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시인의 초정강연
산 아래시 ‘다시 공방’ 수원에서 안도현 시인 초청 강연이 있었다. 어떤 분일까 궁금했는데, 직접 가까이에서 뵐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격스러웠다. 각기 다른 곳에서 오신 분들도 나처럼 마음이 설레는 듯 보였다. 아직 밖의 날씨는 무더웠지만, 시인을 만난다는 기대감에 더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강연에 앞서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질문을 할 수 있고, 책 외에도 준비한 선물이 있다는 안내가 있었다. 참석자들은 책 한 권씩을 선물 받고, 시인의 친필 사인도, 사진도 함께 찍을 수 있었다. 4시에 시작이었지만 서둘러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많은 분들이 먼저 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안도현 시인을 기다리는 동안 사회자가 「판타롱 나팔바지」 낭송을 제안했다. 낭송을 하면 선물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하필 중요한 날, 나는 돋보기를 챙겨야 한다고 하다가 깜빡 잊고 오고 말았다. 몇몇 시인들이 낭랑한 목소리로 「판타롱 나팔바지」를 읊으며 분위기를 북돋웠다. 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든 나설 수 있었다.
그때 사회자가 나를 지목했다. 낭송할 기회를 얻었지만, 돋보기를 챙기지 못한 탓에 선물과 영광을 놓치고 말았다. 대신 다른 분들의 멋진 낭송을 감미롭게 들을 수 있었다. 음악과 어우러진 시 낭송은 마음속 깊이 스며들었다. 그중에는 ‘디자이너 시인’도 있었는데, 아크릴 물감으로 등에 연탄재를 그려 입고 무대에 올랐다. 마치 판타롱 나팔바지의 주인공처럼 남달랐다.
낭송이 이어지는 동안, 드디어 안도현 시인이 강연장에 들어섰다. 모두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박수로 환호했다. 사회자는 시인의 후배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예천, 대구, 이리, 원광대학교 국문학과 대학원 등 학창 시절의 이야기도 곁들였다.
안도현 시인은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시단에 나왔다. 「판타롱 나팔바지」는 1960~70년대 무자비한 권력의 횡포 속에서 주눅 든 사람들에게 자유의 탈출구가 되어 준 작품이다. 나팔바지는 억압을 벗어나려 했던 그 시대의 자유를 상징한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너에게 묻는다」, 「연탄 한 장」, 그리고 널리 알려진 「연어」가 있다. 특히 「연어」는 1996년 출간 이후 그림책과 동화책으로도 만들어져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았다. 연어가 거슬러 올라가는 여정을 통해 삶과 죽음, 사랑과 희망을 노래한 이 작품은, 인간의 삶과 운명을 비유적으로 담아낸 서정시라 할 수 있다.
「판타롱 나팔바지」는 한 여성의 사실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낯선 남자를 만나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이혼을 겪고,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 나간 주인공의 이야기다. 가정은 지키지 못했지만, 디자인으로 성공하며 자신의 꿈을 이룬 삶이었다.
안도현 시인의 작품 「연탄재를 함부로 차지 마라」는 특히 깊은 울림을 주었다. 하찮아 보이는 연탄재에도 삶이 깃들어 있다는 시인의 메시지는, 힘들게 살아가던 세대의 따뜻한 온기를 전해 주었다. 또 누군가 ‘보푸라기’라는 표현에 대해 질문했을 때, 시인은 북경 공항에서 본 북한 사람의 옷자락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답했다. 옷의 흔적만으로도 삶과 직책이 드러난다고 했다. 그 대답이 참으로 인상 깊었다.
직접 시인을 만나니 작품에 대한 이해가 한층 깊어졌다. 책으로만 접하던 의미들이 작가의 목소리를 통해 더 가까이 다가왔다. 강연 속에서 노무현 대통령 시절 북한에 사과나무를 심었다는 이야기, 또 북한에도 시와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들의 글은 사상과 당에 관한 것이 많을 것이라는 답변도 들을 수 있었다.
강연장을 나서며, 글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느낌과 감각, 깨달음이 철학적으로 풀어낸 세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판타롱 나팔바지’라는 제목처럼, 그의 글은 시대의 아픔과 자유, 그리고 삶의 여운을 내게 오래도록 남겨 주었다.
그림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