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월 London Wall 투어 (1)
작년 가을, 런던에 오자마자 오픈하우스 페스티벌과 오픈 시티 투어를 많이 다녔다. 문화 제로도시 세종시에 살다가 런던으로 온 굶주린 시골쥐는 허겁지겁 정말 닥치는대로 다녔다고 하는 표현이 맞을 듯 하다. 학교가 본격적으로 바빠지기 전 낯선 런던에 대한 경계를 풀고 깊이 현지인을 만나서 런던 곳곳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런던 구석구석 알고 싶다면 오픈 시티 (Open City) 재단에서 운영하는 시티 워킹 투어를 참여하는 것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오픈 시티 (Open City)는 건축과 도시 환경을 보다 개방적이고 대중들에게 접근성을 높이며 포용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는 시민 단체이다. 지역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해 시티 가이드 양성과정을 개설하여 시민들을 교육하기도 한다.
런던 월 워킹 투어 (The Walls of London Walking Tour)
다녔던 투어 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투어는 단연 '런던 월 워킹 투어 (The Walls of London Walking Tour)' 이다. Paul Lincoln 런던 시 가이드가 이끌었던 이 투어는 시티 오브 런던 지역의 타워 힐 (Tower Hill) 역에서 시작해서 바비칸센터를 지나 세인트 폴 대성당 부근 루드게이트 힐까지 함께 런던 월을 따라서 걷는 투어였다. 이 워킹 투어는 로마인들이 원래 건설했던 장벽이 어떻게 개조되고, 철거되고, 은폐되고, 공개되고 최근 어떻게 재발견되었는지에 대한 통찰력 깊은 투어였다. 미팅 포인트였던 시티 월 뮤지엄은 학생 기숙사 건물 지하에 있는데 초기 정착민들의 흔적과 유물들, 그리고 런던 월의 일부를 전시해두었다.
https://open-city.org.uk/events
이 투어는 항상 열려있는 건 아니고 그때 그때 바뀌니 홈페이지에서 일정을 잘 확인해봐야한다.
런던 월 (London Wall)이란?
런던 월은 2세기 말~3세기 초 로마 제국 시절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시티 오브 런던을 방어하기 위해 템즈 강을 따라서 Londonium(Roman London)이 만든 요새이자 성벽이다. 런던 월은 18세기까지 유지되었으나, 도시가 확장되면서 군데군데 허물어졌다.
런던 월의 조각들은 빅토리아, 조지안 양식의 건축물, 그리고 현대 건축물 사이에서 독특한 조화를 이루며 부분적으로 남아있다. 거리 전체가 살아있는 건축 박물관이라고 보아도 무관할만큼 각 시대별 건축물들이 잘 보존된 영국이라 가능한 것 같다. 한국에서 본적이 없어서 와닿지 않았던 ‘에코뮤지엄’이란 이런 게 아닐까.
정신없이 따라가다보니 현재는 문을 닫은 뮤지엄 오브 런던의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여기에도 벽의 일부가 보존되어 있었다. 빌딩을 새로 짓기 위해 지하를 파다가 발견되었을 런던 월은 땅속에서도 존재감을 잃지 않고 있었다. 지하주차장을 통해서 바비칸으로 흘러 들어가는 루트는 시티투어가 아니었다면 절대 경험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주차장에서 빠져나오자 현재는 문을 닫은 뮤지엄 오브 런던의 때탄 흰색 타일벽이 성벽처럼 보이고 그 앞에는 군데군데 부서진 런던 월이 다른 성벽을 이루고 있었다. 도시의 오래된 흔적과 현대 건축물이 겹쳐 보이는 이 광경은 시간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한 도시의 역사를 눈앞에 펼쳐 보이는 듯했다.
런던 월 플레이스(London Wall Place)은 최근 이 지역을 오피스 건물로 개발하면서 새로운 건물과 바비칸센터를 스카이워크로 이어주었다. 몇천년 전 로마 제국 시절의 잔재인 벽돌벽 옆으로 자연스럽게 흐르는 스카이워크의 곡선적인 형태와 코르텐강의 현대적인 재료가 어우려져 아름다운 도시경관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런던의 브루탈리즘 대표작인 바비칸센터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