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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뜨는봄 May 13. 2024

영화 시 감상문

"시를 쓰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시를 쓰겠다는 마음을 갖기가 어렵다"

영화 '시'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목차>

1. 시

2. 알츠하이머

3. 꽃 

4. 사과

5. 살구

6. 회피에 대한 책임

7. 애인과의 대화

8. 마무리



1. 시


시를 쓰려고 노력하는 미자의 행위는 희진의 고통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행위와 같다. 영화에서 시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잘 봐야 된다. 무엇이든 진짜로 보게 되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


'시상은 찾아오지 않는다. 내가 찾아가서 빌어야 한다. 사정을 해야 된다. 어디를 정해놓고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돌아다니면서 찾는 거다.'


미자는 계속해서 돌아다닌다. 성당, 학교 과학실습실, 다리 위, 희진의 집 등 모두 희진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 곳들이다. 성당에선 희진의 위령미사를 보며 얼굴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창문에 얼굴을 대고 과학실습실을 보고, 희진이 떨어졌던 다리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더욱 희진의 고통을 직면하게 된다. 또한 희진과 비슷한 일을 겪으며 그 아픔을 점차적으로 더 이해하게 된다.


‘시를 쓰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시를 쓰겠다는 마음을 갖기가 어렵다.’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게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런 마음을 갖기가 어렵다. 영화에서 인물들은 타인의 아픔에 대한 이해를 회피하고, 잘못과 죄책감을 회피한다. 가해자의 아버지들은 진정한 사과가 아니라 잘못이 드러나지 않는 게 더 중요하고, 가해자인 욱은 피해자의 사진을 마주해도 티비를 켜며 회피한다. 욱의 어머니도 아들을 키우는 것을 회피하고 부산으로 내려간 인물이다.


영화에서 회피하지 않았던 인물은 미자와 남자 경찰이다. 둘 다 시와 관련이 있는 인물이다.


- 미자는 결국 시를 쓰고야 말았다. 그 과정에서 희진의 아픔을 이해하고자 노력했고 위로의 시를 남겼다. 가해자인 손자 또한 미자가 고발했다. 


남자 경찰은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회원이다. 그는 비리를 고발해 시골로 좌천됐다. 불의를 회피하지 않고 직면한 인물이다. 또한 우는 미자에게 괜찮냐고 물어봐 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는 불의를, 타인의 아픔을 회피하지 않았다.


시와 관련된 두 인물은 회피하지 않았고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이었다.


‘요즘은 시가 죽어가는 시대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시를 읽지도 쓰지도 않게 될 테니까.’


강사가 말했던 ‘시가 죽어가는 시대’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이해를 회피하는 시대가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더 이상 그런 것들을 직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 과정이 수고스럽고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은 다 가슴속에 시를 품고 있다. 시를 가두어두고 있다. 그걸 풀어줘야 한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타인의 고통에 대해 이해하고 위로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요즘 다들 그것을 숨기고 회피하려 한다. 가슴속에 품어져 있는 내면의 선의들을 가두지 말고 풀어줘야 한다고 감독은 시인의 입을 빌려 말한다.



2. 알츠하이머


알츠하이머는 기억을 잃는 병이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미자는 본인의 기억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희진의 죽음과 관련된 기억을 더듬어간다. 미자의 기억이 점차 사라짐과 동시에 희진에 대한 기억은 점차 채워진다. 미자는 점점 희진과 동일시되어가며 그 고통과 아픔을 이해하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알츠하이머에 걸린 미자만이 희진의 고통을 잊지 않고 마주하려고 한다.

 


3-0 꽃


'난 꽃을 너무너무 좋아해서…… 보고 있기만 해도 행복해요. 꽃만 바라보고 앉아 있어도 배가 불러서 밥 안 먹어도 돼요.'


미자는 꽃을 좋아하는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영화에서 꽃이 많이 나오고 그에 대한 언급도 많이 나온다. 그때마다 꽃을 통해 미자의 현재 심경과 상황이 드러난다고 보여진다.


