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선화(봉숭아)
봉선화 손톱에 물들이다.
화분 하나에서 싹이 돋아났습니다.
푸릇푸릇 자라며 내 곁에 다가왔지요.
다른 화분들과 함께 어우러져 우뚝 서 있었지만,
“언제 꽃이 피려나?” 하고 물어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이상하네. 날씨도 덥고, 기후 변화 때문인가?”
봉선화는 좀처럼 꽃을 피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살며시 속삭였습니다.
“봉선화야, 언제쯤 필 거니?”
지난해에는 나비와 벌도 찾아왔는데,
올해는 아무도 꽃을 찾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창가에 놓인 봉선화가
작은 꽃봉오리를 맺었습니다.
연분홍빛 물결이 살며시 번지며
“곧 피울 거야” 하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나는 활짝 웃으며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아, 드디어 피어주는구나.’
그때 봉선화가 대답하는 것 같았습니다.
“응, 기다려. 네 손톱에 물들여 줄게.”
팔월 말, 봉선화는 내 맘을 알듯
활짝 꽃을 피웠습니다.
나는 조심스레 꽃잎과 잎사귀 몇 장만 따서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이 봉선화로 내 손톱 좀 물들여 줄래?”
남편은 미소를 지으며 “알았어” 하고 대답했습니다.
어린 시절, 엄마가 해주시던 봉선화 물들이기.
그때의 따뜻한 기억을 잊지 않고,
나는 해마다 봉선화로 손톱을 물들이며
엄마를 그리워합니다.
방법은 참 간단합니다.
봉선화 꽃잎과 잎, 그리고 약국에서 살 수 있는 백반.
일회용 장갑 손가락 끝을 잘라 끼우고
실로 묶어 두면 서너 시간이 지나
곱게 물이 들어갑니다.
사람들은 봉선화 물이 손톱에 남아 있으면
첫눈 오는 날 첫사랑이 이루어진다고도 하지요.
나는 첫눈을 기다리며,
손톱 봉선화 추억 속에서
오늘도 머물러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