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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선아 Nov 16. 2023

태몽 찾으러 왔어요 7

7. 세상으로 나가는 축제     



 축제장에 도착하자, 머리에 화환을 쓴 아이들이 앞장선 줄이 보였어요. 뒤로는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들이 커다란 나뭇잎을 둘둘 말아서 만든 피리를 불었고요. 그 뒤로는 아이들이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췄어요. 하늘에서는 꽃잎이 눈처럼 내렸지요. 성운이는 놀이동산 퍼레이드에 온 것 같았어요.

 성운이는 다른 아이들과 동물들이 자기를 알아볼까 봐 겁이 났어요. 고개를 숙이고 힐끔힐끔 축제장을 훔쳐봤지요. 하지만 아무도 성운이를 알아보지 못했어요. 아이들과 동물들은 오로지 축제만 즐기고 있었어요. 

 “저기, 태몽이야.”

 공작이 가리킨 곳에 노란 물고기가 꼬리지느러미를 파닥거리며 헤엄쳐 왔어요. 물고기는 고래처럼 컸지요. 몸통은 삼각 모양에 가운데 투명한 줄무늬가 하나 있고 줄무늬에서는 신비로운 빛이 사방으로 뻗어 나왔어요.

 “예쁘다. 정말 멋져.”

 성운이는 넋을 놓고 물고기를 봤어요.

 “저기, 저 아이가 태몽을 만든 아이야. 이제 엄마 아빠를 만나러 가겠지?”

 성운이는 공작이 가리킨 아이를 봤어요. 커다란 물고기 뒤에서 걸어오고 있는 아이는 함빡 웃고 있었어요. 보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웃음이었어요. 물고기와 아이에게서는 태양 빛보다 강하지만 부드럽고 따뜻하면서도 신비로운 빛이 뿜어져 나왔어요.

 세상으로 나갈 아이의 행진이 태몽 마을을 몇 바퀴 돌았어요. 아이들과 피리를 부는 동물들이 어울려 한바탕 춤을 췄고 춤과 음악은 갈수록 빨라지고 흥겨워졌지요. 

 잠시 뒤, 아이들과 동물들은 두 줄을 만들어 섰어요. 줄 끝에는 삼신할머니가 앉아 있고요. 성운이는 다시 만난 삼신할머니가 반가웠지만 모르는척했어요. 

 아이가 삼신할머니 앞에 서자 음악이 멈췄어요. 모두가 양손을 배 앞으로 모으고 서서 삼신할머니를 바라봤어요.

 “그래, 멋진 물고기구나. 아주 귀한 물고기야. 너 또한 귀하고 귀한 아이지. 이제 엄마 품으로 가서 가족을 만나렴. 물고기처럼 거친 바다를 헤엄치듯이 인간 세상에서 너만의 길을 찾아 여행하렴. 이 물고기를 만들던 마음, 엄마를 기다리던 간절한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한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렴.”

 삼신할머니는 아이의 양쪽 손등에 뽀뽀를 쪽쪽 해주었어요. 그러자 태몽인 물고기가 아이를 태우고 하늘로 날아올랐지요.

 “세상으로 나가는 걸 축복한다.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렴.”

 삼신할머니가 큰소리로 외치자, 어디선가 구름이 몰려와 미끄럼틀을 만들었어요. 아이는 미끄럼틀 위로 올라가 쓩하고 빠르게 내려갔어요. 아이가 지나갈 때마다 미끄럼틀에 여러 영상이 나타났다 사라졌어요. 아이가 부모님을 만나고 물고기 태몽을 만들고 즐겁게 노는 모습이었지요.

 “우아.”

 성운이는 절로 감탄이 나왔어요.

 “기억의 미끄럼틀은 볼 때마다 신기해. 이곳에서의 기억들이 모두 사라진다는 게 아쉽지만 말이야. 하지만 부모님을 만나려면 이곳을 잊어야 하니까. 그래야 인간 세상에서 더 좋은 기억들을 담을 수 있다잖아.”

 성운이는 공작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제야 자기가 태몽을 만들었던 걸 기억하지 못했던 게 이해됐지요. 

