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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진 Aug 29. 2024

꺼져가는 열정-쿠X 물류센터에서

<토치 진저 (Torch ginger)> 불꽃보다 새빨갛게 타오르는 꽃



나는 언제든 누구로든 대체될 수 있다



한여름 무더위가 시작되기 직전 쿠X 물류센터 알바를 며칠 했다. 딱히 돈이 필요했던 것 아니다. 그저 남아도는 시간을 죽일 ‘의미 있는’ 활동이 필요했다. 시간이 아무 의미 없이 흘러가게 두느니 돈으로라도 바꿀 수 있다면 가치가 생길 것 같았다.


해도 뜨기 전 일어나 출근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나섰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따라 서서 기다리다 보면 대형 관광버스가 오는데, 한 정류장마다 열댓 명의 사람들이 탄다. 이미 정원을 초과한 지 한참인데도 계속 새로운 정류장에 멈춘다. 나중에 탄 사람들은 좁은 복도에 서서 가야 한다. 버스는 위태롭게 덜컹대며, 휘청이는 승객들을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린다.


천장이 뻥 뚫리고 층고가 보통 건물의 3층 높이 정도 되는 물류센터에 들어오면, 마치 거대한 기계의 부품 또는 한 인간의 몸속 세포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버스에서 내려 어수선하게 서있던 사람들은 8시 정각이 되면 각자 배정받은 구역으로 흩어진다. 나도 나의 업무를 하기 위해 물건들이 쌓여 있는 창고로 이동한다. 쿠X의 창고는 마치 도서관 같이 책장이 죽 늘어져 있고 그 책장에 누군가가 주문한 물건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한 사람당 책장 한 줄씩 배정받고 8시간 동안 그 책장 사이만을 왔다 갔다 하며 물건을 나른다. 이곳은 여름에도 에어컨을 틀어주지 않는다. 햇빛은 안 들지만 기계에서 나오는 열기 때문인지 더 후끈하게 느껴진다. 흘러내린 땀이 마르지 않고 몸에 끈적하게 들러붙을 때쯤 관리자가 사람들을 소집한다. 실수한 사람들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앞으로 불러내 지적한다. 그중엔 내 이름도 있다. 관리자는 마치 이것도 못하냐는 한심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어느 정도 꾸중을 듣다가 다시 나의 책장 앞으로 돌아온다.


큰 기계에서 부품 하나가 망가진다고, 아니면 사람 몸속에서 세포 하나가 없어진다고 심각한 문제가 생길까? 사실 굉장히 예민할 것 같은 비행기도 엔진 한 개쯤 망가져도 비행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한다. 하물며 사람은 작은 세포는 고사하고 콩팥 한쪽을 떼어내도, 위를 일부 잘라내도 살 수 있다. 그러니 1000개는 족히 넘을 것 같은 부품들 또는 세포들 사이에서 나 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도 이 물류센터는 잘만 굴러갈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열심히 일해야만 한다. 왜? 돈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일머리 없어 보이는 여자애가 돈 값을 하는지 안 하는지 사방에서 눈에 쌍심지를 켜고 지켜보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이곳에 필요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닌 것 같다. 나의 노동은 시간당 9860원으로 환산되는데, 이는 최저시급으로, 내가 사지 멀쩡한 몸 외엔 아무 특별한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알려준다. 나는 언제든 누구로든 대체될 수 있다.


이곳의 사람들은 모두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 무더위의 노동에 완전히 지쳐 어떤 감정을 표현할 힘도 없어 보인다. 점심 식사로 나온 맑은 물에 콩나물만 둥둥 떠있는 국을 보고서도 한 마디씩 불평만 할 뿐, 묵묵히 식탁에 모여 앉아 밥을 입 안에 욱여넣는다. 좁은 식당에 계속해서 사람들이 들어오기 때문에 빨리 자리를 비워줘야 한다. 남은 30분가량은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거나 그나마 에어컨이 나오는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쉰다. 꿀 같은 점심시간은 일하는 시간보다 훨씬 짧게 느껴진다. 오후 업무가 시작되면 또다시 찜통처럼 뜨거운 창고로 돌아가야 한다. 오후 업무는 오전보다 훨씬 길지만 결국 어떻게든 끝이 난다.


약속한 8시간이 끝나면 사람들은 하고 있던 업무도 그 자리에 내팽겨둔 채로 자리를 뜬다. 누구에게 퇴근하겠다고 인사를 할 필요도 없다. 계단을 내려가 아침에 타고 온 버스에 다시 탄다. 땀냄새 가득한 버스에 이미 사람들이 시체처럼 눈을 감은 채 앉아 있다. 이들 중 누군가는 내일도 이 버스를 타고 출근할 것이고 누군가는 오늘을 마지막으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피곤한데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달리는 버스 안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본다. 시내로 들어오니 마침 퇴근하는 회사원들도 보인다. 나는 버스 안의 사람들과 창밖의 사람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그들은 일과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일’에서 어떤 의미 또는 보람을 느끼고 있을지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내가 오늘 이 일을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일지 떠올려 보려 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한다.


나의 빈자리는 곧바로 심야조의 일꾼들로 교대된다. 내가 떠나고 또 다른 사람들이 떠나도,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 같은 그곳의 컨베이어 벨트는 오늘도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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