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시간을 잃은 여인

2박 3일 낯섦

by 정인
2025, 11, 07,

마카오 여행에서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어린 시절 내가 알던 그 모습의 ‘어린아이들’이 아니었다.
세월은 그들의 머리 위에 하얀 꽃을 피웠지만, 마음속에는 여전히 청춘의 바람이 불었다.
고향 친구 모임은 이어졌고, 이번에는 뜻을 모아 해외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출발 당일, 공항은 주말의 북적임으로 가득했다.
낯선 얼굴들 사이로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둘 나타나자, 친구들 다시 만나 반가움이 일었다.
누군가는 새로 염색한 머리로, 누군가는 자연 그대로의 흰머리로 나타났다.
“야, 오랜만이야!”
서로의 손을 맞잡는 순간, 세월이 잠시 멈춘 듯했다.

이번 여행은 2박 3일, 홍콩과 마카오를 도는 일정이었다.
익숙한 국내 모임이 아닌, 함께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여행이라 그런지 모두의 얼굴에는 들뜬 표정이 번졌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려 하늘로 솟구쳤다.
“잘 있거라, 나는 간다.”
누군가 옆자리에서 흥얼거린 노래에 웃음이 퍼졌다.
그 노래 한 구절에 여행의 설렘과 인생의 여유가 담겨 있었다.
잠시의 정적, 그리고 고요한 하늘.
모두는 창밖의 구름을 바라보며 조용히 마음을 내려놓았다.


첫째 날 홍콩


홍콩의 공기는 생각보다 따뜻했다.
공항을 빠져나와 낯선 거리로 나서자, 이국의 냄새와 도시의 소음이 동시에 밀려왔다.
가이드의 목소리가 버스 안을 울렸다.

가이드 소개를 하고 일정을 말한다.

“여러분, 1904년부터 운행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2층 트램을 타실 거예요.”

오래된 트램이 철길을 따라 덜컹거리며 도시를 가로질렀다.
창밖으로는 코즈웨이 베이의 빛나는 간판과 쇼윈도, 그리고 붐비는 사람들의 모습이 스쳤다.
그 속에서도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을 나누었다.
“이렇게 함께 있으니 학생 때로 돌아간 것 같네.”

소호 거리로 이어진 길목에는 서양풍의 카페와 예술 갤러리가 줄지어 있었다.
계단 옆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며, 가파른 언덕을 천천히 걸었다.
벽에 남겨진 낡은 간판들과 오래된 건물의 창틀이 시간의 흔적을 말해주었다.

블루하우스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1920년대 지어진 파란 외벽의 4층 건물, 그곳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가이드가 말했다.
“이곳은 2017년 유네스코 문화유산 보존 상을 받은 곳입니다.
역사와 삶이 함께 숨 쉬는 곳이죠.”

저녁이 되어 피크트램을 타고 올라가자, 홍콩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수없이 반짝이는 불빛들이 마치 별처럼 흩어져 있었다.
밤바람이 얼굴을 스쳤고, 그 순간 모두의 마음속엔 같은 생각이 스쳤다.
“이 시간이 참 소중하다.”


둘째 날 마카오


아침 일찍 배를 타고 마카오로 향했다.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던 배가 멈추자, 이국적인 건물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첫 번째 목적지는 성 바울 성당.
17세기 초에 세워졌지만 지금은 전면의 벽면만 남아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었다.
화려한 조각과 섬세한 무늬 속에 오랜 시간이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언덕을 내려오니 세나두 광장이 펼쳐졌다.
파도무늬 타일 위로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이 겹쳐 있었고, 포르투갈풍 건물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이 여행의 시간을 비추고 있었다.

타이파 마을로 향하자 쿠키 굽는 냄새가 골목을 따라 흘러나왔다.
“이 향, 참 따뜻하네.”
그들은 작은 상점마다 들어서며 웃음과 이야기를 나눴다.

오후에는 야경을 보기 위해 마카오 타워에 올랐다.
타워에 도착하니 어둠 사이로 도시 전체가 금빛과 보랏빛 사이에서 은은하게 빛을 갈아입고 있었다.
아래로는 화려한 호텔들이 하나둘 불을 밝히고, 강 너머로 이어지는 다리들은 수 놓인 별처럼 반짝이며 한눈에 들어왔다.

우리 일행은 윈 팰리스의 음악 분수쇼 시간에 맞춰 이동해 자리를 잡고 반짝이는 조명을 바라보았다.
황금빛 빌딩 사이로 음악이 흐르고, 물줄기는 리듬을 따라 하늘로 치솟았다.
물줄기가 뉴욕의 리듬처럼 춤을 출 때마다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핸드폰을 들어 지금 이 순간을 놓치기 싫어 동영상과 사진으로 남겼다.
윈 팰리스 앞에서 만난 분수쇼는 마카오의 밤을 뉴욕처럼 화려하게 물들였다.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분수쇼가 끝난 후 우리는 다시 홍콩으로 돌아가야 했다.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55Km 해상 다리를 버스로 건너며, 마카오의 야경을 눈과 마음에 담았다.
창밖으로 스치는 불빛과 바다가 어우러져 또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냈다.
말없이 그 장면을 바라보는 동안 마음은 더 가득 차올랐다.

호텔로 돌아온 밤,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술상 위에 하루의 추억이 올랐다.
이야기와 웃음이 쏟아졌고, 잔이 부딪칠 때마다 우정이 깊어졌다.
“이 나이에 이런 여행을 할 줄이야.”
흥이 오른 목소리 속에서 다시금 청춘이 피어나는 듯했다.


셋째 날 귀국


아침 햇살이 커튼 사이로 스며들었다.
마지막 날의 공기는 조금 아쉬웠다.
가이드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다음 여행에서도 꼭 다시 만나요.”
그들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요, 또 함께해요.”

비행기가 이륙하자, 창밖 구름 위로 햇살이 비쳤다.
누군가는 눈을 감았고, 누군가는 창가에 얼굴을 대고 그 빛을 담았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마음속엔 오래 남을 기억이 되었다.

하얀 머리칼 아래 웃음꽃이 피어 나는 순간,
그들은 다시 젊어 있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오랫동안, 서로의 이야기 속에서 살아 숨 쉴 것이다.

keyword
월, 목 연재
이전 29화시간을 잃은 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