저출산을 양산해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논의와 움직임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우린 정말 싱글이어서 죄송해야 하는 것일까? 비난의 화살은 싱글 그 자체가 아니라, 싱글을 양산해 낸 사회적 조건을 향해야 마땅한 것이다.
글 해독주스
녹지 49번째(2015) 봄호 수록
작년인 2022년, 대한민국의 가임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의 수인 합계출산율은 역대 최저치인 0.78명을 기록했다. 위 글이 쓰일 당시인 2015년의 합계출산율은 1.24명으로, 출생률이 마지막으로 증가하였던 해로 꼽힌다. 고작 7년 사이에 대한민국은 비단 OECD만의 꼴찌에서 벗어나 세계적인 최저 수준의 합계출산율 수치를 단기간에 기록한 기념비적인 나라로 자리매김했다. 정부는 지난 15년간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 약 280조 원 가량을 쏟아부었지만, 목표했던 출생률 반등은커녕 비출산 경향만이 점점 더 공고해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글이 쓰인 이듬해인 2016년 말에는 임신할 수 있는 가임기(15~49세) 여성이 어느 지역에 몇 명 살고 있는지를 표시한 ‘대한민국 출산지도’가 공개되어 대규모적인 빈축을 샀다. 2017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종욱 연구원은 여성의 교육 수준과 소득 수준 향상으로 인해 하향 선택 결혼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저출산의 원인이기에, 이를 개선하기 위한 문화 콘텐츠 개발을 ‘무해한 음모’ 수준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2020년 국토교통부는 신혼부부의 기준을 ‘여성 배우자의 연령이 만 49세 이하인 가구’로 설정했으며, 이때 남성의 연령 제한은 두지 않았다. ‘고용 성평등’을 저출산 대책의 주요 의제로 설정했던 문재인 정부와는 달리,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성평등’에 대한 논의는 저출산 대책에서 아예 자취를 감췄다. 2022년 10월 정부 조직개편안에는 보건복지부 산하에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를 신설하고, 여성가족부 업무 대부분을 이곳에 이관한다는 방안이 담겼다. 지난 9월 12일, 가출해 다른 가정을 꾸린 남편에게 양육비를 요구하며 지속적으로 연락한 여성에게 스토킹 혐의로 징역 8개월의 선고가 내려졌다. 9월 15일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김행은 여성의 임신중지권에 대해 ‘생명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며,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그럴듯한 미사여구에 감춰진 ‘낙태’(임신중지)의 현주소를 들여다보겠다’고 밝혔다. 또한 김 후보자는 과거 ‘필리핀에서는 한국인 남성이 필리핀 여성을 취해 낳은 코피노조차도 낙태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강간 등으로 인해 원치 않는 출산을 해야 하는 상황조차도 사회적으로 받아들이는 관용적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여성은 단지 아기를 담는 인큐베이터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던 어떤 기원전의 철학자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가장 놀라운 지점은 이러한 모멸이 너무나 일상적으로 되풀이된 나머지 어느덧 전혀 놀랍지 않은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가 출산의 주체에 대해 말하고자 할 때, 대한민국의 여성들은 선택권을 가진 인간이 아니라 그저 ‘몸’으로서, 출산 정책의 수단으로서만 치부되는 기조가 항상 동일하게 유지되어 왔기 때문이다. 위 글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 한국 저출산 문제의 원인은 아이를 안 낳아서가 아니라 못 낳아서이다. 유엔인구기금이 발표한 ‘2023 세계인구보고서’는 국가가 목표 출산율을 숫자로 결정해 놓은 채 출산을 독려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출산은 결국 개인의 선택이기에, 아이를 낳고 싶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선하여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정부의 대체적인 저출산 정책을 보면, ‘아이 낳고 싶은 사회 만들기’를 실현하기보다는 출산에 대한 죄책감과 불이익으로 여성을 윽박질러 ‘출산은 개인의 선택’이라는 명제 부분을 바꾸는 편이 더 쉽겠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의 낮은 출생률에 대해 분석한 해외의 각종 보고서와 연구가 공통적으로 말하는 근본 원인은 ‘성차별적 사회구조’다. 높은 주거비와 교육비를 저출생 원인으로 꼽는 한국 정부와는 달리, 소득 대비 주거비와 교육비 지출이 한국보다 많으면서 출생률이 더 높은 나라의 선례는 이미 다수 존재한다. 한국의 저출생이 경제적 이유에만 의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이는 오로지 여성에게만 부담되는 가사노동과 양육의 부담, 경력 단절이라는 위험부담이 여성을 결혼과 출산이라는 나쁜 선택을 기피하도록 종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므로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저출생 해결책 또한 성평등 정책과 그 결을 같이하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양육 부담을 여성에게 돌리는 노동환경과 정상 가족에 대한 고정관념을 고쳐, 한국 여성이 온전히 부담해야 하는 결혼과 출산의 기회비용을 낮추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리고 저출산이 나쁘다는 단순한 인식에서 벗어나, 심각한 저출산은 개인의 출산권이 침해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지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성의 기본권이 보장되지 않는 나라에서 여성의 출산권만 쏙 빼내 보장한다는 말은 성립될 수 없는 말장난이다. 결혼과 출산을 통한 미래의 행복을 계획할 여지가 없는 곳에서는 어떤 여성도 출산이라는 나쁜 거래에 자발적으로 나서려 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교과서에는 여전히 저출생의 원인이 여성의 사회 진출이라는 말이 번듯이 쓰여 있다. 마치 식민지 독립으로 인해 제국주의 국가 재정이 파탄 났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문구다. 여성들이 남성에게 종속된 삶에서 벗어나 하나의 독립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사회 문제를 야기시키는 원인이 된다면, 그런 착취적 수단으로밖에 유지될 수 없는 사회가 향할 종착지는 파멸뿐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편이 공동선의 측면에서 되레 나은 선택일 수 있다. 더욱이 레즈비언 부부의 출산 소식에 실시간으로 가해지는 혐오 발언들은, 이 나라가 아직 멸망보다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인간을 더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여성들도 그 절실하지 못한 요청에 굳이 응답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글 J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