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opause와 폐경(閉經)의 언어적 이미지
노화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특별한 질환이 없더라도 인체 구조와 기능의 점진적으로 쇠퇴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여성의 생식노화는 신체노화보다 일찍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난자의 소실과 관련이 있다. 여성의 난소기능은 태아시기인 임신 18-22주에 최대치(100%)에 도달하고 출생과 함께 감소하기 시작한다. 여성이 30세가 되면 12%의 난소기능이 남고 40세가 되면 단지 3%의 기능만 남는다. 난소기능이 소실되는 속도는 개인차가 크기 때문에 여성의 폐경나이는 42-58세 사이로 매우 다양하고 신체의 노화 정도로 그 시기를 예측하기 어렵다. 이 과정은 분명 하나의 이벤트가 아니라 장기간에 걸친 지난한 여정이지만, 그 시작보다는 끝을 알기가 더 쉽고 분명하기 때문에 여성의 갱년기는 주로 ‘월경의 멈춤’을 기준으로 정의된다. 우리말의 폐경(閉經), 영어의 menopause(메노포즈)는 모두 월경이 멈춘 상태를 의미한다.
menopause(메노포즈)라는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달 또는 월경을 뜻하는 ‘meno’와 정지를 뜻하는 ‘pausis’의 합성어다. 즉, menopause는 생리가 멈추는 한 시점을 의미한다. 한자어 폐경(閉經)은 menopause 보다는 좀 더 부정적인 느낌이다. ‘폐(閉)’ 자는 문을 닫고, 막고, 가리는 의미를 지니며, ‘경(經)’은 지나고 흐르는 것을 뜻한다. 결국 기운이 지나가지 못하도록 막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동양의 고전에서도 폐경은 부정적인 맥락으로 묘사된다. 황제내경에서는 여성이 49세가 되면 천계가 마르고, 몸의 형태가 무너지며 자식을 가질 수 없게 된다고 하여, 폐경을 형체의 쇠락으로 연결 지었다.
폐경의 부정적이고 단절적인 어감을 극복하고자 완성될 完(완)’자를 써서 ‘완경’이라는 용어로 바꾸자는 제안이 1980년대 처음 나왔다. ‘완경(完經)’은 ‘완성된다’, ‘마무리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는 의미로 여성의 생애주기 완성이라는 긍정적 의미 전환을 담고 있다. 이는 여성의 생리적 전환기를 결핍이나 쇠퇴가 아닌 변화와 성숙의 시기로 해석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완경"이라는 단어를 공식적으로 처음 제안한 확산시킨 인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사람은 전 국립중앙의료원장인 안명옥 박사이지만, 이후 여성학계와 언론, 대중문화에서도 이 용어가 널리 수용되었고, 여성 건강 캠페인, 건강강좌, 공공기관 홍보물 등에서 사용이 확대되었다.
폐경 대신 '완경' 쓰세요… 인생 2막 출발점 [출처 : SBS 뉴스]
원본 링크 :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456412&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최초 제안자로 알려진 안명옥 박사는 산부인과 전문의이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는 정식 의학 용어는 아니다. 그러나 의료인들 사이에서도 완경이란 단어는 폐경보다 더 자주 사용되고 있으므로 가까운 미래에 정식 의학용어로 인정받을 날이 올지도 모른다.
여성의 폐경은 어느 한순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폐경이 되는 마지막 1년간 월경은 매우 불규칙하게 일어난다. 난소는 끝까지 자신의 소임을 다하기 위하여 발버둥 치고 마지막 호르몬 한 방울까지 짜내고는 장렬히 전사한다. 그 과정은 무척이나 지난하여 어떤 이들은 단 수개월안에 끝나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수년이나 걸리기도 한다. 게다가 마지막 월경이라는 건 대게는 매우 애매한 사건이다. 양도 들쑥날쑥해서 어떨 때는 월경이라고 부르기도 매우 민망할 정도로 적게 나오기도 하는데 이것들 중에 어느 것을 마지막이라고 해야 하는지 헷갈리기도 한다. 더군다나 지금의 폐경의 정의에 의하면 폐경 후 1년이 지난 시점에서야 비로소 그때가 폐경이구나 하고 알게 되는데, 폐경을 진단하고 나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한다면 그 과정에서 겪는 많은 불편함을 그저 대책 없이 경험한 채로 보내야만 하는 것이다. 완경은 월경을 마무리했다는 의미로 폐경보다는 어감이 순화된 측면이 있지만, '완료했다' '끝이다'는 정적인 느낌이어서 폐경기의 역동성을 담기에는 좀 부족한 면이 있다.
