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지 38번째(2004) 수록
나는 밤에 내가 무엇인가를 먹고 싶어할 때나, 또 스트레스를 받았거나 우울할 때 평소보다 더 많이 먹는 나를 보며 일종의 죄책감을 느끼곤 했다. 무엇이 정상이냐고 물었다. 이 사회에서 이러는 내가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그래, 정상은 없다. 있다면 그것은 남성들에게만 존재할 뿐. 모든 여성들은 다들 조금씩 나와 같은 느낌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이 억울했다. 이건 그야말로 내가 단지 ‘여성이기 때문에’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였다.
언제나 여성들은 남들의 기준, 남들의 눈에 맞추기 위해 ― 즉, 자신을 내보이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려 애쓴다. 그녀들은 먹는 것과 그것의 조절 혹은 선택을 통해 평가되어지고 스스로를 평가한다. 나는 그것을 느끼게 되었고, 왜 그래야 하는지 답답했다. 그리고 그 대상이 왜 음식인지도 궁금해졌다. 여성들에게 있어 ‘먹는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일까. ‘음식’은 정말 그녀에게 행복이고, 살아있는 시간이 되는걸까. 먹지 않는 시간은 시간이 아니다. (『황석영의 맛과 추억』, 황석영, 디자인 하우스, 2003)
여성, 그녀들의 욕망이 채워짐이 허락되지 않는, 다른 선택이 허락되지 않는 사회에서 그들은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먹을 것으로 채우며 무엇을 먹을지 선택하는 것으로 자신의 인생을 선택한다고 믿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에겐 다른 선택은 없는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이렇게 음식에 집착하는 것이라고.
채운다. 우리는 음식으로 우리의 속을 채운다. 따뜻하고 맛이 있는 그것—음식과 채운다는 행위는 기분 좋음을 동반한다. 마찬가지로 욕망은 채워지는 존재라는 점에서 음식과 비슷하다. 흔히 먹는 것은 욕망과 상관관계를 갖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만화영화에 나오는 탐욕스러운 악당은 언제나 ‘돼지’ 처럼 뚱뚱한 몸과 불룩한 배를 가진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수면욕 · 식욕 · 성욕을 가지며 이것이 채워져야 더 상위의 욕구를 원하게 된다. 그러나 이 말은 남성과 여성에게 다르게 적용된다.
남성의 식욕과 성욕은 통제되지 않기 때문에 남성의 식욕과 성욕은 연관될 필요가 없고, 관련된다 하더라도 정치적 의미가 없다. 남성의 성욕은 ‘원래’ 무제한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다시 말해, 경계가 없는데 무슨 정치적 의미가 발생하겠는가. 하지만 식욕, 성욕, 수면욕이 인간의 3대 생존 조건이라는 말은 (젊은/이성애/비장애)남성에게만 해당한다. 여성에게 성욕과 식욕은 생존의 기본 조건이 아니라 과도한 욕망으로 간주된다. 남자에게는 당연하게 주어진 권리가 여성에게는 구걸하고 설득하고 투쟁으로 쟁취해야 할 정치적 목표, 욕망인 것이다. 정희진, 「음식과 섹스 그리고 젠더」(www.unninet.co.kr)
여성에게는 식욕이 과도한 욕망이 된다. 그런 마당에 그녀의 다른 욕구들은 채워질 수 있었을까. 여성의 욕망은 오랫동안 우리사회에서 (만약 그녀가 그것을 가진다고 인정된다면) 위험한 존재로 간주되었다. 여성들이 가지는 성욕, 표현과 창조의 욕구, 원하는 사랑과 더 나은 생활과 사회적 지위에 대한 욕구, 욕망들… 남자들의 것이었다면 ‘야심’이나 ‘큰 그릇’이라 인정받았을 그것들은 그러나, 여성의 것이었기에 부정한 것이었고 천하며 더러운 것, 혹은 파괴적이며 히스테리컬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섭식장애 · 식이장애 · 먹기장애라고도 한다. 체중증가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이나 마른 몸매에 대한 강한 욕구, 다이어트에 대한 과도한 집착, 계속 굶거나 약을 먹는 부적절한 체중조절 행위 등의 극단적 다이어트에 비정상적 집착을 보이는 질환이다. 또한 불규칙한 식사 습관, 폭식, 음식에 대한 조절감의 상실, 음식에 대한 과도한 집착, 영양결핍 상태에도 불구하고 음식 섭취를 거부하는 등 주로 무리한 다이어트에 의하여 촉발되는 식사 행동상의 장애를 그 특징으로 한다. 크게 거식증, 폭식증, 습관적 과식증으로 나눌 수 있다. (네이버 백과사전)
