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고3 아들이 재수술을 받게 되었다.
중학교 졸업 즈음 심한 염증으로 수술을 받은 후, 관리가 잘 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했다. 한 시가 아까운 고등학생이니까, 병원에 다니느라 시간을 허비하면 안 되니까.
열이 나거나 증상이 갑자기 악화되지 않으니까 괜찮다고 애써 눈감았다.
2년이나 진물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도, 상처를 억지로 봉합하는 것보다 고여있던 염증 물질이 배출되는 게 낫다고만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믿어야만 했으니까.
작은 이상 증상만 있어도 대학병원에 진료 예약부터 하는 시댁의 건강염려증에 반발하고 싶어서였을 수도 있다.
그 반발을 내가 아닌 아들의 건강을 볼모 삼았다는 게 문제였다. 병원 다닐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경우도 흔하지만, MRI로 경과를 확인해 보시려면 그렇게 하는 것도 좋습니다."라는 의사의 말은, 건강 문제라면 유난스러운 남편에게 지나가듯이 했다고만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믿고 싶었다.
아들에 대한 기대, 시댁에 대한 불만, 한 번 시작하면 끝도 없이 확대되는 불안이 나를 집어삼킬 수도 있는 지금이다.
그러나 '내가 완전히 무너질 수도 있었겠구나'라고 덤덤히 바라볼 수 있는 건 지난 3년 남짓동안 진흙탕을 헤맨 덕분이다.
'내 삶은 평온하게 점점 더 나아져야 했고, 내 아이들은 모범생으로 칭찬을 듬뿍 받으며 명문대에 진학해야 했고, 나는 늘 행복해야 했고...'
그렇게 만들기 위해 애쓰지도 않고 당연하다는 듯이 삶이 주는 축복을 받아먹으려고만 했던 나였다.
진흙탕에서의 시간은 제대로 된 사람으로 살기 위한 큰 그림이었다.
지금을 잘 넘기라고, 사는 게 다 그런 거라고, 그저 언덕 넘어가듯 수울렁 넘어가라는 예방접종이었다.
숨도 쉬지 못할 것 같았던 그 시간도 지나 보냈는데, 뭐가 더 두려울까 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떨고 있는 아이에게 나무 같은 버팀목이 되어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