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reeze lee Aug 28. 2024

한국의 망자의 날을 아시나요

-백중 체험기

  여기서 나는 종교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8월 말쯤 납량특집 같은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어떤 한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니 읽는 분들 중 종교가 다르다고 거부감이 없이 읽어주시길 바란다. 

  지난 토요일 남편은 아이들이 노래를 불렀던 워터파크를 데리고 가고 나는 집안 청소를 어느 정도 마친 후 나른해져 소파에서 낮잠이 들었다. 차마 혼자 있는 집에 에어컨을 틀지 않겠다는 이상한 오기로 선풍기 바람에 의지한 채 버텼으나 폭염에 선풍기 바람도 뜨거운 바람을 내뿜고 있었기에 2시간 여 후에 결국 선잠에서 깼다. 이에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나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너 절에 다녀왔니?" 아이코! 오늘 백중이라고 절에 가서 잔이라도 올리고 오라는 어제 친정엄마 말을 건성으로 듣고 말았다. 다니는 절이 다르게 되는 바람에 어제 신신당부를 한 것인데... 나는 모기만 한 소리로 "아니, 아이고 깜박했네" 친정엄마는 한숨과 함께 그런 정성도 없이 뭘 하겠냐며 아쉬움이 가득한 마음이 전화기를 타고 전해졌다. 아마 옛날 어른들의 조상에게 잘해야 후손이 잘된다는 그런 생각도 깃든 타박이셨다. 나이가 먹었어도 엄마의 잔소리는 피해 갈 수 없고 나이 들어도 웃으면 넘기지 못하고 마음이 불편한 건 매한가지인 거 같다. 


  나는 백중이란 일 년에 한 번 조상에게 제를 지내는 절의 풍습이라는 것만 알고 친정엄마를 따라간 적만 있지 주체적으로 혼자 간 적이 없으므로 내 기억에 그리 중요한 날이 아니었다. 그래도 뭔가 찜찜한 마음에 저녁을 차려놓고 절에 잠깐 들러 본다는 마음으로 차를 운전하여 저녁 7시쯤 도심에 있는 절에 도착하였다. 다행히 저녁에도 백중 행사가 있어 잠깐 참석할 수 있었다.

  

  오전에는 가정에서의 제사처럼 정성이 든 음식과 과일 떡등을 올려놓고 합동제를 지내는데 줄을 서서 자기 차례가 되면 절을 두 번 하고 잔을 올린다. 저녁에는 다소 간소하게 돌아가신 분들을 축원해 드리고 그분들을 기리는 점등식을 한다고 했다. 부처님 오신 날의 분홍, 빨간, 노랑 등의 화려한 등과 대조적으로 일렬로 나열되어 있는 흰 등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경건한 마음이 들게 하였다. 스님의 목탁소리에 맞추어 경을 읽으며 돌아가신 분들을 축원해 드린 후 드디어 어두웠던 등이 환하게 켜졌다. 아마 돌아가신 분들 모두 어두웠던 마음에 불을 밝히고 좋은 곳으로 가시라는 뜻이겠지? 문득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코코가 생각났다. 

멕시코의 '망자의 날'을 소재로 한 영화 코코는 '센과 치이로의 행방불명', 'up'과 함께  내 인생의 3대 애니메이션이다. ''기억해 줘'라는 노래가 좋아 원래 가수 버전과 윤종신 가수의 버전을 또 듣고 또 들었던 때가 있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중학생인 친구들은 가수 브로마이드를 모을 때, 세계 7대 불가사의 같은 책을 사서 읽고 친척집에 가면 책장에서 크리슈 나무르티 같은 사람의 책을 찾아 읽었다. 그러고 보면 난 어릴 적부터 인생이란 무엇인가, 죽은 후에 나는 어떻게 될까 같은 영적인 세계에 관심이 많았던 거 같다. 그래서 그런지 이 '코코의 이야기'는 나에게 참 친근하게 다가왔다. 이 영화에서 죽은 자를 기리기 위해 찾아오는 후손이 없으면 그 영혼마저 영원히 사라진다는 내용이 있다. 

