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에 대한 묵상

'인내와 경외함'을 무기 삼아 고난을 통과할 거다.

by 공글이

새해가 밝았다. 지난 2022년의 내 주제는 고난이었다. 작은애가 뇌종양 진단을 받기 전에도 나는 고난에 대해 묵상했다. 세월호가 마음 한편에 맺혀 있었다. 바다를 보는 게 울렁거렸고 배를 타는 게 꺼려졌다. 그저 즐겁게 수학여행을 떠났던 학생들이 죽었다. 누구 말대로 구명조끼를 입었는데도 죽었다. 배는 속수무책으로 가라앉았다. 배 주변으로 날아다니는 헬리콥터가 무색했다. 뉴스 화면을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대한민국에 사는 게 안전하지 않다고 느꼈다. 그러고 이태원에서 사람들이 또 죽었다. 사람이 사람한테 깔려 죽을 수도 있다니 소름이 돋았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대한민국 부모가 많아졌다.

고난을 이해하려 할수록 '알 수 없다'로 마음이 정리됐다. 예방주사를 맞은 것처럼 얼마 뒤 작은애가 한 달을 꼬박 토했다. 병원을 5군데 돌았고 원인을 못 찾았다. 막판에 종양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오히려 차분해졌다. '내 아이라고 암에 걸리지 말란 법도 없지. 누군가의 불행이 내 일이 될 수도 있는 거다.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새로운 지경이 찢어지듯이 펼쳐졌다. 평생 모르고 살았을 의학 용어와 의료비 지원제도를 알게 되었다.

치료가 시작되고부터 '어떻게 곤고한 시절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까?' 쭉 생각했다. 고난이 주는 유익이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나는 신앙이 있기에 말씀 속에서 답을 찾고 싶었다. '인내와 경외함'이 고난을 통과하는 열쇠임을 깨달았다. 무기를 손에 쥔 기분이었다.

치료를 받으면서 재발과 전이를 걱정했다. 완치될 거라는 확인도장을 받고 싶었다. '사람이 이런 곳에도 암이 생길 수 있구나' 싶을 만큼 병이 다양하다. 침샘에 암이 생겨서 혀를 잘라야 하는 환자도 있었고 재발될 확률이 낮음에도 십 년 만에 다시 암환자가 된 사람도 봤다. 암 때문에 눈을 뽑아 가짜 눈을 넣어 자꾸 눈곱이 낀다는 말을 듣는다. 그럴 때마다 작은애의 앞날을 알 수 없어 불안했다. 성경에 사람이 자기 앞날을 알 수 없다는 문구가 있는데 그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 내 나름대로 찾은 이유는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려고'이다. 동의가 됐다. 앞날을 아는 게 과연 축복일까? 생각했을 때 고개가 저어졌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욥'을 보면서 오해했었다. 감당할만한 고난을 주신다는 말에 대해서 말이다. 의인이었던 욥이 온갖 고난을 겪길래 '하나님은 감당할만한 준비가 된 사람에게 그에 걸맞은 고난을 주시는구나. 나는 최대한 하나님 눈에 띄지 말아야지'라고 마음먹었다. 그러다 보니 별로 신앙적으로 자라고 싶지 않았다. 길었던 오해가 풀렸다. '감당할만한 고난을 주신다는 말은 고난 가운데 피할 길과 돕는 손길로 함께 해주신다는 거였구나. 그래서 감당할 수 있는 거구나.' 누군가 '하나님이 너를 크게 쓰실 거야' 말하면 무척 부담스러웠다. 크게 쓰이고 싶지 않았다.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하니까. 그런데 오해가 풀리고 나니까 그 말이 이젠 기대된다. 나는 하나님 눈에 띄어도 되고 자라도 된다.

계획대로라면 항암치료가 6월에 마무리된다. 앞날을 알 수 없지만 '인내와 경외함'을 무기 삼아 고난을 통과할 거다. 작은애 예비소집을 다녀왔다. 입학을 두고 고민했지만 작은애가 학교에 가고 싶어 하는 의지가 높아 가기로 했다. 학교에 다니면서 여러 변수가 있을 텐데 그때마다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다. 이번 미션은 또 어떻게 해결할지 모르겠다. 인생의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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