 미끄럼틀 아래에는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두 팔을 벌려 하늘에서 떨어지는 아이를 힘껏 안았어요. 엉덩이로 미끄럼틀을 타서 그런지 아이의 엉덩이가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지요. 

 다시 열두 동물들이 피리를 불고 동물들과 아이들이 피리 소리에 맞춰 춤을 췄어요. 

 축제가 끝나고 아이들은 곳곳에 모여 이야기를 나눴어요. 공작도 다른 아이들과 얘기하고 있었지요. 성운이는 빨리 태몽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서둘러 축제장을 빠져나왔어요.

 “정말 멋진 축제였어.” 

 축제의 흥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어요. 흥겨운 피리 소리와 몸통에서 빛이 나는 물고기, 기억의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던 아이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어요. 멋지고 아름다운 물고기를 만들어 부모님을 만나는 모습은 가슴 뭉클했지요. 순간 성운이는 장미꽃을 태몽으로 만든 아이가 떠올랐어요. 

 ‘만약 내가 그때 장미꽃을 꺾었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했어요. 장미꽃 아이에게 너무나 미안한 일이었지요. 아니 미안하다는 말로는 부족해요. 

 ‘그때 장미꽃 아이가 날 밀치고 장미꽃을 먼저 살핀 건 당연한 거야.’

 성운이는 장미꽃 아이에게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성운이는 다시 축제장으로 돌아갔어요. 장미꽃 아이가 축제장에 남아있을지 모르니까요. 하지만 축제장에는 장미꽃 아이가 보이지 않았어요. 성운이는 장미꽃이 있는 곳으로 가보기로 했어요. 역시 장미꽃 아이는 장미꽃을 돌보고 있었어요. 

 성운이는 성큼성큼 장미꽃 아이에게 다가갔어요. 장미꽃 아이가 성운이를 알아보고 표정을 굳히며 말을 쏘았어요.

 “왜 또 왔어? 설마······.”

 “놀라지 마.”

 성운이는 조심히 장미꽃 아이에게 다가갔어요.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장미꽃 아이가 소리쳤어요.

 “도와줘! 도둑이 다시 왔어!”

 순식간에 주변에 있던 아이들과 동물들이 성운이와 장미꽃 아이를 에워쌌어요. 성운이는 당황한 마음을 추스르며 침착하게 말했어요.

 “미안하다고 사과하려고 왔어. 아까 네 꽃을 꺾으려고 했던 거 정말 미안해. 태몽인 줄 몰랐어.”

 “태몽인 줄 몰랐다고?”

 장미꽃 아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고 물었어요. 주위에 있던 아이들과 동물들이 수군거리며 성운이를 바라봤어요. 의심스럽고 이상하다는 표정으로요. 

 “응. 아까는 정말 미안해.”

 성운이는 진심을 담아 사과했어요. 그런데 아이들과 동물들 무리에서 호랑이와 독수리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왔어요. 그러고는 성운이의 양쪽에 서서 말했어요. 

 “너, 아무래도 안 되겠구나.”

 “우리하고 같이 가야겠다.”

 둘은 성운이의 양쪽 팔을 하나씩 잡고 끌고 갔어요. 마치 도둑을 잡아가는 경찰처럼요.

 “이거 놔요.”

 성운이가 소리쳤어요. 

 “조용히 해!”

 “얌전히 따라오는 게 좋을 거야.”

 호랑이와 독수리가 목소리를 낮게 깔고 말했어요. 고함치지 않았지만, 크게 소리치는 것보다 무서워 오줌이 찔끔 나올 뻔했어요.

 성운이는 입을 꾹 다물고 호랑이와 독수리를 따라갔어요. 온몸이 덜덜 떨렸지요. 괜히 장미꽃 아이를 찾아가서 사과했구나, 하는 후회도 됐어요. 하지만 사과하지 않았다면 마음이 더 무겁고 불편했을 거예요.

 성운이는 독수리와 호랑이를 따라가며 주위를 두리번거렸어요. 이곳이 어디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통 알 수 없었지요. 그래서 더 겁이 났어요. 

 “어디로 가는 거예요?”

 “제발, 놔주세요. 전 진짜 도둑이 아니에요.”

 “그냥 사과하고 싶었던 것뿐이에요!”

 성운이의 외침만 구름 땅 위에 울려 퍼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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