3-1. 꽃 : 맨드라미


미자가 처음으로 욱의 잘못을 알게 되었을 때, 미자는 이야기를 듣던 중 밖으로 나와 꽃을 보며 시상을 찾으려 한다. 그리고 이야기한다.


맨드라미 꽃말 뭔지 아세요? 방패래요. 방패같이 생겼잖아요. 우리를 지켜주는 방패


욱의 가해에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 속에서 미자는 방패를 뜻하는 맨드라미 꽃에 다가갔다. 미자는 이 충격적인 상황에서 무언가가 지켜주길 바랐던 게 아닐까.


3-2. 꽃 : 동백꽃


병원 진료실에는 동백꽃이 있었다. 미자는 동백꽃을 보고 좋아하며 말을 한다.


'동백꽃은 고통의 꽃이에요 꽃 중에서 붉은 것은 고통이거든요.'


미자는 희진의 아픔에 직면할수록 마음이 고통스러웠을 거라 생각된다. 동백꽃은 미자의 고통을 의미하는 꽃이다.


진료실에서 의사는 미자가 알츠하이머라고 진단해 준다. 그리고 미자가 바라본 동백꽃에 대해 얘기해 준다.


'저거 조화예요'


타인에게 있어서 희진의 아픔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미자는 이상한 사람으로 보여진다. 마치 조화에 괜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처럼.


(여자친구는 동백꽃=고통의 꽃을 ‘정의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고통’으로 해석을 했다. 그 과정이 고통스럽지만 ‘조화’라고 반박당함으로써 고통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래도 정의로 나아가야 함이 중요함을 의미한다고.)


(개인적으로 여자친구의 해석에 큰 마음이 간다. 영화나 극에서 감독은 자신의 생각을 의사의 진료를 통해 전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3-3. 꽃 : 흰 꽃


'오늘 마지막 날이라고 꽃도 갖다 두셨네. 고맙습니다. 감동했어요.'


미자는 강의 마지막 날에 꽃을 두고 간다. 흰 꽃이다. 미자가 영화 속에서 흰 꽃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있다.


꽃 중에서 붉은 것은 고통이거든요. 흰 꽃은 순결, 노란 건 영광'


미자는 마지막에 순결을 뜻하는 흰 꽃을 시와 함께 두고 간다. 미자는 이제 고통을 넘어서 희진의 아픔을 이해하고 위로의 시까지 건네줄 수도 있게 승화된 게 아닐까. 희진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겪는 그 모든 고통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순수하고 진실된 위로를 건넬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시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4. 사과

 

'지금까지 여러분은 사과를 진짜로 본 게 아니에요. 사과라는 것을 정말 알고 싶어서, 관심을 갖고, 이해하고 싶어서, 대화하고 싶어서 보는 것이 진짜로 보는 거예요. 오래 오래 바라보면서 사과 그림자도 관찰하고, 이리저리 만져보면서 뒤집어보고, 한 입 베어 물어보고, 사과에 스민 햇볕도 상상해 보고, 그렇게 보는 게 진짜로 보는 거죠.'


되게 단순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극 중에서 사과는 진짜 사과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같은 맥락으로 사과=시=타인의 고통에 대한 이해인 것 같다.)


사과를 하려면 강사의 말처럼 정말 알고 싶어서, 관심을 갖고, 이해하고 싶어서, 대화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흥미롭게도 영화 속에서 사과를 먹는 이는 미자뿐이다. 미자가 가해자들에게 사과를 깎아주려고 했었던 장면이 있었다.

 

'뭐 한다고 문은 잠그냐? 너희들 배 안 고파? 사과 깎아줄까?'

 

가해자들은 사과를 먹지 않고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 이후 미자는 혼자 시인의 말을 생각하며 사과를 먹는다.

 


5. 살구


'아까 살구가 땅에 떨어진 거 보고 참 간절하다고 생각했어요. 지 몸을 땅에 던져서 지 몸을 막 깨지고 밟히게 해서 다음 생을 준비하잖아요.'


