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학에 대한 헤르바르트 스펜서의 주장은 무엇인가?
우리가 답하는 질문은 샬롯메이슨의 살아있는 교육 1 '9세 이하 어린이들의 훈련과 교육 가정교육'의 질문을 바탕으로 부부간의 생각과 의견을 나누기 위해 작성되었다.
나는 세 딸의 아빠다. 4, 2, 1살 배기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 보는 사람들이 '부러움'의 눈으로 쳐다본다.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이제는 좀 익숙하다. 어르신들은 대게는 '요즘 여자아이가 남자애 보다 나아.' 라는 말로 위로하신다. 하지만 곧 '에고 얼마나 고생스러워.'라는 말도 덧붙여 하신다. 나는 지난 몇 년간 아이들을 키우면서 갑작스럽게 아빠가 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시간이 갈 수록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면서 어려워진다. 처음에는 몰라서 아무렇게나 했던 거 같고 조금씩 알아갈 수록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를 알게 된다. 그러면서 내가 배우고 변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는다. 오늘 헤르바르트 스펜서의 주장에 공감이 많이 가는 이유이다.
헤르바르트 스펜서 (Herbert Spencer, 1820년 4월 27일 - 1903년 12월 8일)는 영국의 철학자였으며 그의 영향력은 철학, 사회학, 심리학, 생물학, 인류학에 걸쳐 있다. 그는 19세기까지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을 읽고 영향을 받았으며 진화론이 물리적, 생리적, 사회적 범위에 걸쳐 발달한다고 주장하였다. 샬롯 메이슨은 헤르바르트가 출판한 교육(Education, 1861)이라는 책을 인용하면서 교육의 복잡성과 부모가 교육에 대해 가져야 할 책임을 언급하였다.
헤르바르트는 우선 부모들이 자녀들을 교육할 역량이 현저히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인간 존재가 굉장히 복잡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동차를 고치거나 코딩을 배우는데 많은 시간을 들이지만 그보다 더 복잡한 인간이라는 존재를 교육하는데 얼마나 지식을 갖추고 있느냐 질문한다. 인간에 대한 이해 뿐만 아니라 발달이 덜 된 아이는 더 많은 배움을 요구한다. 그는 교육이 그렇게 간단한 과정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커리어의 희생을 감수하여서라도 자녀 양육의 본질적인 것을 배우라고 조언한다.
둘째로 헤르바르트는 자녀 양육에 있어서 갖추어야 할 지식과 법칙이 있다는 사실을 주장한다. 아이는 일련의 발달 단계를 따른다. 그렇기 때문에 각 발달 단계에 따라서 지식을 갖추고 대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불완전한 양육이 될 것이며 그 결과는 고스란이 아이가 가져가게 된다. 나는 세 아이의 아빠로 첫째를 보면서 발달 단계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첫째 아이는 나의 첫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양육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대해 주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내가 대할 수 있는 방식으로 대했다. (어쩌면 그래서 첫째가 더 빨리 컸는지 모르겠다. 네 살인데 벌써 막내 오줌 기저귀를 갈아준다고 난리다.) 둘째를 키우면서는 조금씩 아이가 시기에 따라서 하는 행동 패턴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짜증을 낼 때가 많은 시기, 소리를 지르는 시기, 그리고 엄마 아빠 품에 안기는 걸 찾는 시기, 옹알이를 하는 시기, 고형물을 먹기 시작하는 시기 등 말이다. 셋째를 키우면서는 그러한 발달 패턴이 더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애기를 대하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애기의 반응을 보면서 즐겁고 그걸 느낄 수 있게 된 거다. 나의 경우를 보면 지식을 가지면서 자녀 양육이 더 즐길 수 있는 활동이 되었다. 이건 아빠 중심적인 이야기이지만 아이의 관점에서는 당연히 지식을 가진 부모가 훨씬 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헤르바르트의 주장대로 '지식'없이 키운다고 해서 신체적 혹은 정신적 결함이 생긴다고는 아직 납득하기는 어렵다. 