이렇게 부정적으로 여겨져 왔던 여성들의 욕구, 채워지지 못했던 아니 채워짐이 금지되었던 그녀들의 욕구와 욕망들은 현대사회에선 식이장애―더욱 과도한 혹은 왜소한 식욕으로―와 음식에 대한 집착이나 선택을 통해 나타난다. 식이장애는 여남 환자 비율이 10대 1 정도로 여성에게 압도적으로 많다. 거식증과 폭식증의 비율은 폭식증이 2~4배정도 더 많다. 미국 통계에 따르면 전체 여성가운데 약 0.5~3.7%가 신경성 식욕부진증(거식증)을, 1.1~4.2%가 대식증(폭식증)을 겪고 있다. (한국일보, 2003년 12월13일자)
어떤 여성에게 그것은 강박적인 다이어트 관념으로 과도하게 먹은 이후에 구토를 반복하는 폭식증으로, 또는 식욕부진이 생겨 먹지 못하거나 소화를 시키지 못하는 거식증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렇게 심각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현대 여성들은 음식과 자신의 몸과의 끊임없는 싸움을 하며 음식에 ‘집착’하거나 신경써서 ‘선택’한다. 어떤 여성은 다이어트를 위해 오늘의 점심을 저 칼로리 음식으로 ‘선택’하고, 자신의 분노나 결핍의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초콜릿이나 단백질, 지방 덩어리들에 ‘집착’한다. 또 매 순간 지금 이 음식을 먹느냐, 먹지 않느냐를 고민한다.
여성들의 몸은 여성들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언제나 사회적 관심사였고, 사회적 분위기에 맞추어지는 몸이었다. 얼짱에 이어 불어닥친 몸짱의 바람은 미혼여성들뿐만 아니라 기혼여성들에게까지 불어닥쳐 운동, 즉 몸매관리를 하지 않는 여성은 실패하고 마치 자기관리에 관심 없는 여자라는 시선을 보내게 하고 있다. 얼짱과 몸짱이 되기 위해 뷰티산업에 몰리는 돈이 1년이면 7조원에 육박한다 중앙일보 2004년 1월 26일자 고 하고, 다이어트에 관련된 서적과 음식과 약품은 우리 주위에 차고 넘친다. 언제나 모든 여성의 이상인 TV 속의 모델들은 당신의 ‘평균적 몸무게’ 보다 무려 23%나 덜 나간다. 아이들은 지금도 인간의 것으로 환산하면 170 cm 키에 몸무게 45kg인 바비 인형을 가지고 논다.
왜냐하면 현대사회에서 살찐 것은 추하고 건강에도 해로우며 무가치하고 멍청하고 무원칙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몸 숭배와 광기』발트라우트 포슈, 여성신문사, 2001, p.67 그리고 이것은 ‘여성’에게 더욱 엄격히 적용된다.
이 ‘너무 뚱뚱하다’는 평가는 대체 왜 필요한 것일까? 그건 아마도 여성들에게 몸매나 신경 쓰고 다른 생각이나 활동을 멀리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밥을 굶고 조금만 살이 쪄도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은 얼마든지 쉽게 조종할 수가 있다. 게다가 자기 몸을 경멸하는 여성이라면, 불평도 하지 않고 죽어지낼 것이 아니겠는가? “여성의 몸매, 특히 여윈 몸이 아름답다는 규정은 여성미에 집착한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여성의 복종을 노린 일일 뿐이다.” 위의 책, p.68
나 또한 요즘도 가끔씩 밤에 무언가를 열심히 먹어대야만 기분이 풀리고, 다이어트의 압박으로 굶으려는 일도(그리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있다. 나는 많은 여성들이 식이 장애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심한 경우는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항상 먹을 것을 두고 걱정한다든지 다이어트 중독에라도 걸린 양 항상 운동과 음식에 신경 쓰는 모습들을 보아왔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보통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물론 식이장애를 가지고 있는 여성들도 있다. 그러나 내 주위의 사람들, ‘이거 먹으면 살찔텐데’ ‘먹을까, 참을까’ 라고 고민하는 보통의 그녀들과 나를 생각했다. 나는 내가 특별히 이상한 여자였기 때문에 때때로 폭식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잠들기 전에 달콤하고 부드러운 케익과 슈크림들을 떠올렸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저 불가능해 보이는 브라운관 속의 팔등신 미녀들이 모든 여성의 기준이 되는 사회에 살고 있는, 평범한 한 여성일 뿐이다.
