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호우 경보가 처음으로 발생한 날. 잠시 소강상태. 도서관으로 왔다. 자리에 앉자마자 창밖으로 다시 쏟아지는 빗줄기. 이런 중에 책을 읽는 첫 경험. 놀랍다! 꽤 많은 분들이 책을 읽고 있다는 것. 다들 책에 푹 빠져 있다. 한 공간에 있지만 책을 펴는 순간 각기 다른 시공간에 있는 이 진묘한 체험. 나도 나태주 시인이 만들어 준 그 시공간으로 Go! Go!
<아침에 일어나> '... 오늘은 좋은 날 / 지구에서 만난 기적의 한 날...'(p17) - 아침에 일어날 때 나는 어떠한가? '기대'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있기나 한 건가?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을 시작하고 있는 나를 본다. 80세 나태주 선생의 오늘과 나의 오늘이 이렇게 다르다니. 아니다. 본인도 그러했을 거다. 우울증의 나날을 보냈으니. 그리고 그 속에서 회복의 단어를 찾은 거다. 그것이 '좋다는 기대'다. 기대는 삶의 콜라겐이다. 이제 아침에 일어나 나도 '좋은 날이다!'라고 외치자. 무한정 무료로 쓸 수 있는 이 삶의 콜라겐을 잔뜩 뿌리고 바르자! 그것도 수시로.
<나의 꿈> '... 나는 날마다 사람들 마음에 물을 주는 사람... 나는 사람들 마음에 난 잡초를 뽑아 주는 사람...'(p20-21) - 80세 나이도 여전히 가지고 있는 나태주 선생의 꿈 이야기. 나는 꿈이 있기나 했던가? 그저 먹고사는 일에 하루하루를 쏟아붓지 않았던가? '가족 부양'이라는 무거운 줄 모르고 짊어지고 온 나날들. 이 시를 읽으며 '꿈'이라는 단어를 되새겨 본다. 이제는 나와 무관한 것 아닌가? 다 지나간 일. 꿈은 무슨 꿈? 마음의 저항이 강하게 인다. 여기서 이렇게 멈춘다면 그것은 곧 죽음이다. 살아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돌아보니 엉겁결에 '책'이라는 친구가 30대 초반부터 나의 러닝메이트가 되어 주고 있다. 이제 그 친구들과 글쓰기라는 것으로 소통해 보려 한다.'느리게 책 읽고 날 것 그대로 글쓰기'가 그것이다. 아직도 잘 모르는 꿈, 그것 자체를 완전히 덮어버린 그 잡초들을 뽑아가는 중이다. 그러다 보면 내 본래 꿈의 형상을 조금이라도 보게 될 거라는 기대로 묵묵히. 3년 정도 해 오면서 나도 나태주 시인처럼 시는 아니지만 글쓰기로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는 작은 소망은 생겼다. 아직 글쓰기 유치원 수업 중이지만.
<가을 감상> '여름을 이기고... 어느덧 서늘한 바람이 불고... 먼 데 풍경까지 잘 보이는 가을날...'(p112-3) - 장마가 예년 같지 않다. 한반도를 위아래로 오가며 비가 시간당 100mm 이상 내리기도 하고, 폭염과 폭우가 한 날에 나타나기도 한다. 이 시의 '이제 떠날 때가 되었어요'의 시구처럼 끝내는 이 여름도 지나갈 것이다. 이 한여름 장마철에 가을날을 잠시라도 감상해서 시원하다. 이 또한 책이 주는 묘미다. 아~ 시원하다. 가을바람. 앗! 에어컨 바람이었구나!
나태주 선생에게는 또 다른 부모가 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아버지 박목월, 어머니 김남조. 부끄럽게도 나는 이 두 분의 시집을 온전히 읽은 적이 없다. 이 시집에는 이외에 또 다른 시인들이 나온다. 시는 <나태주 시인의 결을 따라 읽는 시집>으로 해서 당분간 읽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