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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선아 Nov 16. 2023

태몽 찾으러 왔어요 10

10. 태몽 터널     



 달리는 성운이는 행복했어요. 아무리 달려도 숨이 차지 않았어요. 성운이는 그동안 달리지 못했던 것을 모두 달리기라도 할 듯 쉬지 않고 달렸어요. 

 성운이는 달리면서 지는 해를 바라봤어요. 해가 구름 위로 아주 살짝 걸쳐 있었어요. 성운이는 더 힘껏 달려 나갔어요.

 얼음산에 가까워질수록 구름 땅이 끈적거렸어요. 한 발자국 떼기도 힘들었지요. 간신히 끈적이는 길을 빠져나오자, 천둥 길이 나타났어요. 발을 내디딜 때마다 울리는 천둥소리에 고막이 터지는 것 같았어요. 또 구름 땅이 어찌나 흔들리지는 서 있는 것도 힘들었지요. 

 천둥 길이 끝나자 번개길이 나왔어요. 번쩍번쩍 내리치는 번개를 피해 폴짝폴짝 뛰어올라야 했어요. 그다음에는 폭풍 길이 나왔어요.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거친 비가 쏟아졌어요. 성운이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 기어갔지요. 폭우로 금세 물이 불어 헤엄까지 쳐야 했어요.

 폭풍 길이 끝나고는 폭설 길이 나타났어요.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엉덩방아를 찧었지요. 눈사태가 나 눈덩이가 되어 데굴데굴 구르기도 했어요. 

 성운이는 지칠 대로 지쳤어요. 하지만 기분은 좋았어요. 신나게 뛰고 헤엄치고 달릴 수 있어 행복했어요. 

 곧 성운이는 얼음산 아래에 도착했어요. 꼭대기가 보이지 않을 만큼 아주 높은 산이었지요. 

 “올라가 볼까?”

 성운이는 두 손을 탁탁 털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그러고는 삼신할머니가 준 번개 창을 얼음산에 꽂으며 올랐어요. 얼음벽이 미끄러워 미끄러져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기를 몇 번이나 반복해야 했지요. 어느새 이마와 콧등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고 등줄기를 타고 주르륵 땀이 흘러내렸어요. 성운이는 젖 먹던 힘까지 짜내 정상에 올랐어요.

 “다 왔다!”

 드디어 정상에 오른 성운이는 저 멀리 앞에 있는 터널을 봤어요. 터널은 얼음 벽돌로 만들어져 있었어요. 얼음 벽돌은 여러 색을 띠고 있어 멀리서 보면 꽃 터널처럼 보였지요. 성운이는 냉큼 터널 안으로 들어갔어요. 터널은 밖에서 본 것보다 훨씬 넓었어요. 

 “철컥.”

 순간 입구가 닫히더니 터널 중간쯤에서 빛이 새어 나왔어요. 성운이는 빛을 향해 걸어갔어요. 빛은 얼음 벽돌에서 나오고 있었어요. 성운이가 빛이 나는 벽돌 앞에 서자, 벽돌이 빠져나와 커다란 화면으로 변하더니 영상이 나타났어요.



아기 천사 성운이는 회오리 속에 손을 넣고 금빛 실을 잡았어요. 그리고 금빛 실 끝에는 엄마 아빠가 있었지요. 성운이가 실 끝을 가슴에 올리자,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어요. 

“세상에 없는 아주 특별한 태몽을 만들고 싶은데······.”

아기 천사 성운이는 땅에 쭈그리고 앉아 구름을 끌어모아 이 모양 저 모양을 만들었어요. 

마음에 드는 게 없는지 구름 땅 위에 벌렁 누웠지요.

“뭘 만들지?”

그때 하늘 위로 노란 별똥별이 떨어졌어요.

“그래, 별! 별을 만드는 거야.”

아기 천사 성운이는 별을 만들 돌을 찾아다녔어요. 그리고 아주 깊고 깊은 숲 속에서 무지갯빛이 나는 돌을 캐냈지요. 성운이는 돌을 깎고 다듬어 별 모양을 만들었어요. 자기 몸보다 열 배는 큰 별이었어요. 성운이는 무지갯빛별로 세상으로 나가는 축제를 열었어요. 그리고 무지갯빛별과 함께 삼신할머니 앞에 섰지요. 

“아주 특별한 것을 만들었구나. 귀하고 귀한 아이야. 태몽을 이리 다오. 엄마에게 잘 가져다줄 테니.”

삼신할머니가 손을 내밀었어요. 삼신할머니는 태몽을 받아 성운이가 태어날 인간 세상의 가족에게 꿈으로 태몽을 배달해 줘요. 그 순간 성운이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어요.

“잠깐만요. 삼신할머니. 아무래도 이 태몽을 가져갈 순 없을 것 같아요.”

“왜?”

