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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선아 Nov 16. 2023

태몽 찾으러 왔어요 11

11. 태몽을 찾았어요     



 “헉, 헉.”

 집 베란다로 떨어진 성운이는 숨이 찼어요. 급히 주머니에서 흡입기를 꺼내 깊게 들이마셨지요. 곧 숨이 고르게 돌아왔고 성운이는 산 위로 모두 올라온 해를 봤어요. 태몽 마을에서 맘껏 뛰고 얼음산을 오르던 때가 생각났지요. 다시 그때처럼 흡입기 없이 뛰고 달리고 싶었어요.

 “휴, 태몽만 있다면 흡입기도 필요 없을 텐데······.”

 성운이는 아쉬웠어요. 힘들게 태몽 마을까지 갔는데 태몽을 가져오지 못했으니까요. 

 성운이는 화장실로 갔어요. 세수하면서 아쉬운 마음도 씻어내 보려 했지요.

 “일찍 일어났네.”

 막 거실로 나온 하늘이 누나가 하품을 하면서 말했어요.

 “누나, 배고파. 밥 줘.”

 태몽 마을에서 달리고 헤엄치고 얼음산을 올라서 그런지 성운이는 배가 많이 고팠어요.

 “알았어. 그런데 너, 새벽에 초콜릿 먹었어? 이게 다 뭐야?”

 하늘이 누나가 거실에 있는 초콜릿 껍질을 보며 말했어요. 성운이는 아차 싶었지요. 

 “그게··· 내가 먹은 게 아니고, 삼신.”

 성운이는 급히 입을 다물었어요. 삼신할머니가 먹었다고 사실대로 말해봤자 하늘이 누나는 믿지 않을 거예요. 더구나 삼신할머니가 태몽 마을에 관해 얘기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네가 먹은 게 아니면 누가 먹었다는 거야?”

 하늘이 누나가 의심스럽다는 듯이 눈을 흘기며 말했어요. 

 “몰라. 어쨌든 나는 진짜 안 먹었어!”

 “정말이야? 수상한데?”

 하늘이 누나는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성운이를 봤어요. 성운이는 태몽 마을에서 도둑으로 몰렸던 기분이 들었지요. 그래서 짜증을 섞어 말했지요.

 “왜 내 말을 안 믿어. 누나가 그렇게 얘기하니까 초콜릿 먹고 싶잖아.”

 성운이는 정말로 초콜릿을 먹고 싶었어요. 자신에게 주는 생일 선물로 바지 주머니에 숨겼던 초콜릿도 삼신할머니를 주고 맛도 못 봤으니까요. 입을 댓발로 내밀고 있는 성운이를 보며 하늘이 누나가 미안한 표정을 짓고 물었어요.

 “진짜로 하나도 안 먹은 거지?”

 “그렇대도. 자꾸 의심하면  초콜릿 먹는다.”

 성운이는 바닥에서 초콜릿을 주워 협박하듯이 말했어요. 그러자 하늘이 누나는 마지못해 믿어주겠다면서 거실에 어질러져 있는 초콜릿 비닐을 정리했어요.

 “그런데 누나, 누나는 태몽이 뭐야?”

 성운이가 함께 초콜릿 껍질을 주우며 물었어요. 

 “태몽? 없어.” 

 “태몽이 없어?”

 하늘이 누나는 당연하다고 말했지만, 성운이는 깜짝 놀랐어요.

 “응. 왜 그렇게 놀라. 태몽이 꼭 있어야 해?”

 성운이는 하늘이 누나가 태몽이 없다는 게 이상했어요. 하늘이 누나는 합기도에 태권도뿐 아니라 달리기, 수영, 축구도 잘해요. 또 감기도 한 번 안 걸리고 헌혈도 많이 할 만큼 건강해요. 

 “아니, 그건 아니지만······.”

 성운이는 하늘이 누나도 자기처럼 태몽을 만들고 안 가져왔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건강한 하늘이 누나가 태몽이 없다는 건 이상했지요.

 ‘삼신할머니 말이 진짜인가?’

 성운이는 삼신할머니가 자기가 아픈 게 태몽 때문이 아니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어요.

 ‘그럼 왜 나만 아픈 거야?’

 성운이의 고민이 처음으로 돌아갔어요. 성운이는 다시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렸어요. 

 “갑자기 왜 이렇게 풀이 죽었어? 배고파서 그래? 빨리 밥 먹자.”