그러나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나 역시도 일종의 이상식욕 식욕과 공복감은 다른 것이라고 하는데, 공복감은 배가 고프다는 신호로 ‘언제’ 먹을 수 있을까에 대한 생리적 반응이고, 천천히 음식을 씹어서 20분 이상 먹게 되면 포만감이 온다고 한다. 하지만 식욕은 한밤에 족발이나 피자 등 특정 음식을 먹고 싶은 욕구, 즉 ‘무엇’을 먹을까에 대한 심리적인 반응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술이 먹고 싶고 우울할 때 달콤한 케이크가 생각나는 것이 이러한 것이라고 한다. 을 어느정도 가지고 있고, 모든 여성들도 그러하리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그것 때문이었다. 그리고 당신이 지금 ‘혹시 내가?’ 라고 의심하고 있다면 천천히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자신이 무엇 때문에 배고프다는 느낌을 갖는 것인지, 지금 느끼는 이 느낌이 실제로 배고픔인지, 아니면 분노인지, 결핍된 애정인지, 불안감인지 하는 것을 말이다. 한 예로 내가 밤마다 열심히 먹어댔던 음식들은 일정한 종류였는데, 그 선택된 음식들은 내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주로 딱딱한 종류의 것들, 이를테면 스프를 뿌리지 않은 생 라면이나 과자종류를 먹곤 했었는데, 어느 날 식이 장애에 관한 책을 통해 그것들은 절망감이나 분노를 표현하고픈 욕구와 연결이 된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바로 며칠 전을 떠올려봐도 과자를 먹으며 일부러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던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바로 언어나 그 밖의 것들로 표현해내지 못한 내 안의 분노가 이상식욕을 불렀다는 것을 말이다.
다이어트의 압박으로 지치도록 운동을 하던, 칼로리 바만 먹고 하루를 버티던, 실은 그것은 나의 선택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쩌면 배양액 속의 미생물처럼 길러지고 있거나 외계 생물체처럼 보이는 것들로부터 조종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미래의 오늘도 브라운관 속의 ‘그녀’는 나의 욕망을 자극한다. 진실한 내면의 나를 바라보지도, 내 안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할 만큼 ‘그녀’의 미소는 눈부시다. 나는 자극을 받아 오늘도 저녁 굶기를 결심한다. 이것은 어느 날의 내 일상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그저 이 말을 해주고 싶었다. 물론 내가 하는 말이 아닌, 책에서 옮긴 말이긴 하지만 말이다. 음식의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곧 자기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글 료
녹지 38번째(2004) 수록
최근 5년간 10대 여성의 거식증이 97.5% 증가했다. 2004년에 비해 섭식장애는 만연해졌고, 연령대는 낮아졌으며 남성 환자도 크게 늘었다. 2021년 기준 한국의 섭식장애 환자는 1만 명이 넘는데, 실제로는 155만 명으로 추정된다. 섭식 장애 유병률은 인구의 3%에 이르고 동아시아는 더 많다는 게 입증된 사실이다. 식이장애 환자 10명 중 8명가량이 여성이다. 많은 여성이 음식을 먹을 때 불편한 마음, 거부감을 느끼며 섭식장애의 경계에 서 있다.
