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작가님께서 나의 가장 초기의 글을 읽고 라이킷을 해 주셨다. 나의 짐작으로는 최근의 글을 몇 편 읽어본 후, 역으로 읽어나가신 것이 아닐까 싶다.
'왜 최근 글이 아니고 예전 글을 라이킷 하셨을까?'
나도 궁금했다. 라이킷 글 중 하나는 내가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하면서 올린 글이다. 제목 자체도 <나의 애증의 영어 일대기>다. 흑역사라 불릴 만큼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내용이 담겨 있어 나도 읽으려면 움찔 겁부터 난다. 그런데 궁금해서 읽어나갔다. 못하는 것에 대한 민망함보다는 솔직하게 잘 풀어냈다는 자작평을 했다.
'내가 이때 이랬었구나.'
'이런 마음가짐과 행동으로 살았었구나.'
나는 솔직함을 좋아한다. 그래서 예쁘지 않을지언정 사진 보정을 하지 않는다. 못하는 것을 감추기보다는, 못했지만 나아지고 있다는 과정을 기록하는 것을 좋아한다.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를 기록하였을 때, 되돌아보았을 때 가장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분 덕택에 브런치에 올려둔 글을 모두 읽었다. 스스로 기특했다. 글로 남기는 과정이 소중하고 의미 있음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번 기록하는 것은 쉽지 않다. 글로 남겨지면 좋았을 아이들과의 일상과 여행, 나의 독서 후기, 살면서 느끼게 되는 수많은 경험과 생각들... 이제는 소환할 수 없을 정도로 휘발되어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짧게라도 남기면 좋았을 것을 왜 하지 못했을까? 가장 간단명료한 이유는 귀찮아서이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저 그런, 평범한 내용의 상투적인 표현이라 하더라도 쓰는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시간과 반복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최근에 올린 '설악산 등산'도 보람은 컸지만 막상 글로 적으려니 귀찮고 하기 싫었다. 여기서 실행할 수 있었던 유일한 원동력은 과거 남기지 못하고 희미해진 '지리산의 무박 산행'에 대한 후회였다. 당시에도 분명 깊은 감회가 있었다. 감동이 컸기에 며칠, 몇 주가 지나도 충분히 기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능성은 몇 배로 약해졌다.
그 후로 나에게 새로운 습관이 하나 생겼다. 놓치지 싫은 글감이 생기면 즉석에서 바로 쓰고 일상의 해야 할 일로 복귀하는 것이다. 글은 생생한 경험이 남아있을 때 가장 짧은 시간에 완성할 수 있다. 단어나 문장을 떠올리는 일도 그렇게 어렵지 않다. 나중에 다시 정교하게 수정할지언정, 당시의 생각이나 느낌을 주르륵 적어가다 보면 살아 꿈틀대는, 부화를 꿈꾸는 알속의 생명체를 보관하는 격이 되기 때문이다.
이번에 대학교 중간고사와 그와는 별개의 국가 자격증을 일주일이라는 시간간격에서 끝낸 경험이 있다. 시험 기간 동안은 다음날 공부를 복습하기에도 마음이 바빴지만 카페에 가면 먼저 글부터 썼다.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가 어떤 실수를 했는지, 체계적인 학습방법을 놓쳤는지에 관해 솔직하게 기록했다. 그러다 보니, 주관식과 객관식의 문제 유형에 따른 학습 방법, 주어진 자투리 시간에서 어떤 식으로 학습 일과를 짜고 준비를 해야 할지에 관해서 더 효율적인 대처 방안이 떠오르기도 했다. 시간이 걸리기는 했다. 금쪽같은 시간에 글을 쓰는 것이 맞나 갈등도 했다. 하지만 당시의 생각을 넘겨 지나쳤다면, 시험에 대한 반성과 개선방안을 얻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은 더더욱 글을 적어 내려갈 수 없을 것이다.
살다 보면, 기쁘고 즐거운 일도 생기지만 공허하고 슬플 때도 많다. 깨끗하게 비워진 거실에서 온전히 햇살만 받을 때처럼, 걱정과 불안이 치워진 상태에서 행복하고 기쁜 일만 맞이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럴 일은 없다. 절대로 있을 수가 없다.
이럴 때 차곡차곡 남겨진 기록들이 하나의 위로가 된다. 나에게도 햇살 비친 따뜻한 기억이 있었다는 것, 어울리며 하하 호호 웃던 순간이 있었다는 것이 뭉클한 위로가 되어준다. 비행기를 타고 닿은 이국땅에서 탄성을 자아냈던 자연의 경이로움은 두고두고 감사한 일로 남아있다. 아이들과의 장거리 여행들, 특별했던 순간들...
다시 오지 않을 우리 가족의 모습들이다. 그래서 나의 기록들은 소중하다. 블로그와 브런치가 있어서 보관과정이 훨씬 수월해져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글을 쓸 때 보정과 수정은 나중에 하면 된다. 천천히 해도 된다. 남이 읽을 것이라는 의식보다 나에게 찾아온 감흥을 제대로 남긴다는 것에 초점을 둘 것이다. 짧아도 상관없다. 참신한 표현과 세련된 문장이 아니어도 좋다. 그러나 솔직하게 쓸 것이다. 남의 것을 인용하기보다 내 것을 풀어내는 것에 중점을 둘 것이다. 그래야 다시 볼 때 가장 나답게 느껴지고 가장 행복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