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난보다 무서운 통증, 그러나 살아 있음에 감사한다.

by 김인경


가난만 벗어나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 믿으며 살았던 나. 지금은 밤마다 오늘의 통증을 돌아본다. 가난은 인생에서 불편한 따름이지만, 통증은 삶의 지옥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9월 초, 다리의 극심한 암 통증으로 또 한 번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나는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일까?’를 다시 묻게 되었다. 현재 나에게 중요한 건 무엇일까?


평생을 쫓아다니며 갈구했던 돈?

내가 꿈꾸던 행복한 가정?

남들이 부러워할 사회적 지위와 명예?


그 무엇도 아니었다. 지금의 나를 기쁘게 해 주는 건 단 하나, ‘이 순간 통증 없이 웃을 수 있고, 걸을 수 있는 오늘이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자연스러운 삶이 이젠 나에게 가장 소중하고 힘든 일이 되었다.




12년간 암 투병하며 여러 병원에 다녔다. 고통 속에 허우적거리는 중환자도 보았고, 그들의 부고 소식도 간간이 들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그런 일들은 나와는 거리가 먼 ‘남의 일’로만 여겼다. 나 역시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암 환자로 처음 병원에 다닐 땐 나의 친화력으로 많은 사람들과 잘 지냈다. 모든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해 주려고 노력했고, 좋은 정보가 있으면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최대한 새로운 관계를 만들지 않는다.


어디서든 상처는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서 오기 때문이다. 고의든 아니든, 믿었던 사람이 주는 아픔은 깊고 오래간다. 나와 관련 없는 사람이라면 흘려보내거나 무시하면 된다. 하지만 소중한 가족이나 친구, 이웃 등 가까운 이가 주는 상처는 가슴 깊이 새겨진다.

암 환자 대부분이 겉으론 좋아 보인다. 어떤 사람은 “마음이 너무 좋아서 암에 걸린 게 아니냐?”라고 할 정도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십중팔구가 가까운 사람에게 받은 스트레스가 암의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모르는 남이 주는 상처는 "미친놈 지랄하네!"라고 한번 욕하며 넘길 수 있지만, 믿었던 주위 사람이 던진 서운한 말은 평생의 비수가 된다.



치료에 지친 나는 TV가 일상이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넷플릭스는 나의 동반자가 되었다. 요즘 인기 있는 "은중과 상연"이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상연이가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이 '저게 나의 미래가 아닐까?'라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상연은 가장 친한 친구에게 해서는 안 되는 큰 상처를 주었다. 충격받은 은중은 상연에게 "누가 너를 받아 주겠니?"라며 저주스러운 발언을 하고 둘은 헤어졌다. 그 한마디가 상연이의 30대를 지배했다.


은중이의 말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혼하자는 남편에게 매달리다 결국엔 암에 걸렸다. 마지막 죽음을 앞두고, 상연이는 어릴 때부터 진심으로 이해해 주고 의지했던 은중을 찾아갔다.

처음에 은중은 상연을 외면하려 했다. 하지만 매달리는 상연이의 모습과 통증에 울부짖으며 괴로워하는 친구를 혼자 둘 순 없었다. 상연이의 마지막 소원인 안락사를 위해 스위스로 함께 떠났다.


나는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 불과 몇 주 전의 내 모습이었다. 작년 처음 통증이 왔을 때부터 의사에게 들었던 “더 이상 가망이 없다”라는 4번의 사형선고. 상연이가 선택한 안락사를 나는 공감했다. 극심한 통증이 올 때마다 나도 상연처럼 기도했다.


"하나님! 제발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세요. 더 이상 눈을 뜨지 않게 해 주세요. 너무 힘들고 아파요. 왜 우리나라는 안락사가 없을까요? 죽음의 선택에 자유가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아파 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다.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이 옆에서 바라보는 이의 고통도 클 것이다. 그걸 상연이 곁엔 은중이가, 내 곁엔 어린 딸이 매번 감내해야 했다.


'담대한 내 딸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말도 못 하고 혼자 얼마나 무서웠을까? 조용히 얼마나 울었을까?'


이 글을 쓰는 내 볼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누구도 죽고 싶진 않다. 하지만 죽음보다 훨씬 무서운 통증 속에서 죽음을 선택할 자유조차 없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항상 웃으면서 오늘을 즐기며 사는 나이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통증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두려운 최고의 공포다.


상연이가 스위스의 안락사를 선택했을 때 나는 '우리나라도 저런 제도가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나도 스위스 안락사를 알아봐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 목숨을 연명하며 살아가는 나!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세상을 끈을 놓지 못하는 나. 때때로 몰려오는 죽음보다 더 무서운 고통을 견디어야 하는 현실을 감당하기가 버겁다.


나는 상연이의 선택이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연이는 말했다. 상연이일 때 죽고 싶다고. 내가 항암치료를 거부한 이유 중 하나가 죽을 때 내 모습으로 죽고 싶어서였다. 정신이 있고 아이들에게 죄책감을 남기지 않고 떠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스위스 안락사를 선택한다면 ‘상연과 은중이 보낸 마지막 시간을 나는 아들딸과 보내고 싶겠지?’ 그들은 마지막의 나를 평화롭게 보내줄 수 있을까? 이 드라마는 나에게 많은 공감과 깨달음을 주었다.



요즘 나는 한 달에 한 번은 종로에 가려고 한다, 새로운 귀금속 장신구를 주문하며 기도한다.


"이걸 찾으러 올 때까지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이번에 맞춘 다이아 목걸이를 이쁘게 차고 다닐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큰 통증이 지나간 후 나는 테니스 목걸이와 팔찌를 주문했다. 결혼할 때도 받지 못한 다이아를 한 번을 꼭 차보고 싶었다.


'내가 돈을 아낀들 누가 알아주겠는가? 이제라도 이쁘게 나를 위해 선물하자. 나는 그만큼 받을 자격이 되잖아. 나에게 앞으론 살아 주어서 감사하다는 의미로 매달 작은 거라도 하나씩 해 주자!'라고 마음먹었다.


죽음과 삶 사이에서, 매일 생명 연장을 위해 살아가는 파리목숨인 나. 그래도 오늘 같은 내일을 맞이하길 바라며, 상연처럼 삶을 마감하지 않고, ‘'꿈속에서 눈을 갚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으로 밤마다 하루의 기도를 마무리한다.


이렇듯 아무것도 부질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주식과 코인을 보며 웃다 짜증 낸다. ’도대체 뭘 위해서일까?‘ 이렇게 번 돈, 다 써보고나 죽을 수 있을까?


아점을 먹고 이를 닦은 후, 워터픽을 하려는 데 고장이 났다. 일이십 만원이면 사는 기계인데도 아까워 선뜻 사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왜 이리 한심한지. 정말 사람을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버릇을 버리지 못하는 걸까?


가난에 찌들려 평생을 아껴온 나는, 지금도 푼돈에 마음이 흔들린다. 어디선가 들은 말이 떠올랐다.


“돈은 벌어도 몸은 가난을 알려준다.”


이 말은 평생 이런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나에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20251015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하늘이 주신 기적 : 죽음이 속삭일 때, 나는 오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