 하늘이 누나가 주방으로 가더니 뚝딱 아침상을 차렸어요. 

 성운이는 미역국에 밥을 말아서 후루룩 먹었어요. 배가 고파서 미역 건더기 하나,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먹었지요. 

 “잘 먹네. 천식이 조금씩 나아진다고 이모가 좋아하더니 밥을 잘 먹어서 그런가 보다.”

 하늘이 누나가 말했어요. 성운이는 믿을 수 없었어요. 엄마는 매일 건강해지려면 초콜릿 안된다, 아이스크림 안된다, 달리지 마라, 일찍 자라, 햇빛 보고 산책해야 한다, 잔소리뿐이었거든요. 

 “정말이야? 누나. 나 건강해지고 있대? 엄마가 정말로 그렇게 말했어?”

 성운이가 다시 물었어요. 

 “그래.”

 순간 성운이는 초콜릿 하나쯤 먹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천식이 좋아지고 있다니 초콜릿 하나 정도는 괜찮겠지요? 더구나 오늘은 성운이의 열 번째 생일이잖아요. 

 “누나, 그러면 나 초콜릿 하나만 먹어도 될까? 생일 선물로.”

 “뭐?”

 하늘이 누나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봤어요. 그러곤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지요.

 “그래.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딱 하나만이야.”

 성운이는 날아갈 것처럼 좋았어요. 

 하늘이 누나는 초콜릿을 하나 가져와 성운이에게 줬어요. 성운이는 초콜릿을 냉큼 입속에 쏙 넣었지요. 초콜릿이 입안에 들어가자마자 사르르 녹았어요. 

 “행복하다.”

 성운이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어요.

 “초콜릿 먹어서?”

 “응.”

 “맞아. 행복은 그런 거야.”

 “누나도 행복해지게 먹어.”

 “난 초콜릿 먹어도 행복하지 않아.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먹을 수 있으니까. 넌 세상에서 초콜릿을 가장 행복하게 먹는 사람일 거야.”

 순간 성운이는 자기가 아픈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누나 말대로 성운이가 아프지 않았다면 초콜릿을 맘껏 먹을 수 있을 거고 그러면 초콜릿 하나에 이토록 큰 행복을 느낄 수 없었겠죠? 또 태몽 마을에서 얼음산 꼭대기에 올라갈 때도 즐겁지 않았을 거예요. 평소 뛰지 못했기 때문에 뛰고 힘들게 산을 오르는 게 즐겁기만 했던 거예요. 

 “그러고 보니까 누나가 생일 축하한다는 아직 안 했네. 초콜릿을 행복하게 먹는 특별한 내 동생, 공성운, 생일 축하해.”

 “고마워. 누나. 누나도 내게 특별해. 운동도 잘하고 건강하고 또 나를 사랑해 주고.”

 하늘이 누나가 함빡 웃었어요. 성운이도 함께 웃었지요. 

 성운이는 누나가 말한 ‘특별한 내 동생조카’이라는 말이 좋아요. 특별하다는 말은 가슴을 간지럽게 해요. 사랑한다는 말처럼요. 그러면서 성운이는 무지갯빛별을 만들고 세상에 없는 특별한 태몽이 아닌 것 같아 가져오지 않으려 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생각해 보면 무지갯빛별은 정말 특별한 태몽이었는데 말이죠. 태몽 마을에 있던 다른 태몽들도 특별하지 않은 게 없었어요. 태몽을 만들던 아이들은 태몽보다 더 특별했고요.

 ‘아, 생각났다. 삼신할머니가 그랬잖아. 이 세상에 없는 아주 특별한 건 나라고. 태몽은 인간 세상으로 나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마음을 다스리는 과정일 뿐이라고. 태몽을 가져가지 않는다고 해도 그 마음은 이미 내 안에 있다고.’

 그제야 성운이는 태몽은 처음부터 자기한테 있었다는 걸 알았어요. 태몽을 만들던 마음이 내 안에 있으니까요. 그것도 모르고 태몽을 찾겠다고 삼신할머니 몰래 태몽 마을에 갔던 게 우스웠지요. 또 천식 때문에 맘껏 뛸 수 없지만 그렇다고 특별하지 않은 공성운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몸이 아프다고 해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없는 것도 아니고요. 어쩌면 성운이는 자기가 아파서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 것도 같았어요. 자기처럼 아픈 친구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런 생각이 들자, 성운이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어요. 얼음산을 올라 태몽을 처음 봤을 때처럼요. 자꾸만 웃음이 나왔지요.