  

  멕시코의 망자의 날 (Día de Los Muertos)에 대해 좀 설명하자면 이 날은 멕시코 고유의 명절이다. 날짜는 10월 31일부터 11월 2일까지 3일간으로, 마지막 날인 11월 2일은 국가적인 공식 휴일이다. 명절 기간 동안 음식과 고인의 사진으로 꾸민 제사상에 세상을 떠난 조상이나 가족들의 제사를 지내며 추모한다고 한다. 이때 죽은 조상을 의미하는 해골 인형과 주황색의 멕시코 국화(Mexican marigold) 꽃잎으로 집 안을 장식하며 해골 분장을 하고 길거리에 나오기도 한다. 

  

  그와 비교하여 우리나라 백중은 음력 7월 15일 우선 각 가정에서 익은 과일을 따서 조상의 사당에 올린 다음에 먹는 천신 차례를 지냈으며, 옛날에는 종묘(宗廟)에 이른 벼를 베어 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농가에서는 백중날이 되면 머슴을 하루 쉬게 하고 돈을 주었다고 한다. 머슴들은 그 돈으로 장에 가서 술도 마시고 음식을 사 먹고 물건도 샀다고 한다. 그래서 ‘백중장’이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 조선시대 이전까지는 일반 사람들도 참여했으나 이제는 사찰에서만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상 위키 백과를 참고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멕시코의 망자의 날이나 기안 84가 방문한 마다가스카르의 장례식에 비해 우리나라 백중 행사는 다소 심심하고 조용하다.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에서 기안 84가 마다가스카르의 장례식에 참여한 장면은 참 인상 깊었다. 요란한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웃고 떠들다 7년 만에 가족의 시신을 꺼내어 안아보고 쓰다듬고 울기도 한 후 깨끗한 천을 갈아주는 의식을 하였다. 이런 모습에서 죽은 사람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으려는 마음이 느껴져 눈시울을 뜨겁게 하였다. 죽음이 슬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춤과 음악으로 슬픔을 승화하려는 모습이 다소 생소했지만 나중에 모두 오열하는 모습에서 가슴을 먹먹하게 하였다. 

                                  [출처 : mbc 사이트] 

이제 다시 백중이야기로 돌아와 천장에 매달린 각 흰 등에는 종이패찰이 달려있는데 자신의 조상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이름을 모르는 분들은 무명영가라고 적혀 있었다. 이분들은 어떤 사연으로 돌아가셨는지 알 수 없다. 전쟁으로 돌아가셨는지, 질병으로였는지, 사고였는지, 아니면 생을 대체로 행복하게 사시다가 평화롭게 마감 셨는지... 그러나 멕시코나 마다가스카르나 같은 것은 이 날은 돌아가신 분들을 기억해 주고 추모해 주는 자리라는 것. 얼굴을 뵌 적이 없는 분들이지만 이곳에서의 슬픔이나 미련이 있다면 다 깨끗이 털고 훌훌 가볍게 부디 좋은 곳에서 행복하게 지내시길 마음속으로 빌어 보았다. 


  평소 일요일 저녁은 다음날 출근으로 무거워지는 날이었지만 이 날 일요일 절에서 돌아오는 내 발걸음은 왠지 가볍고 홀가분했다. 아마 조상님께 예를 다하여 오전 행사에 참여 못했던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왔기 때문일 것이리라. 아울러 내가 죽어서도 누군가가 기억해 준다는 건 위안이 되는 일인 거 같다. 마지막으로 넷플리스 드라마 '경성 크리처'의 대사를 끝으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윤채옥 역(한소희) :

우리 약속 하나만 합시다. 만약에 우리 둘 중에 누구라도 먼저 죽게 된다면 남는 사람이 먼저 간 사람을 기억해 주는 거요. 

어떻소?

죽는 건 별로 슬프지 않은데, 내가 살다 간 흔적조차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면 그건 왠지 좀.... 쓸쓸할 거 같아서...

음력 7월 15일 백중일 저녁 점등식 모습(이후 3일간 등을 켜놓으실 거라고 하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