식이장애는 어떻게 여성의 질병이 되었을까. 인간은 죽음과 부패, 오염을 연상시키는 동물적인 것에 대해 원초적인 두려움과 혐오를 느낀다. 식욕, 성욕, 체액, 털과 같은 동물적인 것들은 혐오의 대상이다. 이러한 혐오감은 백인/이성애자/남성보다 흑인/퀴어/여성에게 더 쉽게 투사된다. 인간은 특정 집단에 혐오를 투사하고 지배해 자신들은 동물적이고 더럽고 성적이며 냄새가 나는 대신 깨끗하고 순수하다고 여겨왔다. 소수자들은 더럽고 혐오적인 존재가 되었고, 그들의 욕구들은 부정한 것으로 여겨졌다. 여성은 특히 그들의 몸이 ‘뚱뚱하고 더러운’ 혐오적인 몸이 되지 않도록 요구받아왔다.
여성의 몸은 사회에 의해 평가되며 통제되고, 여성들은 멸균되고 아름답기 위해 노력한다. 미디어에서는 예쁘고 마른 연예인과 아이돌이 나오면서 여성의 선망 대상이 된다. 많은 여성이 평소에 다이어트에 대해 걱정하며, 음식을 먹을 때마다 살이 찔 것을 걱정한다. 인터넷에서 ‘프아’로 불리는 프로아나들은 프아 계정을 운영하며 서로 살찌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이야기하며 굶기를 독려한다. 마른 연예인들의 사진을 게시해 “이걸 보고도 밥이 넘어가냐”고 말하거나, “배고플 땐 물 500ml 마시고 참기” 등 굶는 방법을 공유하기도 한다. SNS의 특성상 ‘프아’들의 게시물은 많은 여성에게 보이고 영향을 준다.
다이어트를 하는 여성이 많은 만큼, 식이 장애를 ‘젊은 여성들의 다이어트 강박’, 혹은 ‘죽기 위해 굶고 토하는’, ‘의지로 금방 나을 수 있는’ 질환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식이 장애는 단순히 마른 몸을 원해서, 우울해서 굶는 납작한 질환이 아니다. 식이 장애는 여성의 여러 욕구와 경험, 기질, 사회적 압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나는 증상들이며, 그 경험은 개인마다 다르다. 식이 장애는 억제되었던 욕구의 표현이기도 하다. 여성의 몸은 여성의 것이 아니었다. 여성들에게 있어 자기 몸을 통제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먹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부정하다고 여겨진 여성의 욕구들. 채워짐이 금지되었던 여성의 욕구들. 결핍과 불안, 분노, 자신의 자율성을 음식과 몸에 대한 ‘선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나도 10대 시절 섭식장애를 앓았다. 처음에는 먹는 양이 크게 줄다가 급식실에 갈 수 없게 되었다. 음식을 씹어 삼키기 싫어 액체류만을 마셨다. 배고픔이 일상이 되고 습관적으로 굶으면서 “배가 안 고프다”며 식사를 거부했다. 이후 알 수 없는 허기를 느끼면 토할 때까지 먹기도 했다. 몇 년간 앓아온 섭식장애는 나를 크게 구성하고 지금까지 영향을 주지만, 내 자신도 그때 왜 그렇게 굶으려고/먹으려고 했는지 이유를 찾기 어렵다. 이러한 경험들은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식이 장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시스템의 문제이다.
개인의 섭식장애는 복합적이고 스스로 치유되기 어렵다. 음식을 선택하는 것은 내가 무엇을 먹고, 어떤 존재가 될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무엇을 먹을지 생각하고, 재료를 준비해 요리하고, 맛을 보고 배를 채우고 다 먹은 식기를 채우는 일련의 행위의 실천은 나를 정신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구성한다는 점에서 숭고하다. 음식을 선택하는 것은 나를 생각하는 것이다. 음식 한 그릇을 받아들이는 것은 여러가지로 복잡하게 꼬인 나의 매듭을 내 손으로 직접 풀어보는 기회일 것이다.
※ 현재 필자는 주변인의 도움을 받아 섭식장애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 섭식장애, 특히 거식증은 정신질환 중에서도 치사율이 가장 높으며, 스스로 문제라 의식하기 어렵고 다른 신체적, 정신적 질환을 동반하기 때문에 꼭 치료해야 한다. 정도와 관계없이 자신의 ‘먹기’에 문제가 있다고 느껴지면 꼭 전문가의 도움을 받자.
글 새싹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