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생적으로 소심해서 규칙을 어기면 죽는 줄 아는 범생이 팔자다. 그런 주제에 늘 반항을 꿈꿨는데 대부분 상상에만 그치곤 했다. 그중 하나가 선착순 달리기였다. 초등학교 체육 시간, 진도가 애매할 때나 선생님의 심기가 불편할 때면 시키던 그것.
“선착순 다섯 명!”
호루라기 소리도 없이 대충 운동장에 있는 축구 골대를 향해 툭 던지듯 말하면, 달려야 했다. 왜 뛰는지는 모르겠고 그냥 달려야 하는 수업.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왜 꼭 다들 같은 방향으로 달려야 하지? 어차피 달려봐야 내 실력으로는 5등 안에도 못 드는데 아예 반대쪽으로 달리는 게 낫지 않을까? 내가 반대로 뛰면 선생님이 열받겠지? 아이들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볼 거고. 반대쪽 골대에는 선생님도 반 아이들도 아무도 없지만 나는 그 편이 더 의미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상상은 언제나 상상으로 끝났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조금 달라졌다. 머리가 굵어지면서 충동이 상상으로만 그치지 못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알 수 없는 이유로 교장 선생님이 전교생을 운동장에 모아 놓고 몇 시간째 설교를 늘어놓던 날, 나는 드디어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우리 도망가자.”
친구는 잠시 망설이다가 따라왔다. 우리는 학교 뒷산을 넘었다. 축축한 흙냄새가 코끝을 스치고, 습기를 머금은 공기로 허파를 가득 채웠다. 미끄러운 산비탈에 몇 번이고 구를 뻔했지만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머릿속이 그 어느 때보다 맑아졌다. 한두 시간가량을 길거리에서 떠돌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혼날까? 두근두근했지만 아이들은 ‘너희 어디 갔었어? 용감한데?’ 하면서 놀렸고, 담임선생님은 미심쩍다는 눈빛으로 우리를 보긴 했지만, 모범생인 우리가 정말 일탈했다고는 생각하시진 않으신 건지 아니면 알면서 눈감아주신 건지 추궁하지 않으셨다.
그날의 작은 성공 이후로도 나는 이따금 충동성을 억누르지 못하고 간간이 삐딱선을 타곤 했는데 이 망할 충동성 때문에 내 인생은 종종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향하곤 했다. 그래도 이런 충동적인 성미를 고치고 싶은 마음은 안 드는 것이 아마 나는 이렇게 살다가 죽지 않을까 싶다.
나는 여전히 소심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누구든 언젠가는 반대편 골대로 달릴 수 있다는 것을. 뒷산을 넘어 도망치던 그 순간의 자유가 내 안에 숨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