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는 브랜드는 ‘스토리의 구조’를 가진다.
토스 송금 화면에서 "어디로 돈을 보낼까요?"라는 문구를 처음 본 순간, 이것이 단순한 UI가 아니라 대화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출금 계좌", "입금 계좌"가 아니라 "~에서", "~로"라고 표현한 이 한 문장이 은행 송금의 복잡함을 일상 대화로 바꿔놓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경험을 시나리오로 설계한다는 의미입니다.
브랜드 접점은 개별 화면의 나열이 아닙니다. 각 장면은 사용자 여정이라는 이야기의 한 챕터이고, 모든 접점은 감정의 곡선을 따라 연결되어야 합니다. 이전 컬럼에서 다룬 뇌의 반응 구조—호기심, 저항, 완결—는 단순한 이론이 아닙니다. 이것은 온보딩부터 재방문까지, 모든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는 실전 프레임입니다.
신경과학자 앤토니오 다마지오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의 뇌는 새로운 경험을 접했을 때 3초 이내에 "계속할지 떠날지"를 본능적으로 판단합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배외측 전전두피질(dlPFC)은 예측 모델을 돌리고, 편도체는 위험 신호를 스캔합니다.
온보딩 화면이 너무 많은 정보를 쏟아내면? 뇌는 인지 부하(cognitive load)를 느끼고 이탈합니다. 반대로 너무 평범하면? 도파민 시스템이 반응하지 않아 기억되지 않습니다.
필요한 것은 호기심의 최소 유효 자극입니다.
카카오페이의 핵심 기능인 송금은 카카오톡 채팅창에서 은행계좌번호를 터치하면 계좌번호임을 자동으로 인식해서 카카오페이의 송금 기능으로 바로 연결됩니다. 카카오톡 친구 프로필 화면에서 송금 아이콘을 클릭하면 바로 친구에게 송금을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카카오톡 하위 서비스로서 카카오페이의 송금 기능은 기존 카카오톡의 채팅과 프로필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카카오톡 사용자라면 누구에게나 편리하면서 쾌적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첫 접점에서 "회원가입"이나 "기능 설명"이 아니라 사용자가 원하는 행동으로 바로 연결되는 구조입니다. 맥락이 끊기지 않는 순간, 호기심은 행동으로 전환됩니다.
역설적이지만, 클릭 한 번에 끝나는 결제는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뇌의 도파민 시스템은 ‘예측 오류’와 ‘문제 해결’에 반응합니다. 신경경제학자 폴 글림셔의 실험에 따르면, 적당한 난이도의 도전을 극복했을 때 분비되는 도파민이 경험을 장기기억으로 전환시키는 핵심 신호입니다.
단, 여기서 말하는 ‘저항’은 불편함이 아닙니다. 성취감을 남기는 최소한의 리듬입니다.
무신사는 브랜드·상품 탐색부터 상세 페이지, 장바구니, 결제까지의 여정을 매끄럽게 이어지는 하나의 흐름으로 설계했습니다. 장바구니 화면을 좌우로 분할해 브랜드별로 정리하고, 동시에 전체 금액과 혜택 정보를 함께 보여줍니다. 이로써 사용자는 페이지를 오가며 ‘확인해야 할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습니다.
무신사는 불필요한 절차적 저항을 제거하고, 사용자가 ‘무엇을 살 것인가’라는 본질적 선택의 긴장에만 집중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 ‘좋은 저항’이 남은 구조에서 사용자는 스스로의 선택을 명확히 인지하고, 그 과정이 하나의 기억 가능한 경험 곡선으로 전환됩니다. 개인화 추천 영역의 구매 전환율은 약 3배 상승했고, 거래액은 전년 대비 308% 이상 증가했습니다. 불필요한 저항을 없애고, 의미 있는 저항만 남긴 흐름이 사용자의 결정을 빠르고도 강하게 각인시킨 것입니다.
피크-엔드 룰을 다시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의 실험에서, 사람들은 7분간의 불쾌한 시술과 8분간의 시술(마지막 1분은 약간 덜 불쾌함)을 비교할 때 후자를 "덜 고통스러웠다"고 기억했습니다. 전체 시간이 아니라 절정과 끝이 경험을 규정합니다.
브랜드에게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구매 후 3분이 다음 구매를 결정합니다.
토스는 최소한의 정보만 화면에 담았습니다. 컬러나 글자 크기 등 디자인 시스템이 잘 지켜져서 매우 정리되어 보였습니다. '도전, 아껴 쓰기' 부분이나 '거래 횟수 top 5'를 아이콘과 인포그래픽 디자인으로 보여줌으로써 번거로운 가계 관리를 심리적으로 간편하게 느낄 수 있게 했습니다.
숫자와 그래프만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하고 있나?"라는 심리적 질문에 답하는 순간, 금융 앱은 일상의 동반자가 됩니다.
이제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사용자가 되어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경험하면서 이렇게 물어보세요:
"앱을 열었을 때 뭔가 기대되는가?"
"메뉴를 찾을 때 설레는가, 답답한가?"
"결제 버튼을 누르는 순간 '성취감'이 드는가?"
"완료 화면을 보고 웃음이 나오는가?"
"내일도 다시 쓰고 싶은가?"
만약 모든 질문에 '그저 그렇다'라고 답한다면? → 당신의 서비스는 평범합니다. 기억되지 않습니다.
최소 2~3번은 '오!' 하는 순간이 있어야 합니다.
카카오뱅크의 기능들이 시중 은행 앱과 기능은 같지만 더 쉽고 간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사용자 중심의 간편한 경험 설계 때문입니다.
드라마가 그렇듯, 경험에도 작은 긴장과 짧은 해소, 다시 상승하는 패턴이 필요합니다.
모든 순간을 완벽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대신 하나의 'Wow' 순간과 매끄러운 마무리에 집중하세요.
에어비앤비 호스트 프로필은 단정한 카드 형식이지만, 열리는 방식은 대화에 가깝습니다. 사용자는 정보를 탐색하는 대신, 누군가의 이야기에 들어가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 2초의 전환이 ‘숙소 정보 확인’을 ‘호스트와의 첫 만남’으로 바꿔놓습니다.
영화 각본을 쓸 때 작가는 이렇게 질문합니다.
주인공(사용자)이 이 장면에서 무엇을 원하는가?
무엇이 그것을 방해하는가?
어떻게 해결되는가?
다음 장면으로 어떻게 연결되는가?
브랜드 경험도 마찬가지입니다.
온보딩에서 사용자는 "이게 나한테 맞나?"를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 3초 안에 명확한 가치를 보여주세요.
구매 과정에서 사용자는 "실수하면 어쩌지?"를 걱정합니다. → 확인 단계를 넣어 안전감을 주세요.
완료 순간에 사용자는 "내가 잘한 건가?"를 물어봅니다. → 축하와 인정의 신호를 주세요.
결국 브랜드가 설계하는 것은 기능의 배치가 아닙니다. 사용자가 나중에 떠올릴 이야기의 구조와 그 이야기에 담길 감정의 온도입니다.
호기심으로 시작해서, 적절한 저항을 거쳐, 완결의 신호로 끝나는 경험. 이것이 뇌가 기억하는 서사의 구조입니다. 그리고 기억된 경험만이 다음 선택으로 이어집니다.
당신의 브랜드는 지금 어떤 이야기를 쓰고 있나요?
이 글은 비쥬얼스토리의 프로젝트 경험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