 성운이는 행복한 마음으로 학교에 갔어요. 일찍 온 아이들은 밖에서 잡기 놀이를 하고 있었어요. 민찬이는 새로 산 축구화를 자랑하고 있었어요. 

 민찬이가 교실에 들어온 성운이를 보고 말했어요.

 “살살이, 공성운이 왔다. 아픈 치타가 태몽인 공성운.”

 그러면서 절룩거리면서 뛰는 치타 흉내를 냈어요. 성운이는 자기를 놀리는 민찬이가 얄미웠어요. 

 “강민찬, 내 태몽은 치타 아니거든!”

 “뭐야? 지난번에 거짓말한 거야? 그럼 네 태몽이 뭔데?”

 민찬이가 다시 물었어요. 성운이는 무지갯빛별이라고 말하려다 이렇게 말했어요.

 “나 태몽 없어.”

 태몽 꿈을 꾸었든 안 꾸었든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어쨌든 성운이도 민찬이도 태몽 마을에서 태몽을 열심히 만들었을 텐데요. 온 마음을 다해서요. 단지 가져오고 안 가져오고만 다를 뿐이죠.

 “하하. 태몽이 없어? 세상에 태몽 없는 사람이 어디 있냐?”

 민찬이가 웃으며 말했지요. 그러자 갑자기 환희가 끼어들었어요.

 “여기 있지. 나도 태몽 없어.”

 “나도 없댔어.”

 “나도.”

 성재와 아린이까지 태몽이 없다고 말했어요. 성운이도 민찬이도 놀라며 셋을 바라봤죠. 그러고 보니까 급식실에서 태몽 얘기를 할 때 환희도 성재도 아린이도 태몽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성운이는 혼자서 모두 태몽이 있다고 오해했다는 걸 알았어요. 그러고는 태몽이 없어서 자기가 아픈 거라고 결론지었던 거죠.

 “에이, 바보 같은 공성운.”

 성운이는 자기 머리를 콩 쥐어박았어요. 

 “그런데 나는 태몽이 있었으면 좋겠어.”

 아린이가 말했어요.

 “맞아. 우린 왜 태몽이 없을까?”

 환희도 말했지요. 순간, 성운이는 자기만 아는 태몽 마을에 대해 말하고 싶어 졌어요. 사실 우리는 태몽이 없는 게 아니라 태몽을 만들고 가져오지 않다는 걸요. 그러니까 태몽이 있다고 특별한 것도 아니고 없다고 이상한 것도 아니라고요. 또 태몽을 자기가 직접 만든다는 걸 알면 신기해할 것 같았어요.

 “참, 너희들 그거 알아? 태몽은 말이야, 삼신할머니가 주는 게 아니라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직접 만드는 거야.”

 순간 성운이는 하늘을 올려봤어요. 인간 세상에 가서 태몽 마을에 대해 말하지 말라던 삼신할머니 말이 떠올랐거든요.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뭐? 너 정말 엉뚱하구나. 하하하. 태몽을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직접 만든다고? 뭘로? 어디서? 어떻게? 그게 말이 되냐?”

 민찬이가 말하고 웃었어요.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교실이 떠내려갈 듯 소리 내 웃었지요. 성운이는 함께 웃었어요. 그러면서 왜 삼신할머니가 태몽 마을에 관해 왜 말하지 말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어요. 아무도 믿지 않을 테니 말해도 소용없다고 말하려 했을 거예요. 그렇다면 말을 안 할 이유가 없죠. 모두 상상이라고 하면 되니까요.

 “있잖아. 태몽 마을이라는 곳이 있는데······.”

 성운이는 아이들에게 태몽 마을에 대해 말했어요. 

 쉬는 시간에 태몽 마을에 대해 모두 얘기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아이들은 매 쉬는 시간마다 성운이 주위로 몰렸어요. 민찬이도 성운이가 얘기하는 태몽 마을 이야기를 들으려고 축구하러 나가는 것도 잊고 왔어요.

 성운이는 신나서 얘기했어요. 말을 많이 해서 운동장을 뛴 것처럼 숨이 찼어요. 하지만 흡입기는 필요 없었어요. 아주 행복한 숨차기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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