 희진도 살구와 같다고 느껴졌다. 희진이 떨어졌을 때도 간절했을 것이다. 현재가 고통스러워 다음 생을 준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여자친구는 다음 생을 바라는 살구처럼 희진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쉼표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미자는 선의를 가진 인물이며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으로서 이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기에 결국 승화되었다고)




6. 회피에 대한 책임


 회피를 했던 이들은 결국 지어야 될 책임에 직면하게 된다. 미자의 신고로 손자 욱은 경찰서에 가게 되고, 가해자의 아버지들은 형사고발로 인해 더 이상 숨기지 못하게 될 것이고, 욱의 어머니는 회피했던 아들의 양육에서 이제 어떤 결과가 이루어졌는지 직면하게 될 것이다.



7-0. 애인과의 대화


 영화를 보고 여자친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여자친구의 시각과 해석에 흥미로운 부분이 많아 정리해 보았다.


7-1. 큰 나무 


영화 속에서 미자는 큰 나무를 쳐다본다. 지나가는 할머니가 무엇을 보냐고 물어보자 미자가 답한다.


'나무를 잘 보려구요. 나무를 보고 느끼고 나무가 무슨 생각을 하나, 내게 무슨 말을 거나 들어보려구요.'


할머니는 미자를 이해하지 못한 채 떠난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선 할머니가 앉아서 큰 나무를 쳐다보고 있다. 미자가 없는 빈자리에 할머니가 미자의 행동을 하고 있다. 세상만사 관심이 없던 사람이 미자라는 인물을 통해서 나무에 관심을 갖게 된다. (어쩌면 우리도 미자라는 인물이 보여준 태도를 통해 좀 더 타인의 고통에 관심을 갖게 될지도)


7-2. 아름다웠던 기억


시 강의에서는 가장 아름다웠던 기억에 대해 사람들이 얘기를 나눈다. 미자는 그 순간을 공유하며 울게 된다. 그런데 미자의 아름다웠던 기억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아마도 내 머리 속에 있는 맨 처음 기억일 것 같아요. 너무 어렸을 때라 몇 살인지 모르겠어요. 세 살…… 네 살……?'


이러한 어린 시절이 어린 학생이었던 희진과도 동일시되는 부분이라 여겨진다. 미자의 어리고 순수했던 시절 이야기에서 자연스레 희진이 떠오르지 않았을까.


7-3. 동사와 명사


알츠하이머를 진단하며 의사와 미자가 대화하는 부분이 있다.


(의사)

'처음에는 단어 중에 명사를 잊어버리시고, 그 다음에는 동사가 기억 안 나실 거예요. 동사, 아시죠?'


(미자)

'네, 동사…… 알죠.명사가 제일 중요하잖아요.'


(의사)

'그렇죠? 명사가 제일 중요하죠?'


여기에서 시 강사가 말했던 대사를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시를 쓰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시를 쓰겠다는 마음을 갖기가 어렵다'


시를 쓰겠다 = 선의를 갖겠다 = 동사

시를 쓰겠다는 마음 = 선의를 갖겠다는 마음 = 명사


중요한 것은 행동보단 마음이다. 마음이 가면 자연스레 행동은 따라온다.



8. 마무리


영화 초반부부터 우리는 강에서 떠내려오는 희진을 보았다.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기에 그 고통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미자의 노력을 통해 우리는 희진의 고통을 보다 더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마지막에 희진이 우리를 바라볼 땐 만감이 교차하게 된다.


영화는 우리의 일상에 카메라만 갖다 놓았다고 느껴질 정도로 굉장히 리얼하다. 나무, 사과, 꽃 등의 일상적 소재를 통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치밀하게 잘 구성해 놓았다. 영화를 보고 나선 많은 생각이 든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에 대해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은 아닌지, 그 고통에 내 책임은 없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괜시리 영화 '너와 나'도 떠오른다.


타인의 해석이나 리뷰는 보지 않고 내 생각을 그대로 정리해 보았다. 그래서 잘못된 해석이나 장면에 대한 오해가 있을 수 있다. 어쩔 수 없다. 그만큼 내가 부족한 사람인 탓이다. 아쉬운 점은 말씀해 주시면 생각해 보고 고치겠다. 스스로도 이게 맞나 헷갈리는 부분들이 있어서 이번 일주일 동안 조금씩 이 글을 다듬어가려고 한다.


내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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