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 치즈 마들렌

모과를 마주하는 새로운 방법.

by 거울새

로컬 푸드 마켓에 갔다가 모과를 발견했다.


올봄만 해도 모과차를 한동안 열심히 마셨는데, 생과를 마주한 건 꽤 오랜만이었다. 어릴 땐 모과를 참 자주 보았던 것 같은데, 요즘엔 굳이 찾아보지 않으면 별달리 눈에 띄는 일이 없는 것 같다. 아무래도 차로 마시는 게 아니라면, 딱히 활용할 만한 곳이 없어서 그런 걸까. 오랜만에 만난 모과 생과가 괜스레 반갑게 느껴졌다. 마침, 판매하는 단위도 딱 한 알. 가격도 별로 비싸지 않고, 크기도 적당해서 모과차나 담자는 마음으로 모과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바쁜 일이 있어 며칠을 등한시하다가 문득 모과 향이 나서 고개를 돌려보니, 식탁 옆에 모과 봉지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며칠 새 조금 익었는지 표면에 아주 작은 점들이 생겼다. 사실, 차를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사 오긴 했지만, 모과차는 생각보다 헤프다. 모과를 잘게 썰어 설탕을 가득 부어 놓으면 과즙이 슬슬 배어 나와 차로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모과는 과즙이 그렇게 풍성한 편이 아니다. 그리고 과즙의 향도 아주 강한 편은 아니라 배어 나온 과즙만 먹고 나면 모과차는 거기서 끝이다. 과즙이 빠져나가고 난 과육은 마치 빈 껍데기 같아서, 뜨거운 물에 우려내도 특별한 맛이 선명하게 우러나진 않는다. 게다가 과육 자체가 무척 단단해서 썰기도 쉽지 않으니, 들어가는 노동력에 비해 결과물이 만족스러운 차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500g 내외 정도의 모과 한 알이면, 몇 번이나 차를 마실 수 있을까. 매번 차를 우려내고 버리는 과육이 아까웠는데, 차라리 페이스트 형태로 만드는 방법은 없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인터넷을 찾아봤더니, 사실 외국에선 모과를 페이스트 형태로 훨씬 더 많이 사용한다고 했다. 이름은 ‘멤브리오’. 마멀레이드의 어원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어쨌든 아주 오래전부터 사랑받던 역사가 깊은 일종의 과일잼이다. 모과를 그대로 조려서 만드는데, 모과 자체에 펙틴이 많아서 그저 조려주는 것만으로 젤리처럼 굳어 버린다고 한다. 이 때문에 ‘과일 치즈’ 혹은 ‘모과 치즈’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모양이었다. 모과를 통째로 이용하는 데다 이렇게 역사가 깊은 식재료라니, 호기심이 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늘은 모과 치즈 마들렌을 만들어 보았다.


만드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모과의 껍질을 벗기고, 씨를 제거한 뒤에 얇게 잘라서 삶아 주면 된다. 모과를 푹 삶은 뒤엔 곱게 갈아서 설탕을 더해 조리면 되는데, 설탕은 처음부터 넣어도 큰 상관이 없다. 시간만 충분히 있으면 그리 어려울 건 없어 보였다. 그리하여 호기롭게 멤브리오 만들기에 돌입했다. 나는 굳이 삶아 낸 뒤 무게를 재서 설탕을 넣지 말고, 처음부터 설탕과 레몬즙을 몽땅 넣고 천천히 끓이는 방법을 선택했다. 태우지만 않는다면 아마 별다른 문제없이 모과 치즈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모과 치즈를 만들 때 가장 신기한 점은 바로 모과를 약한 불에 오래 끓여내면 끓여낼수록 색이 붉게 변한다는 것이다. 붉은색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모과가 시간이 지날수록 빨개지니 정말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탄닌’ 성분이 열을 받아 분해되면서 ‘안토시아닌’ 성분으로 바뀌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안토시아닌’이라면 분명 항산화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성분이니 아마 몸에도 좋은 모양이다. 어쨌든 이제 맛만 좋으면 더없이 행복한 결말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언제나 그렇게 모두가 만족스러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첫째로, 모과 과육은 생각보다 쉽게 물러지지 않았다. 둘째로, 그에 반해 설탕 시럽은 빠르게 굳어 갔다. 셋째로, 완성된 모과 치즈의 맛은 생각과 사뭇 달랐다. 마지막으로 마침 집에 멤브리오의 짝꿍이라는 만체고 치즈가 있어서 같이 사용하려 했는데, 하필 그게 매운맛 만체고 치즈였다는 것이다. 뭐, 결국 어려움이 아주 많았다는 이야기다.



다행히 마들렌은 만족스러웠다. 멤브리오는 생각보다 식감이 서걱거렸고, 입안에 남는 떫은맛도 아주 선명했지만, 만체고 치즈를 곁들이니 한결 부드러운 맛을 느낄 수 있었다. 호두를 가득 넣은 마들렌까지 가세하자, 새콤달콤한 풍미의 모과와 진한 우유 맛을 자아내는 만체고 치즈 그리고 씁쓸하면서도 고소한 호두의 풍미가 한데 어우러져 각자의 단점이 가려지고 꽤 매력적인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들이는 노력을 생각하면 물음표가 살짝 떠올랐지만, 모과 한 알을 남김없이 건강하고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