의학적으로 월경의 종료를 진단 기준으로 삼는 것은 그것이 쉽고 간단하기 때문이지 치료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제 여성이 난소기능이 감소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는 대부분 월경이 종료되기 훨씬 전부터 발생한다. 게다가 마지막 월경 후 1년이 지난 시점부터 폐경이라는 진단은 연구를 하거나 환자를 분류하기는 용이해도 치료 계획을 세우기에는 늦어도 너무 늦다. 내가 폐경이라고 분류되기 위해서는 월경을 하고 나서 1년간을 노심초사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6개월 후 뜬금없이 월경이 나온다면 나는 폐경이 아닌 것이다. 어떤 증상과 징후가 나를 괴롭혀도 나는 아직 폐경이 아니다. 이런 넌센스가 어디 있을까? 나는 폐경이라는 말의 부정적인 어감보다도 환자에 대한 배려심이 전혀 없는 이러한 정의에 대해 더 분노한다. 완경도 긍정적인 단어이기는 하지만 치료에 도움이 안되는 건 매한가지다. 물론 환자분들에게 폐경보다는 다소 충격이 덜한 단어이긴 하다.
폐경의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폐경이행기, 폐경기 이후라는 개념이 있다. 폐경이나 메노포즈는 월경이 멈춘 시점을 의미하기 때문에 가임기와 폐경사이를 폐경이행기, 마지막 월경인 폐경 이후의 시기를 폐경기 이후라고 칭한다. 영어로는 폐경 전 premenopause, 폐경이행기 perimenopause, 폐경 menopause, 폐경기 이후 postmenopause라고 한다.
이렇게 복잡한 단어들이 많지만 내가 언제까지 가임기이고 언제부터 폐경이행기인지는 여전히 애매하다. 몇 달간 월경이 없어서 이제는 꼼짝없이 폐경인 건가 하고 있는데 6~7개월 만에 또 월경이 나오기도 한다. 반면 갱년기는 폐경이행기부터 폐경, 폐경 이후 상태까지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나는 의사들과 대화를 나눌 때는 폐경이란 단어를, 환자들과 대화를 나눌 때는 가급적 완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편이지만 사실은 갱년기라는 단어를 제일 좋아한다. 갱(更)은 새로움을, 년(年)은 나이를 뜻하므로, ‘삶을 새롭게 갱신하는 시기’라는 뜻이 된다. 임신 계획도 없는 나이에 매달 에너지를 써가며 배란과 월경을 반복하던 가임기를 마무리하고, 이제는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해 에너지를 쓰는 새로운 삶의 국면으로 나아간다는 의미에서, 나는 이 단어를 가장 좋아한다.
갱년기라는 단어의 또 다른 장점은 마지막 생리가 언제인지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설사 지금 가임기라도 생리 주기가 예전 같지 않으면 갱년기라고 말할 수도 있다. 생리주기가 정확해도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증상을 경험하면 갱년기라고 의심해 볼 수도 있다. 갱년기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여성의 월경주기가 아니 생애주기에 따른 정신과 신체변화를 먼저 살펴볼 수 있다. 여성의 월경이 아닌, 월경하는 여성을 바라보는 프레임의 전환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환자에게 마지막 생리가 언제였는지를 따지는 대신 이런 질문을 한다.
“요즘 당신의 몸은, 마음은 어떤가요?”
그 질문과 대답 속에서 그녀들이 겪고 있는 변화와 불편함, 그리고 새롭게 시작될 삶에 주목한다.
우리는 이제 여성의 몸을 '기능이 멈춘 존재'로 보지 말아야 한다. 어린아이가 독립된 어른이 되기 위해 '사춘기'라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듯이 이 시기의 여성도 한 시기를 마무리하고 또 다른 삶으로 도약하기 위해 환골탈태(換骨奪胎)의 고통을 겪고 있을 뿐이다. 현재의 고통은 창조적인 파괴이며 새로운 삶을 재건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새롭게 변한 나는 소멸과 단절이 아닌 갱신이고 갱생이며, 삶을 온전히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으로 회복하는 여정이다.
참고문헌
1. Exploring women's perceptions and experiences of menopause among East Coast Malaysian women Nurul Najmi Mohamad Ishak et al Malays Fam Physician. 2021 Mar 25; 16(1): 84–92.
2. 2020 온라인 국제학술대회 여성, 가족, 그리고 한국 유교 자료집