“저는 세상에 없는 아주 특별한 태몽을 만들려고 했어요. 그런데 무지개도 별도 세상에 있는 거잖아요? 

아무래도 제가 태몽을 잘못 만든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냐?”

삼신할머니가 미소 지으며 물었어요.

“네.”

“네 생각이 그렇다면 그러렴. 이 세상에 없는 아주 특별한 건, 처음부터 너였으니까. 너 하나로 충분하니까. 

태몽은 단지 인간 세상으로 나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마음을 다스리는 과정일 뿐이란다. 태몽을 가져가지 않는다고 해도 그 마음은 이미 네 안에 있지.”

삼신할머니는 성운이가 준 태몽을 작은 얼음 블록으로 만들어 멀리 던졌어요. 얼음 블록이 얼음산 위로 날아가 터널의 빈칸을 채웠지요. 삼신할머니는 성운이의 양쪽 손등에 뽀뽀를 쪽쪽 했어요. 성운이는 구름을 타고 하늘 위로 올라가서 기억의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갔어요. 미끄럼틀 아래에는 엄마 아빠가 두 팔을 벌리고 서 있었지요. 성운이는 기억을 지우는 미끄럼을 지나 파랗게 멍든 엉덩이를 하고 엄마 아빠 품에 쏙 안겼어요. 영상이 사라지고 얼음 블록은 다시 제자리에 가서 박혔어요. 성운이는 이제야 자기가 태몽이 없는 이유를 알 수 있었지요. 

 “내가 만들고 안 가져간 거였잖아. 바보같이.”

 그것도 모르고 삼신할머니한테 태몽을 달라고 했으니, 삼신할머니도 답답했을 것 같았어요.

 그건 그렇고 성운이는 무지갯빛별 태몽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알 수 없었어요. 이미 제자리로 들어간 블록이라도 꺼내려고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어요. 성운이는 허탈한 마음으로 터널 밖을 나와야 했어요.

 “할머니!”

 언제 왔는지 터널 밖에는 삼신할머니가 와 있었어요. 성운이는 삼신할머니께 달려갔지요. 삼신할머니가 활짝 웃으며 물었어요.

 “태몽을 보니 기분이 좋으냐?”

 “네. 제 태몽은 무지갯빛별이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가져가요? 얼음 블록은 꺼내지지 않아요. 제 무지갯빛별은 다른 곳에 있나요?”

 삼신할머니가 표정을 확 바꾸고 말했어요.

 “태몽을 보기만 하랬지 가져가라고는 하지 않았는데, 잊었구나. 더구나 저기 있는 블록이 하나라도 빠지면 터널이 무너지고 말아. 그러면 태몽을 놓고 간 다른 아이들의 태몽도 모두 사라진단다.”

 “네? 그러면 태몽을 못 가져간다고요?”

 “그래. 이제 더는 지체하면 안 되겠다.”

 삼신할머니가 지는 해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어요. 어느새 해가 정수리만 살짝 보일 정도로 사라지고 없었어요. 금방이라도 구름 땅 밑으로 쏙 들어가 버릴 것 같았지요. 

 “하지만 할머니, 전 태몽을 가져가야 해요. 그래야 안 아프죠.”

 성운이가 투덜거리는데 삼신할머니가 성운이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어요. 성운이는 처음에 태몽 마을에 왔던 모습으로 변했어요.

 “자, 빨리 내 손을 잡으렴.”

 삼신할머니가 손을 내밀며 말했어요.

 “하지만······.”

 성운이는 태몽 터널과 지는 해, 삼신할머니를 번갈아 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어요. 그냥 갈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더 태몽을 찾을 시간은 없었으니까요. 성운이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으니까 삼신할머니가 성운이의 손을 덥석 잡았어요. 

 “넌 태몽 마을을 기억하는 유일한 아이가 되겠구나. 절대 인간 세상에서 태몽 마을에 대해 말하면 안 된다. 그러면.”

 “할머니, 빨리요. 빨리. 문이 닫혀요.”

 지는 해를 보던 성운이가 삼신할머니 말을 자르며 소리쳤어요. 해가 바로 구름 땅 아래로 떨어질 것 같았거든요. 일단 빨리 집으로 가야 할 것 같았어요. 

 해를 본 삼신할머니도 놀랐어요. 성운이를 인간 세상까지 데려다줄 시간이 없었죠. 삼신할머니는 냉큼 성운이를 해를 향해 힘껏 던졌어요. 성운이는 배드민턴 셔틀콕처럼 날아갔어요. 

 “으악!”

 성운이는 놀라 눈을 질끈 감았다가 바로 정신을 차렸어요. 지금은 해를 통과하는 게 중요해요. 성운이는 양팔을 올려 실눈보다 작아지는 해의 틈을 비집고 들어갔어요. 

 순간 해가 구름 땅 밑으로 완전히 사라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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