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전라북도 변산반도로 단풍 여행을 떠났다.
일흔을 넘긴 아버지의 늦은 퇴직과, 우리 부부의 결혼 기념이다.
남쪽의 단풍은 따스한 햇살 아래 오색 빛깔로 물들어 있었다.
대한민국 3대 전나무 숲으로 유명한 변산반도 국립공원내 내소사의 오솔길을 걸었다. 피톤치드가 강하게 코를 찔렀다. 머릿속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한 아름으로 다 안을 수 없는 웅장한 전나무 아래 삼삼오오 짝지어 온 가족들, 친구들이 거닐고 있었다. 정다운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도 단풍처럼 곱게 물들어 갔다.
내소사에서 정말 신기했던 경험은 봄, 가을 두 번 피는 춘추 벚꽃을 본 것이다. 신비로운 기운이 머무는 것 같았다. 가을에 핀 춘추 벚꽃은 나를 겸손하게 했다. 봄에 피는 벚꽃과는 차이가 있지만, 여전한 분홍빛 꽃잎은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다가 아니라 말하는 것 같았다.
천년 된 느티나무는 아름드리 전나무보다 우람한 너비를 자랑했다.
천년의 세월 동안 묵묵히 빛과 바람, 위기를 견뎌온 느티나무 아래 내 고민 들은 작은 먼지처럼 부서졌다.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강 하구에서 자라는 풍천장어를 먹기 위해 고창으로 향했다.
거친 바닷물을 거슬러 헤엄치는 풍천장어의 기운을 충전하고, 선운사 도립공원에 발을 내디뎠다.
녹차밭은 껴안고, 잘 정돈된 선운사 도립공원에선 또 다른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일흔이 훌쩍 넘도록 일 때문에 분주하셨던 아버지, 작년엔 암 수술까지 하셨지만, 든든히 곁을 지켜주시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뜨거운 여름을 견뎌낸 후, 아름답게 물든 단풍과 과실들은 차가운 계절에 움츠러든 내게 위로를 전했다. 남편이 운전하며 부모님과 함께한 첫 단풍 여행은 내 마음속 사진첩을 오래도록 물들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