그의 말이 맞다면 이 시대에 자녀 양육에 대해 지식이 없는 부모들이 키운 아이들은 모두 결함이 있는 아이들이니 말이다. 자녀 양육은 한편으로는 하늘이 주신 본능적인 법칙이 있다고 본다. 배우지 않아도 부모는 아이가 원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부모가 지식을 갖추어 나가면서 더욱 자녀 양육을 잘 할 수 있고 몰랐던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고 본다. 나는 조금은 이기적이지만 부모가 자녀 양육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부모가 더 이 시간을 행복하고 의미있게 보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샬롯메이슨의 가정교육 세번째 질문을 접하면서 자연과 더불어 아이들을 키우는 재미가 무엇인지 알아가게 되는 것 같다. 첫번째 두번째 질문을 겪으면서 생긴 인식의 변화는 일보다 아이들이 우선이고, 함께 하는 시간 동안 어떤 가치 있는 자연활동을 하며 보낼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책이 던져주는 질문들을 통해서 스스로 변하고 성장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헤르바르트의 주장 또한 다르지 않지만 좀 더 인문학적 접근인 것 같다. 아이들을 키울 때 지식이나 규칙 을 가지는 것이 아이들을 제대로 양육할 수 있다는 전제다. 육아는 결코 가벼울 수 없는 막중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물론 이 또한 사랑이 결여되어 있으면 무의미한 것이지만. 그렇다면 제대로 된 육아를 하기 위해서 어떤 지식이 필요할까? 아마 이 질문에 대해서는 남편과 내가 읽고 있는 가정교육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실천하는 것에 있지 않나 싶다. 확실히 생각 없이 육아를 할 때와는 좀 더 체계적인 행동방식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것 같다.
규칙에 대해 좀 더 깊이 묵상해본다면, 아이들의 발달 과정이나 '좋아하는 활동'들에 규칙을 따르려는 습성이 있는 것 같다. 아침마다 아빠가 책을 읽어준다던지 저녁에는 엄마가 지도하는 스트레칭을 함께 한다던지 - 특히 아이들이 즐기는 활동들에 대해선 더욱 규칙을 따르려 한다 - 스스로 규칙 안에 들어가서 부모들을 이끌 때도 있다. 아마 인간이란 존재는 규칙을 따르도록 태어난 존재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그것은 아이들이 자라면서 보이는 발달 양상들도 다르지 않기 때문에 아동의 신체/심리 발달에 대한 전문서적들이 도움이 될 것 같아 책 - 물론 100% 따르는 것이 아닌 참고용으로 -을 읽어볼 계획도 있다.
하지만 헤르바르트의 주장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라는 점도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각각 다른 인격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규칙 안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일들도 많다. 아마 그것이 현재 아동전문가들의 이야기들을 따라하며 겪는 부모들의 자괴감이 반대로 표출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나도 어린이집 부모들과 이야기를 하며 아이들을 어떻게 양육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곧잘 나누었는데 아동전문가들의 조언대로 했더니 힘들다는 공통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헤르바르트의 주장대로 지식이나 규칙 그 이상의 무언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인데. 내 생각엔 그건 규칙이란 틀 속에 아이들을 결코 맞출 수 없고 규칙대로 아이들이 자라지 않는 변수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확실한 교육철학에 바탕을 둔 지식과 사랑을 겸비한 육아는 중요하다. 현재는 나와 남편이 인식과 행동변화를 위해서 공부하는 것을 우선순위로 두고 제한된 시간 동안 아이들과 자연 속에서 즐겁게 시간을 갖는 것을 실천하고 있다. 요 며칠간 느낀 것은 아이들은 자연을 정말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런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을 왜 나는 그토록 힘들어 했던가. 사랑만 하기에도 부족한 시간들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